올해에도 미얀마 단기 출가를 계획하고 있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터질 것같은데, 눈앞에서 왔다갔다하는데 정작 손에는 안잡힌다.
그런 중에 미얀마 통역 Zaw가 겁을 팍 준다.
- 가사 입는 거 쉬운 거 아니에요. 미얀마에서 계 줄 때 스님들이 물어요.
가사 입고 지옥 갈래, 양복 입고 맛있는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다 할래?
겁이 난다.
미얀마에서는 가사 입고 돌아다닐만하다.
한국에서는 가사 입고 돌아다니면 저 중은 사업에 실패했나, 연애에 실패했나, 집안이 가난했나 어쩌다가 저리 되었을까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은데 미얀마는 전혀 그렇지 않다.
가사만 걸치고 서 있으면 그저 땅바닥이든 흙바닥이든 넙죽 엎드려 절을 바치고, 지갑을 열어 얼른 보시한다.
사원마다 입구에 줄지어 손 내미는 거지들이 있어 "아니, 출가하면 밥 잘 먹고 살 텐데 왜 동냥질로 살까?" 하고 통역 Zaw에게 물었더니 "거지 해서 먹고사는 게 스님 돼서 먹고사는 것보다 더 쉽고 편해서 그래요. 스님은 너무 힘이 들어 하기 어려워요."란다.
경허 스님은 혼자 참선하던 중에 절마당에 공양쌀을 싣고온 거사들이 "신도들이 보시로 바치는 쌀을 평생 얻어먹고도 깨우치지 못하면 다음 생에 콧구멍 없는 소로 태어나 죽도록 일해야 한다지?" 하는 말을 듣고 대오각성하여 용맹정진했다는 말이 있다.
아, 나는 독자들이 평생 갖다준 저작권료로 밥 먹고 살아왔는데 아직도 깨우치지 못했으니
나도 소 되는 거 아닌가?
그러니 공짜밥이라도 먹지 말아야지.
- Zaw Moe Aung(오른쪽)은 우리 통역이다. 삐냐저따 스님(왼쪽)과 우리 사이에 항상 Zaw가 있다.
통역하고, 사진 찍고, 심부름하느라 늘 바쁘다.
게다가 까다로운 질문을 해대는 나 때문에 허둥대기도 하고,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한다.
Zaw 없이 깨닫기는 틀렸다. 삐냐저따 스님이 황금같은 말씀을 주셔도 Zaw가 귀찮으면 땡이다.
저녁 늦게 삐냐저따 스님을 괴롭히던 지난 7월, Zaw가 "잠을 못자서 제가 선생님 질문을 못알아듣겠어요." 하는 바람에 중단된 적도 있다.
스님 안계실 때는 Zaw가 내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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