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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

우리나라 최초의 <한자어 사전>을 만든 이야기

12년 전에 초판을 내고, 2019년에 3판을 낸 우리나라 최초의 <한자어 사전>을 만든 이야기를 적었는데, 지금은 그 세 배 분량의 원고를 다듬고 있다.
내가, 말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밀리언셀러 작가이고, 또 최초의 3밀리언셀러 작가라고는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남몰래 한없이 부끄러워 하는 일이 있다.
내 소설들은 대부분 재판 중쇄 때마다 손질을 하여 부끄러운 걸 조금씩 지워나가는데, 지금 봐도 아직 멀었다.
문장은 그만두고, 특히 단어를 잘못 쓴 경우가 많다. 어떻게 소설가란 사람이, 책을 150권이나 쓴 사람이 아직도 우리말을 잘 몰라 헤맨단 말인가.
우리말은 너무나 훌륭해서 문장이 다소 잘못 돼도, 앞뒤가 뒤섞여도 단어만 정확히 쓰면 대부분 무리없이 소통된다. 하지만 단어를 잘못 쓰면 그건 약이 없다.
나는 내 후배들이나 후손 세대들이 우리말을 더 정확하게 써서 자기 생각을 남에게 온전히 전하고, 남의 말을 그의 생각대로 알아듣기를 바란다.
말이 어지러우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
* 알고보면 순우리말만 쓰다가 어느 날 한자어가 밀려들어오고, 그러고도 몽골어, 일본어가 차례로 밀려들어오고, 고급 한자어는 양반사대부만 움켜쥔 채 백성들에게 비밀로 하고, 그러고도 이젠 영어까지 쓰나미처럼 들어오니 일반 국민들로서는 제대로 말하기가, 글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직에 있는 사람이나 후보들이나 말하는 거 보면 어떻게 모국어조차 우물거리나 싶다. 하지만 특별히 그 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내가 열심히, 더 열심히 죽을 때까지 사전 만들어 바칠 테니 제발이지 공부만 해주기 바란다.
* 잘난 척하네 하며 비웃는 저 사람 위해 몇 가지 물어보지.
화훼의 훼가 뭔지 아나?
분말의 말이 뭔지 아나?
회개의 회와 개의 뜻을 구분할 수 있나?
행복의 행이 뭔지 아나?
가정의 정이 뭔지 아나?
가액의 가와 액이 뭐가 다른지 아나?
조각의 조는 무슨 뜻일까?
이런 게 한 3천 개쯤 된다면 좀 공부를 하고 말하거나 글쓰는 게 낫지 않을까?
 
