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파란태양/*파란태양*

주역과 붓다

인간이 만든 종교 중 신을 만나지 않고, 신의 명령대로 하지 않고 

오직 인간의 두뇌만으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창하신 분은 사캬 고타마 싯다르타 한 분 뿐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신에게 의지해 구원받자는 <믿음 우선의 교리>를 갖고 있다.

잘못된 믿음보다 잘못된 계산(종종 신념으로 포장되는)이 더 나쁘기 때문에 21세기에도 믿음 종교들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2600년 전에 붓다가 "믿지 말라, 너 자신도 믿지 말라"고 할 때 다른 종교는 <믿어라, 굳게 믿어라> 요구한 사실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 중간에 유교가 있고, 유교의 기본 가르침에 주역이 있다.

공구(孔丘)는 주역 즉 역경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는데, 반은 귀신의 힘을 빌고 반은 인간의 지혜를 쓰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주역을 배워 서른살부터 개발하기 시작한 바이오코드에 그 정수를 옮겨놓았다. 

조선 선비를 미혹시킨 그 주역의 정수는 그게 아닌데, 아직도 주역을 점 치는 책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아 몇 자 적었다.

그래서 제목도 <주역과 붓다>이다.  붓다는 주역을 본 적이 없지만, 그 상관없는 두 개를 연결시켜 보았다. 

아무 상관없는 것을 서로 연결시키는 것이 Creativity다.


1

주역(周易)은 붓다와 노자와 공자와 예수보다 먼저 이 세상에 나왔다.

따라서 불경, 도덕경, 공자, 성경보다 더 먼저 편찬된 책이다.


주역은 역 자체가 주나라 때 편찬되어 주라는 시대 명칭이 붙었을 뿐이지 

실은 그 이전의 상나라 때부터 존재한 철학 개념이다. 즉 3000년 이상 된 철학이다.


이 고대에 황하가 지나는 물가에 살던 사람들이 무슨 깊은 생각이 있어서 처음부터 하늘에 뜻을 물은 건 아니다.

사실 이 상나라, 주나라 당시 기록을 보면 늘 귀신이 등장한다.

무당이 천지요, 귀신 보는 사람은 남녀노소 구분이 없을만큼 숱하다.

그러다 보니 귀신과 사람이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 함께 살다시피 했다.

당시에는 귀신의 영역과 사람의 영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서로 겹치는 공간이 많다 보니 서로 대화할 필요가 생겼다.

이것이 무당, 부적이 나온 배경이다.


2

주역을 이해하기 위해 시각을 바꿔본다.

상나라나 주나라 시대에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 

황하 유역은 황토 지대인데, 농사 밖에 잘 되지 않았다. 

황하 상류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은 기름진 게 아니라 그저 고원과 사막에서 쓸려오는 황토 흙탕물이라서 

당시 문명이 일어난 서부 지대에 큰 이익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서부지대의 너른 풀밭에서 목축에 의존하면서 고기와 우유를 공급받는 티벳 사람들이 

훨씬 더 건강하고 힘이 넘쳐 주로 이들이 중국 고대사를 장악하곤 했다.

티벳에 비해 중국 쪽 사람들은 보리, 밀, 기장 정도를 심어 겨우 주식으로 삼았다. 

춘추시대에도 햇보리밥을 먹는 게 주요 관심사일만큼 사람이나 짐승이나 영양실조 상태였다.


상나라 주나라 기록에 사냥 이야기가 자주 나오지 않는 것도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다.

즉 왕이나 경, 대부 정도나 되면 영양실조를 면할까 일반 백성은 거의 다 영양실조였다.

조선시대의 경우 1400년대가 되도록 우리 선조들은 점심을 먹지 못했다. 심지어 왕도 점심을 거른 적이 있다.

사정이 이런데 상나라 주나라 시대의 중국인들이 밭농사만으로 어찌 먹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했겠는가.

논농사를 짓는 법조차 몰랐으니 순전히 밭농사에 의존했을 것이고, 가문 해에는 그나마도 농사가 안되어 수많은 농부들이 기아에 시달리곤 했다. 수리를 아는 이가 없어 나중에 통일 국가가 되는 秦 시대에 이르러 황하 지류인 위수의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짓는 기술(渠;도랑)이 나올 뿐이다.


