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미얀마 단기 출가기 / 태이자는 이렇고 보고 듣고 생각했다
- 반야를 찾아 떠난 열흘간의 아나파나 여행 / 2. 비파사나 좋으나 아나파나부터, 아나파나 좋으나 계부터!
* 이 글은 바이오코드 및 아나파나 사티 수행자용입니다
* 일반 독자를 위해서는 <2018 BBS 불교방송 / 그들은 왜 단기 출가에 나섰나? 1~9>가 따로 있습니다.
2. 비파사나 좋으나 아나파나부터, 아나파나 좋으나 계(戒)부터!
- 탐진치(貪瞋癡) 계정혜(戒定慧)는 변하지 않는 ‘반야(진리)의 프로세스’다
1990년대부터, 간화선만이 최고인 듯 여기던 우리나라 전통 불교계에 비파사나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몇 년 안가 대중의 관심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 이유는, 비파사나 수준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바에 사는 사람은 저마다 다른 양의 번뇌와 잡념에 시달린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대로, 저마다 같은 양의 잡념과 번뇌가 들끓어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하기 어려워진다. 홧김에 내린 결정이 늘 오류이듯 번뇌와 잡념이 들끓는 중에 내리는 결정은 실수 투성이다.
사실 생명의 역사는 오류와 오판을 줄이기 위한 뇌의 진화나 다름없다. 현대 인류를 가리키는 학명 '호모 사피엔스'는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즉 그 이전 진화 단계의 생명체들은 슬기가 부족했다는 뜻이다. 인류가 오늘날 전세계를 지배하는 그 힘의 정체는 곧 슬기다. 이 슬기를 가리켜 팔리어는 반야라고 한다. <내 안의 혁명가 열두 분 이야기>
- 최초의 포유류 Therapsid.
알을 낳는 파충류와 달리 새끼가 자궁에서 다 자랄 때까지 품고 있다가 낳는 포유류가 나타나면서 동물의 생존률이 굉장히 높아졌다.
이처럼 동물들은 더 효율적으로, 더 지혜롭게 진화해 오다가 마침내 인류가 되었다.
인류가 되어서도 탐욕으로 일어나는 痴 즉 어리석음이 많아 세상은 늘 시끄럽다. 그래서 반야를 찾아 그 어리석음을 여의자는 것이다.
하지만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인류의 그 슬기도 아직은 오류 투성이다.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현생 인류의 역사를 들춰봐도 오류 투성이고, 오판, 실수가 대부분이고, 욕망이 솟구치는 모략, 음모, 거짓말로 이어져 있다. 제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징크스와 컴플렉스,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유명 작가 중에서도 글을 쓰려면 두어 시간 커피를 마시고, 혹은 썩은 사과를 책상서랍에 넣어둬야만 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가부좌 틀고 앉았다고 해서 누구나 아나파나 ‘사티(집중)’와 통찰(비파사나)’의 수준에 이를 수가 없다.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은 먼저 집중이다. 즉 두뇌가 어텐션(Attention)돼야 ‘생각할 준비’가 된 것이다.
집중(아나파나 사티, Attention)이란, 술 마시고 춤을 추는 마을 잔치 마당에 갑자기 코브라 한 마리가 나타난 상황 같은 것이다. 술과 춤이 있는 자리에는 집중이 없다. 도리어 벗고 풀고 끄르고 펼친다. 웃고 떠들고 여유 있고 너그러워진다. 하지만 그런 자리 한가운데에 독을 잔뜩 머금고 있는 코브라 한 마리가 나타났다면, 여기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술은 확 깨고 춤판은 즉시 끝난다. 흩어진 옷매무새를 바로하고, 여자와 아이들은 멀찍이 달아난다. 어른들은 코브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즉시 '계산'에 들어간다.
집중(아나파나 사티, Attention)이란 바로 이런 상태를 말한다. 깨어 있는 것이 곧 집중이요, 어텐션이다.
오합지졸을 모아 놓은 군대라도 그 중의 한 명을 잡아 군율로 목을 베거나 나무에 매달면, 이 오합지졸은 즉시 어텐션된다.
- 코브라와 몽구스의 대결. 이 상황에서 코브라와 모든 몽구스는 어텐션이 된다.