2019.12.28
 
<한자어 사전> 출간을 앞두고....소설가로서 가슴이 아프다
1980년 5월 18일에 광주시민들이 전두환 군부정권에 대항해 맨몸으로 궐기한 날, 대학교는 문을 닫어걸었다.
이때 소설을 포함해 두 권을 탈고, 학생 신분으로 문학시리즈에 내 이름을 올렸다. 그로부터 40여년이 돼가는 지금, 내가 쓴 책이 몇 권인지도 모를만큼 열심히 글만 써왔는데 막상 <글>에 자신이 없어진다.
두 가지 걱정이 있다. 하나는 독자들이 좋아하는 게 뭔지 이젠 잘 알지만 그렇게 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독자가 좋아하는 것의 정체, 뇌과학을 통해 나이 50 넘어 겨우 알았다. 그 정체는 무상 그 자체다. 감성이 뭔지 뇌과학으로 계산해보니 젊을 때 쓴 글이 부끄러워진다.
또 하나는 우리 언어의 역사를 살피다 보니 이 역시 얼마나 무상한지 진저리가 난다. 하필 지식이 폭발하는 시기에 소설가가 되어 숨가쁘게 달려오긴 했는데, 뒤돌아 보니 내가 찍어 놓은 발자국이 어지럽고 늙은 소나무 버국처럼 거칠다. 새 지식은 폭발하고, 옛 지식은 멸절하는 시대 한복판에 내 청춘이 서 있었다.
젊을 때는 밀리언셀러 작가라는 호칭을 은근히 즐겼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내 책이 서너 권이 함께 올라간 적이 있는데, 소식을 들을 때면 기분이 좋았다. 다 지나간 일이요, 아침이슬처럼 지금은 기억조차 흐릿하다.
한자어 사전을 만든 지 이제 14년이 되었다. 2005년 3월 19일에 초판 1쇄를 찍었는데, 마침 상해 복단(復旦)대학교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후배가 한문서적 만여 권을 들여와 내 서재에 들여놓았다. 8년간 중국에 머물며 자기 아파트를 판 돈으로 실컷 책을 사모은 후배 덕분에 듣도 보도 못하던 좋은 한적을 많이 보았다. 행복한 나날이었다. 시법에 쓰이는 한자 자료는 즉시 번역해 나 혼자만 보는 중이고, 그밖에도 나만 보기 위해 몇 권을 더 번역해 숨겨 놓고 본다.
후배가 가져온 책 중에 한자어 자전류가 굉장히 많았는데, 갑골문자로부터 거의 모든 사전류가 다 있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써온 한자어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알아보니 내가 쓴 한자어 대부분이 일본 총독부에서 만든 <조선어사전> 출신이라는 걸 알았다. 그 사전, 사실은 일본어사전을 통째로 들여와 마구잡이로 번역한 것이었다. 그 이후 나온 우리말 사전이 이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른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한자어 해설로는 우리 한문 고전을 읽어낼 수가 없다. 내 조상이 쓴 글을 내가 못읽다니, 이건 말이 안된다.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원인은 우리 국어대사전에 있었다.
유학다녀온 지 얼마 안되어 어리둥절한 후배를 꼬드겨 아예 내 서재에 살게 하고, 둘이서 우리 한자어 사전을 처음으로 만들어냈다.
올해로 14년이 되었다. 이번 증보판에는 거의 새 책 수준으로 많은 어휘를 올렸다. 550쪽이 넘는다니 욕심껏 담은 셈이다.
나는 전업작가를 선언한 1990년 이후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지 않은 날이 거의 없을만큼 부지런히 살아왔다. 하루를 3분하여 1은 소설에 쓰고, 1은 바이오코드에 쓰고, 1은 사전 만드는 데 썼다. 내가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데 공을 들이는 것은, 나를 평생 먹여살려준 독자들에게 고마움을 오래도록 전하기 위해서다. 내가 만든 사전 열 종이 모두 나가면, 아마도 우리말은 굉장히 또렷해지고 풍부해질 것이다. 나는 비록 좋은 사전을 들고 글을 쓰지 못했지만, 우리 후배 작가들은 좋은 사전을 넉넉하게 갖고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나는 그러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
* 노마드(책이있는마을의 출판 브랜드)에서 나온 <~우리말 잡학사전> <~우리말 어원사전> <~ 우리 한자어 사전>은 원래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이란 타이틀을 20년 넘게 달아왔는데(4권 나란히 놓인 사진이 그 버전의 마지막) 이번에 바뀌었다.
* ~<한자어 사전> 펀딩에 참여해준 독자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정말 열심히 만들었다. <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는 나 말고도 여러 사람의 손길이 배어 있다. 언젠가는 그들이 이 사전을 다듬고 더 채워 나갈 것이다.
* 1994년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500가지<지금의 우리말 잡학사전> 초판 출간 때 전국 중고교 국어교사들에게 한 권씩 보내드렸다. 지금은 그 책 분량의 3배가 되고, 종이값이 너무 비싸 그러지 못한다. 김영란법도 있고, 책이 출간되는 순간 이 책의 주인은 출판사라 나도 내 가족 밖에는 내 책을 나눠줄 수가 없다. 두루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