사람이 굶으면 영양실조 상태에 이르고, 그러면 거의 다 정신질환 초기 증상을 일으킨다.

두뇌의 기본 연료인 포도당이 부족하고, 신경세포를 지지하는 오메가3지방산이나 미네랄, 비타민 B군이 부족하면 시냅스가 잘 연결되지 않아 사람이 흉포해지고, 머리에 안개가 낀 듯 계산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러면 두뇌 체계에 혼란이 와서 귀신이 눈앞에서 왔다갔다 한다.


3

실제로 그렇다. 사람과 귀신을 구분할 수 없을만큼 그들의 세상은 매우 어지러웠다.

이 21세기 IT 시대에도 정신병원마다 장기 입원 환자들이 가득가득 들어차 있다.

내 주변에만 해도 큰 규모의 정신병원이 세 군데나 있는데 모두 다 수백 명씩 수용하고 있다. 외부와 차단돼 있어 잘 모르지 막상 가보면 기가 막힌다. 이렇게 많은 정신질환자들이 사회와 격리되어 있다는 사실에 숨이 막힌다. 

이들이 층마다 방마다 가득 차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벽을 바라보고 온종일 소리만 질러대는 현장을 보면, 이 세상을 정신 차리고 산다는 게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이 있고, 배우자와 자식이 있을 텐데 그들은 그냥 거기에 존재한다. 도지사, 시장, 국회의원이 선거 때가 되면 찾아가 한 바퀴 도는 의례적인 코스가 되었지만 뭘 도와야 할지 그들은 전혀 모른다. 

인권? 그냥 눈을 뜨고 앉아 벽이나 하늘만 바라보는 그들에게 무슨 가당찮은.

"뭘 도와드릴까요?" 물어도 대답없는 그들은 이미 전혀 다른 차원의 매트릭스에 따로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신질환 평생 유병율은 25.8%다. 4명 중 1명이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뜻이다.(18세 ~ 74세 대상 조사, 2001, 조사 방법과 항목에 따라 수치가 달라진다) 

이 많은 사람들은 발병 초기에는 정신병원, 사찰, 무당, 기도원, 역술원 등을 쏘다닌다. 정신병원만 제대로 가도 그나마 치료 가능성이라도 있다지만 주로 무당, 사찰, 기도원, 역술원에 많이 가다보니 중증으로 진행되고, 병증이 더 악화되어 '영혼이 없는 듯한 삶'을 수십 년 사는 경우가 흔하다.(치매 환자의 삶의 질이 이들보다 더 나은 경우가 많다)


4

자, 이 주제는 <주역과 붓다>이니 정신질환자 얘기는 이 정도에서 덮는다.

문제는 2019년이 아니라 서기전 1000년쯤, 즉 3000년 전이다.

이 당시의 정신질환 평생 유병율은 상상할 수없을만큼 높았으리라고 짐작된다. 왕과 제후도 귀신과 씨름한 기록이 매우 많을 정도이니 아마도 50% 이상 되었으리라고 본다.


그때 공구(孔丘, 공자의 본명) 같은 뛰어난 지식인 등은 이런 혼란한 귀신-인간 동거 시대에 어떻게 진실을 파악하려고 노력했을까?

바로 점을 치는 것이다. 무당 찾아가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두뇌를 이용해 현실을 계산하려 한 최초의 중국인이 공구다.

상나라 시대부터 점(占)은 누구나 다 쳐야만 하는 삶과 삶,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본 상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64괘가 나왔다. 태극이 음양이 되고, 음양이 4상이 되고, 4상이 8괘로 나뉘더니 이어서 8개가 16괘 32괘, 마침내 64괘가 되었다. 이러도록 수백년 혹은 수천년이 흘렀을 것이다.

사람들은 64괘 중의 하나를 신의 계시로 받아들여 이 괘를 해석해보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오직 하늘이나 귀신의 계시로만 접근했다.

하지만 공구의 경우는 다른 해석을 내렸다.


즉 어떤 질문이든지 64개의 서로 다른 답이 있다고 상상한 것이다.

4상으로 치면 길하다, 흉하다, 길하지만 나쁘다, 나쁘지만 길하다가 된다. 이걸 8괘로 늘리고, 더 늘려 64가지로 만든 것이 주역이다.

점을 치면 주역은 그 중의 한 괘를 가리키는데, 공구 등은 이 괘를 해석하여 가장 효율적인 답을 구하려 애썼다.