즉 아나파나 사티에 이른다. 누구든 먼저 물리는 쪽이 죽고, 먼저 무는 쪽이 이긴다.
집중됐다고 해서 꼭 올바른 판단을 하고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집중이 돼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이 비파사나다.
아나파나 사티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지면 그제야 비로소 집중이 유지되고, 그런 상태에서 통찰이 일어난다. 그 경지가 바로 두뇌가 제대로 생각할 수 있는 '대기 수준'이다. 집중-통찰에 이르면 오류가 줄어들고, 그 두뇌가 갖고 있는 지식과 지혜로써 가능한 최상의 답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물론 절대 반야, 절대 지혜는 사람마다 수준이 달라 다 이르지는 못하지만 방향이 틀리는 일은 별로 없다.
이 세상사 중에는 소숫점 열 자리 이하에서 결정되는 것도 많다.
수소원자의 크기를 0.05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인데, 삼성전자는 나노 공정으로 반도체를 깎고 있다. 1나노 리터(10억 분의 1리터)의 혈액으로 암을 진단하는 시대다. 이 달에 시작된 5세대 통신은 초당 20기가 바이트의 정보를 전달한다. 이 시대는, 편도체가 뭔가를 결정하는데 걸리는 시간 0.03초에 육박하는 초고속, 초정밀의 최첨단 기술 시대다. 말장난으로 통하는 구석기나 신석기나 농경시대가 아니다.
나는, 간화선은 하고 싶은 사람과 능력이 되는 사람들은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조용히 모여서 하는 게 좋고, 일반적으로는 비파사나도 이르다고 생각한다. 집중력이 대단히 좋은 사람들은 비파사나로 바로 들어가도 문제가 없지만 99%의 사람들은 아나파나 사티로 접근하는 것이 맞다. 심지어 아나파나 사티조차 누군가에게는 절벽처럼 여겨지는 수행법이기도 하다.
- 아나파나 사티는 화두를 들지 않는다. 개에게 불성이 있든 없든 생각 자체를 중지하라고 요구한다.
부처가 마삼근이든 마열근이든,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달마가 동쪽에서 왔는지 서쪽에서 왔는지 알 필요가 없다.
흙탕물이 일어난 양동이를 맑게 하려면 들숨과 날숨을 지켜보면서 탐진치가 가라앉기를 기다려야 한다.
내버려 둬도 번뇌망상이 머리 가득 차는데, 단전호흡까지 시키면서 더 큰 번뇌거리를 주면 기어코 병이 생긴다.
아나파나는 산소 가득한 들숨을 들여다보고, 이산화탄소인 날숨을 들여다볼 뿐이다. 그래야 탐진치로 어지러운 머리가 가라앉는다.
아나파나는 말 그대로 들숨날숨이다. 이걸 날숨 단위로 수를 헤아린다. 대개 10까지 헤아리고 다시 1로 돌아와 다시 센다.
물론 20, 30까지 세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10까지 세지 못한다. 20까지 셀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이런 사람들이 아무리 앉아 오래 버틴들 번뇌와 잡념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니 아나파나 사티의 목표인 ‘집중’ 상태에 단 한 번도 이르지 못한다. 이런 두뇌로 심지어 간화선을 한다는 건 고문이고 학대다.
두뇌는 한두 개가 아니다. 대뇌에도 좌뇌, 우뇌, 뇌간이 있는 것처럼 곳곳에 뇌가 있다. 심장에도 신경세포 4만 개가 있다.
이런 모든 뇌들이 실처럼 연결되고, 거미줄처럼 망을 쳐야만 바르게 생각하고,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러자면 가장 필요한 것이 아나파나 사티다. 간화선은 뇌를 연결하지도 못하고, 거미줄처럼 망을 쳐주지도 못한다. 번뇌와 잡념만 가득 차 두뇌를 개구리 뛰어다니는 물웅덩이처럼 지저분하게 해놓을 따름이다.
