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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소대장의 시신을 놓고 다급하게 후퇴하던 그 날의 숨막히는 순간

육이오전쟁 70주년, 돌아오지 못한 전사자 12만 2609명 가운데 우리 아버지의 사촌 李肅範(이숙범) 소위(전사 당시 계급)가 있다.

1.4후퇴 당시 쫓고 쫓기는 격렬한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돌아오지 못한 군인들은, 대개 전투 중 중공군이나 인민군에 밀려 후퇴하는 과정에서 전사하신 분들이다.

어쩔 수 없이 전우의 시신을 전장에 놓고 온 전우들은 얼마나 가슴 아프겠는가.

부하들이 소대장의 시신을 놓고 다급하게 후퇴해야만 하던 그 날의 그 치열하고 숨막히는 순간을 상상해본다.

 

어쩌면 아버지가 가야 할 전쟁이었지만 장티푸스에 걸려 가지 못하고,

또래 사촌이 집안의 지명을 받아 짧은 훈련만 받고 소위 계급장을 단 채 그대로 전선으로 달려갔다.

 

12만 2609명, 이 분들이 다 돌아오시기 전에는 육이오전쟁이 끝난 게 아니다.

우리 할아버지들로서는 매우 참담한 게, 우리 집안 식구들이 밥을 굶으면서 군자금을 모아 보낸 돈을 받은 독립군들이 당시 북한 인민군이 되었다는 사실이고, 그럼에도 할아버지들은 그들에 맞서 싸우라고 자식을 전선으로 보냈다는 또 다른 사실이다.

 

내가 북한과 친일파 등을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복잡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해방되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탈영병으로 숨어 살았을 것이고, 여순사태 투입 직전에 같은 군인을 죽일 수 없다며 탈영한 숙부는 죽을 때까지 탈영병 신분으로 차별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독립유공자가 되었지만, 자식들 중 대부분은 교육받지 못한 채 가난하게 살고... 형과 동생들에게 이런 집안 이야기를 해줘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이게 역사지 뭐.

 

* 육이오전쟁 기념 배지. GS리테일과 농협은행에서 나눠준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