여기에 중요한 개념이 숨어 있다. 즉 자신의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역이 가리키는 게 뭔지 해석하려 애썼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전쟁을 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점을 치면 이에 대해 64가지의 답 중 하나가 나오는데, 이 한 가지 답을 놓고 열심히 고민했다는 것이다. 명장 이순신도 출전에 앞서 늘 점을 쳐 자신의 작전을 점검하곤 했으니 그 뿌리가 매우 깊다고 할 수 있다.


- 아나파나하는 붓다. 그는 점을 치지 않았으며, 

운명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런 건 없다고 말씀하셨다.

"네가 지은 그대로 나타날 뿐이다. 그것이 인과응보의 법칙이다.

오직 부지런히 보시하고 수행하라.


5

여기서 초점을 붓다로 옮긴다.

붓다는 호모 사피엔스가 탐진치의 그물에 걸려 욕망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봤다.

그 탐진치는 무엇인가.

바로 편도체에 저장된 편견, 오해, 컴플렉스, 트라우마, 징크스 같은 것이다. 이건 내 말이고, 붓다는 알지만 말씀하지 않으셨다.

산토끼가 다니는 길로만 다니듯 사람도 대개 자기에게 편한대로 경험대로 생각한다.

그래서 분명히 자기 머릿속에 있는 정보지만 평소 잘 안쓰는 정보는 일절 접근하지 않는다. 만일 그 곳에 답이 있어도 못쓰는 것이다.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한 회사지만 그 디지털 카메라 때문에 망하고,

노키아는 스마트폰을 발명한 회사지만 그 스마트폰 때문에 망하고,

IBM은 수퍼컴을 만드는 회사지만 그보다 작은 장난감 수퍼컴 수준인 PC를 만들어 세상에 던져 놓고 도리어 그 PC에 밀렸다(마이크로 소트프는 IBM이 만들어준 회사이고, 오늘날 IBM은 MS와 애플 시총에 못미친다)

유니온전신기회사(20세기 초 최대의 글로벌 통신회사)는 전화기를 발명한 회사시지만 그 전화기 때문에 망했다.

즉 옆에 두고도 못보는 것이다.


이런 걸 가리켜 <탐진치에 걸려 진실을 보지 못한다>고 붓다는 설명하셨다. 

즉 코닥은 필름이 워낙 잘 팔리다보니 디지털 카메라의 미래를 외면하고,

노키아는 구식 무선전화기가 워낙 잘 팔리다 보니 스마트폰의 미래를 외면하고,

유니온은 전신기가 너무 잘 팔리다 보니 전화의 미래를 외면한 것이다.


하지만 코닥에 밀려 사진 시장에서 고전하던 기업들은 디지털 카메라를 보아 집중 투자해서 살아났다. 사진 분야의 열등생인 소니 같은 경우가 그렇다.

노키아의 스마트폰은 컴퓨터 제조 회사인 애플이 관심을 갖고 대박을 터뜨린 경우다.

유니온의 전화기는 농아학교 교장이던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라는 개인이 가져갔다.


즉 자기 손에 있는 보물을 주인이 보지 못하니 손님이 채가는 셈이고,

가까이 있는 사람이 진짜 인물인데 굳이 멀리서 찾다가 배신당하고 망하는 것이다.


6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아는 것만 알려 하고, 본 것만 보려 하고, 들어 본 것만 들으려 하는 속성이 있다.

그것을 탐진치라고 한다. 

일정한 지위나 영역을 가진 사람은 자기만의 성을 높이 쌓아 아무도 못들어오게 한다.

(나도 밀리언셀러 작가로 뜬 30대 초에 이미 비서를 두고 외부인의 직접 접근을 차단했었다. 

지금도 3년에 한번씩 전화번호를 바꾼다. 21세기 세상인데도 주나라 상나라 때보다 조금 더 나아졌을 뿐 호모 사피엔스의 본질은 변하지 않아 거리에는 사기꾼 잡놈이 너무 많다. 그런 사람들과 교류를 하면 시간 낭비,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다. 즉 가성비가 너무 낮아서다. 물론 이 생각 자체가 그리 현명한 건 아닌데 나이 먹다 보니 생각하기 쉬운 쪽, 덜 귀찮은 쪽으로 계산이 이뤄진다)

아시다시피 유명한 사람일수록, 권력 구조의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은 일반인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다.