아나파나 사티는 두뇌를 집중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수행법이다. 하지만 아나파나 사티를 하지 않고도 두뇌를 집중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걸 알기 위해서는 적당한 시련이 필요할 수도 있다. 시련은 하늘이 주는 복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가난은 하늘이 주는 기회요, 부와 권은 하늘이 주는 시험이다. 가난에 지면 양아치 잡놈 사기꾼이 되어 밑바닥을 헤매고, 부와 권력에 지면 독재자나 악인이 되어 장차 지옥을 헤매게 된다.
성경에도 부자가 천국에 이르려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고 적혀 있다. 그 이유는 부자의 두뇌는 집중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가 어텐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도적놈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요, 독재자가 어텐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반역자가 나타나 총을 겨눌 때다. 그러자면 너무 늦다.
가난이나 시련, 극심한 고통과 질병은 간혹 그 자체로 집중 효과를 낸다. 실제로 이런 간절한 상황에서 극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기발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즉 아나파나 사티를 하지 않고도 그와 같은 집중-성찰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가난을 반야로 이기면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요, 부와 권을 갖고도 반야로 이기면 역시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다. 다만 단 한 번의 기회를 얻는 것뿐이다.
아나파나 사티를 하지 않고는 결코 하늘문을 통과할 수가 없다. 시련으로 어쩌다 얻은 기회를 반야인 줄 착각하면 머지 않아 반드시 무너진다.
시련과 극심한 가난, 고통 다음으로 집중-통찰 기회를 주는 효과는 다른 데도 있다.
크게 성공한 사람, 큰 선거에서 이긴 사람, 큰 회사를 일군 사람, 사단급 이상의 군대를 지휘하는 지휘관 들은 세로토닌 수치가 갑자기 높아지기 때문에 자신감 있게 뭔가 판단하고 실행한다. 이들은 일반인들보다 더 정확한 답을 찾아낼 확률이 높다. 높은 세로토닌 수치만으로도 집중-통찰 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여전히 아나파나 사티를 해야만 한다.
- 사람들은 자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남을 바라본다. 그래서 남의 눈에 비치는 자신을 생각한다.
서울 시청 앞으로 가득 메운 이 인파는 광우병 시위, 노무현 탄핵 반대 시위, 박근혜 탄핵 찬성 시위, 월드컵 응원 사진이다.
옳고 그르고는 없다. 이들의 뇌에는 지금 거울신경세포가 있어서 '내가 아닌 남'을 바라본다.
아나파나 사티는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을 바라보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수행자는 거울을 보지 말아야 한다.
때퓨국제비파사나센터와 마하미얀 사원에는 거울이 없다. 어디에도 없다. 수행자는 거울을 보지 말라는 계율을 실천한 것이다.
거울이 없어도 이미 두뇌 속에는 수많은 거울신경세포가 도사리고 있다. 편도체 속 100만 개의 신경세포(편도체는 좌우 두 개가 있다)는 생존을 위해, 생식을 위해 늘 주변을 CCTV처럼 살피고 있다. 그 거울신경세포가 탐진치로 움직이면 번뇌와 잡념을 낳고, 반야로 움직이면 지혜를 낳는다.
이 거울신경세포는 포유류 이전부터 떼를 지어 다니면 생존율이 높다는 데서 생겨난 것이다. 얼룩말이나 가젤, 누 등은 항상 떼를 짓고, 각각의 개체는 그 떼의 중심으로 파고든다. 그래야 외부의 공격에 안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울신경세포는 안전을 추구하지 ‘철갑코뿔소의 송곳뿔’처럼 혼자서 굳세고 당당하게 나아가지 못한다. 사자 한 마리쯤 누떼가 달려들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지만, 누들은 자신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사자에게 감히 달려들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사자는 안전하게 누 한 마리를 잡아먹는다.
이런 이유로 아나파나 사티를 하고 비파사나를 할 사람은 거울을 보지 말고, 오직 반야선을 띄워야만 한다.
들숨은 21% 순도의 맑은 산소를 끌어들인다.
이때 해마와 편도체는 분석하고 판단하고 결심한다. 그래서 들숨을 잘 쉬어야 반야에 이른다. 들숨 때 들어오는 향기를 편도체가 분석한다. 들숨 때 들어오는 공기를 보고 코는 기온을 측정하고 습도를 잰다. 들숨 때 집중도가 쭉 올라간다.