담장을 높다.


하지만 담장을 높이 쌓으면 쌓을수록 거기 갇히는 건 도둑이나 손님이 아니다. 고립되는 건 바로 자기 자신이다.

대통령이나 기업 대표 등이 까다롭게 외부인 출입을 막으면, 그 정도가 지나쳐 막상 박근혜처럼 청와대 대통령 관저 속에 갇혀 살게 된다. 만나는 사람이 제한되고, 세상과 차단되어 소통 자체가 끊어진다. 그러다 사라진다.

사람이 세상과 차단되는 것을 가리켜 자폐증이라고 한다. 매우 무서운 병이다. 권력자의 몰락은 대개 후천적 자폐증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공자는 그런 낡은 사고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답을 찾아보려고 늘 주역을 들여다봤던 것이다.

다만 공자의 방법은 최상의 답을 찾는 방법으로는 그다지 신선하지 못했다. 결국 탐진치라는 인간의 본능에 끌려다니다 보니 합리화하는 기술만 늘어났다. 춘추전국 시대의 역사를 보면 이미 왕이나 제후가 결정한 사안을 나중에 합리화시켜주는 용도로 주역을 오남용한 기록이 매우 많다.


7

이에 비해 붓다는 탐진치(貪瞋癡) 자체를 없애려 노력했다.

그래서 그 방법으로 아나파나 사티라는 수행법을 개발했다.

그는 탐진치의 원인을 번뇌와 잡념으로 해석했다. 오늘날과 같은 트라우마, 본능, 유전자, 징크스, 컴플렉스 같은 개념은 알지 못했다(난, 붓다가 알지만 말씀하지 않으신 것으로 추정한다). 다만 번뇌와 잡념을 없애면 편도체가 갖는 그러한 오류가 제거된다는 걸 붓다는 알았다.

즉 계(규칙적인 삶, 철저히 계산된 오류 없는 행동)를 철지히 지키고 아나파나 사티를 하면 탐진치의 그물에서 벗어나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본 것이다. 이 절차가 계정혜(戒定慧)다. 계정혜의 혜는 8정도(正道 ; 바른 길, 바른 계산)다.

(한국불교는 8정도는 모르고 금강경, 화엄경 가르치기 바쁘다. 산수 안가르치고 미분적분시키는 것과 똑같으며, 데생 안배우고 그림 그리고, 문장 문법 어휘 공부 없이 소설 쓰는 것과 같다.) 8정도가 바로 붓다가 서른다섯 살에 깨달은 담마다. 즉 붓다는 바로 보시고, 바로 생각을 계산하시며, 바로 말씀하시며, 바로 행동하시며, 자기 자신을 바로 아시며, 바르게 수행하시며, 바르게 깨어 있으며, 바르게 집중하실 줄 안다는 것이다.

주역으로 치면 무슨 생각을 하시든, 무슨 말씀을 하시든, 무슨 행동을 하시든 64가지의 패턴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길을 찾아내실 줄 아신다는 것이다. 공구는 점을 쳐서 이 답을 구하려 애썼지만 붓다는 자신의 머리로 계산하는 방법을 깨우치셨다는 것이 크게 다른 점이다. 이런 점에서 주역은 비록 귀신과 더불어 살던 중국인들이 만든 사유체계지만 실제로 가장 잘 쓴 분은 공구가 아니라 붓다였던 것이다. 붓다는 주역을 모르면서도 주역의 가치를 가장 잘 쓰신 것이다.


- 주역은 64가지 사고의 패턴 중 어느 공식으로 답을 구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책이다.


붓다는 자기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나서 '이 세상에서 가장 바른 이치'를 담마라고 했다.

붓다는 어떤 질문에 대해 주역의 64괘가 가리키는 다양한 해답을 일일이 검토하여 그중에서 최상의 답을 찾는 '생각의 프로세스'를 개발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붓다는 귀신에 의존하지 않은 최초 최후의 선각자가 된 것이다.

불교를 제외한 지구상 대부분의 종교는 그 교주가 모세든 예수든 마호메트든 신을 만난 다음에야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생긴 종교들도 그 교주는 모두 기도하다 신을 만나 뭔가 체험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무당이야 말할 것도 없다.


신은, 귀신처럼 이 세상에 눈으로 보이지 않고 귀로 들리지 않는 개념이다. 

솔직히 말해 상나라, 주나라 시대 사람들이 보던 그런 경험과 다르지 않다.

이런 점에서 붓다는 점을 치지 않고도, 신에 의존하지 않거도 가장 바르고 알맞으며 또렷한 답을 찾아낸 최초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붓다도 신을 거론한 적은 자주 있다. 하지만 그는 신을 경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신들이 붓다를 경배했다. 붓다는 단 한 번도 신에게 기도한 적이 없다. 

신들이 붓다에게 청을 한 적이 있어도 붓다는 그러지 않았다. 이 점이 바로 붓다의 힘이다.


8

붓다는 말한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탐진치에 이끌리지 말고 담마 즉 진실을 보라고 한다.

그것이 바로 주역 정신이었다면, 그 주역 정신을 가장 정확하게 실천한 분은 붓다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불교 승려들은 계를 지키지 않으며 아나파나 수행을 하지 않는다.

붓다는 탐진치의 그물을 벗어나는 방법은 오로지 탐진치 뿐이라고 강조하셨다.

하지만 계 지키는 걸 조롱하고, 아나파나 사티를 거의 하지 않는다. 고기 먹고 술 마시고 돈 만지고 처자식 기르면서 태연하다. 그러고는 아나파나 사티는 묵조선이라고 뭉개면서 번뇌와 잡념을 일으키는 간화선을 한다. 간화선이라도 하면 그런 중에 사티에 이를 수나 있다지만 간화선마저 잘 하지 않는다. 그저 부적 써갈기고 귀신 달래느라 온종일 바쁘다.


나는 사찰에서 49재를 하고 천도재를 하고 구병시식을 하는 것에 완전히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수행을 해가면서 그 힘으로 해야지 공부 안하고 고기 먹고 돈 밝히고 계 어기며 하다가는 패가망신한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수행하지 않은 사람이 귀신을 접촉하면 그 과보를 반드시 받는다. 그래서 능력이 안되는 스님, 목사, 전도사 등은 정신질환자를 함부로 만나서는 안된다. 자신 없으면 신경정신과로 안내할 일이지 붉은 팥 뿌리고 기도한다고 해서 귀신이 나가거나 헛것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붓다는 평생 천신들과 노니셨다. 천신들이 붓다를 따라다녔다.

내 스승 삐냐저따 스님 역시 천신들을 다루지만 이 신들은 스님의 명령을 받아 일을 할 뿐이다. 

신들은 스님에게 조언을 할 뿐 강요하지 않는다. 강요하는 신도 더러 있지만 스님은 강요당하지 않는다.

스승께서는 가사 입은 몸으로는 귀신에게 절하지 말라고 이르셨다. 그래서 미얀마 곳곳에 있는 산신상 앞에서 결코 절을 하지 않았다. 그냥 제물이나 주어 달랠 대상일 뿐 결코 귀신에게 구걸하거나 기도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귀 자를 뗀 신도 마찬가지다.


붓다는 신들을 위해 설법을 하셨다. 그 정도는 돼야 탐진치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주역이 사라지고, 일부 그 정통 해석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이 주역을 사기에 이용하거나 자구 해석에 빠져 아무 이익도 없이 세월을 낭비하는 걸 볼 때마다 붓다의 위대성을 다시 한번 느낀다.


- 붓다는 열반에 앞서 이 세상에 더 오래 머물러 달라는 아난 등 제자들의 요구에 이렇게 답하신다.

"내 몸은 영원히 사라진다. 나는 다시 오지 않는다. 나는 담마 그 자체로써 존재할 뿐이다.  

그러니 담마(진리)를 등불로 삼아라. 여러분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

하지만 붓다의 육신이 남긴 게 한 가지 있다. 다비 때 나온 사리다.

사진에 보이는 사리는 열반의 땅 쿠시나가라에 2600여년 동안 묻혀 있다가 

우 찬드라마니 스님과 영국인 펩페가 발굴해낸 사캬 고타마 싯다르타의 진신사리로서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서 매우 가까운 땅 용인 보문정사에 모셔져 있다.

우 찬드라마니의 제자 가네쉬와르 스님이 쿠시나가라 열반지를 지키고 있는데, 

인도 종정이신 이 분이 대한민국에 담마의 등불이 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