날숨은 이산화탄소를 뱉는 것이니, 버리고 물리치고 가르고 나누는 Enter키와 같다. 쉬는 것이다. 이때 번뇌와 잡념이 무수히 일어난다. 그래서 날술 때 숫자를 세라고 하는 것이다. 숫자를 셈으로써 번뇌와 잡념을 누르는 것이다.
아나파나 사티를 하고 비파사나를 해도 두뇌 패턴을 알고 하는 것이 좋다.
우리 두뇌와 장기는 3시간 일하고 30분 쉬는 생체 패턴을 갖고 있다.
두뇌는 3시간 일하고 쉰다. 잠잘 때에도 3시간에 한번은 반드시 깨어나 상황을 인지한다. 자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전확인까지 한 다음 다시 잠든다. 수면파가 그렇게 설정되어 있다.
장(腸)이 움직이는 것도 3시간에 한번씩이다. 정기적으로 깨어나 새로 들어온 음식물이 있는가 살핀다. 그래서 음식이나 물도 3시간에 한번씩 먹어야 한다. 3시간 이내에 자주 먹으면 장이 지친다.
그래서 아나파나든 비파사나든 3시간에 한번씩 긴 휴식을 가져야 한다. 즉 2시간 30분 정도 아나파나하고 30분 정도 쉬어야 한다.
- 뇌는 그 자체로 우주다. 우주에는 Gravity가 있고 중력파가 있다.
모든 뇌에 주파수가 있는데 뇌마다 서로 다른 주파수를 갖고 있다.
심장뇌는 비교적 높은 주파수를 갖고 있다. 심지어 DNA도 고유 주파수를 갖고 있다.
여기서 아나파나 사티로 이뤄지는 두뇌 집중 현상, 두뇌 통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을 살펴보겠다.
인체를 이루는 60조 개 세포가 소집단화하고, 이 집단들이 동기화하여 단일한 신체를 구성한다.
광물질이 서로 같은 성분들끼리 모이는 것도 전자 수가 같고, 그래서 주파수가 같기 때문이다. 식물, 동물, 세균 군집도 같은 이유로 흥망성쇠한다.
콜레라창궐 : 공통 주파수가 발생하면서 세균 창궐. 확산 속도와 지역을 세균들이 잘 안다. 인체 내에서 점령지역은 표지판 세우고 다니기도 한다. 무선 통신으로 서로 알 수도 있다. 동일주파수끼리 모인다. 광물, 식물, 동물이 다 같다.
주파수가 상호 음양 작용해야 분자결합한다. 중력의 법칙에 앞서 주파수가 맞아야 한다.
중력주파수 같으면 응집되고 군집된다.
인연은 주파수의 만남 혹은 거부다.
주파수 변화에 따라 기호가 달라져서 애별리고(愛別離苦)가 생긴다.
이러한 상식에서 아나파나 사티와 비파사나의 원리를 적자면 다음과 같다.
계(戒)를 반드시 지켜야 하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해야 한다. 반야의 등불을 켜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 반야의 꽃을 피우겠다는 초발심을 굳게 지켜야 한다. 그래서 반야의 등불로 세상을 밝히고, 반야의 꽃향기로 세상을 향기롭게 하겠다는 서원을 세워야 한다.
계가 시퍼렇게 살면 탐진치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계가 바로 탐진치를 지키는 파수꾼이다. 탐진치가 일어나면 파수꾼도 넘어가니 그 다음 정(定)과 혜(慧)에 이를 수가 없다.
그러니 죽으나 사나 자기 자신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언제나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파계(破戒)가 되는 것이다.
계(戒)가 굳게 지켜질 때 거기서 아나파나 사티가 이뤄지고 비파사나가 자리를 잡는다. 그래야 집중-통찰이 일어나고 비로소 반야가 태양이 떠오르듯 머릿속에서 환한 빛으로 떠오른다.
대한불교조계종 보문정사 / 사단법인 국제여래선원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운학로 139 (운학동 11)
031-332-0670 1899-3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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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얀마 단기 출가기 / 태이자는 이렇고 보고 듣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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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파사나 좋으나 아나파나부터, 아나파나 좋으나 계(戒)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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