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가 무엇인가?
먼저 존엄의 말뜻부터 보자.
尊은 신에게 올리는 술잔을 가리킨다. 그래서 신성하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嚴은 두려워하고 삼간다는 의미다.
그러고보니 존엄사란 신성한 죽음,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죽음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런데 그런 죽음이 있는가? 죽음은 다 슬프고, 억울하고, 답답하고, 어쩌지 못할 뿐 거기에 무슨 신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존엄사란 말은 잘 성립되기 어렵다. 또한 죽는 당사자가 존엄하게 죽는 게 아니라 그걸 보는 이가 생각하는 존엄사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어휘를 쓰는 저의가 무엇인지 벌서부터 의심이 간다. 유족 입장의 존엄사지 죽는 당사자는 이런 화려한 수식을 갖다붙일 새도 없고, 의식도 없다.
그러니까 유족들이 창피하지 않고, 돈 낭비하지 않고, 병구완하느라 고생하지 않고, 저 하고 싶은 일 못해서 신경질나지 않고 존엄하게 버틸 수 있는 뜻이라면 혹 존엄사란 어휘를 써도 될런지는 모르겠다. 그러니까 유족 편에서 본 존엄사지 당사자의 존엄사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죽는 사람은 존엄한지 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어휘는 틀렸다.
이런 이유로 나는 자연사라는 어휘가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쓰기를 권한다.(웰다잉이라는 영어 어휘 역시 같은 이유로 부적절하다. 죽는 사람이 잘 죽을 순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자연사를 허용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판단하는 게 우선이고, 국회청문회나 방청회 같은 의견 수렴절차를 거쳐 법을 만들어야 한다. 무조건 반대, 무조건 찬성 식의 추태를 부리는 이들을 안보려면 뭐든지 반드시 학술 토론 과정을 거쳐 수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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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보라매병원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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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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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4일, 보라매 병원 응급실로 58세의 남자가 119 구급차에 실려 내원하였다. 신경외과 전공의는 뇌 CT를 촬영하고, 우측 측두부 및 두정부의 경막외 혈종이란 진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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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동의서를 받기 위해 환자 가족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고, 환자를 데리고 온 집주인에게 설명하고 동의서 서명을 요청하였으나 거부당하였다. 상황이 위급하여 동의서 없이 응급 수술을 시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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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중 환자 부인이 도착하자 담당 전공의는 응급 수술을 하게 된 경위, 수술 진행 상태, 수술 후 상태 등을 설명했고 부인은 대체로 이를 수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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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후 저혈압과 대량 수혈로 인한 파행성 혈관내 응고증, 간부전증, 급성신부전증 등 여러 가지 합병증이 발생하고 환자의 의식도 회복되지 않아 회복의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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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오후 환자 부인이 경제적 이유로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다며 퇴원을 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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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전공의는 환자의 상황을 들어 퇴원을 만류하였다. 담당 전문의 역시 퇴원을 만류하였으나, 부인은 동의도 없이 수술해 놓고 퇴원도 마음대로 못하게 한다면서 막무가내로 퇴원을 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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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상호 합의 하에 치료가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한 담당 전문의는 담당 전공의에게 현재의 환자의 상황(퇴원시 사망 가능성 있음)을 환자 보호자에게 다시 한번 주지시킨 다음 귀가서약서(환자 또는 환자 가족이 의료진의 의사에 반하여 퇴원할 경우 이후의 사태에 대해서는 환자 또는 가족이 책임지겠다는 내용의 각서)에 서명을 받도록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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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시에 따라 전공의는 12월 6일 환자 보호자로부터 서명을 받은 후, 당일 오후 2시 병원 구급차로 환자를 퇴원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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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환자는 간이형 인공호흡기의 도움으로 자가 호흡을 하고 있었으나 환자 가족의 요청에 의하여 이를 제거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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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사망 후 환자의 부인은 장례비 보조를 받기 위해 관할 파출소에 사망 신고를 하였다. 그러나 사망 진단서가 없는 상태에서의 경찰 신고는 병사가 아닌 변사 사건으로 처리되어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되었다. 조사를 마친 경찰은 환자의 부인을 살인 혐의로 구속하고 담당의사 3명을 살인죄의 공범으로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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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케의 신고로 수사가 이루어졌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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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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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처 A는 담당의사의 의학적 충고에 반하는 회생가능성이 있는 피해자의 퇴원을 강청하였으며, 병원 신경외과 전담의사 X는 이를 승낙하여 3년차 수련의 Y에게 피해자의 퇴원을 지시하였고, Y는 이에 따라 퇴원수속을 마치고 1년차 수련의 Z에게 피해자를 집까지 호송하도록 지시하였으며, Z는 피해자를 집까지 동행한 후 피해자 처의 동의를 받아 피해자에게 부착하여 수동 작동 중이던 인공호흡 보조장치와 기관에 삽입된 관을 제거하여 가져감으로써 피해자를 호흡정지로 사망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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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는 A와 X 및 Y를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공동정범으로 Z를 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공동정범으로 공소를 제기하였고, 제1심 법원인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합의부는 A와 X 및 Y에 대하여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공동정범을 인정하였으며, Z의 행위에 대해서는 이를 작위가 아닌 부작위로 보고 Z에게 의료행위의 중지(퇴원결정)를 방지할 지위나 의무가 없다는 것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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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와 X 및 Y는 항소하였고, Z에 대해서는 검사가 항소하였으나, 항소법원에서는 A에 대하여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정범을 인정하였고, X와 Y에 대해서는 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방조범을 인정하였으며, Z에 대해서는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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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상고를 포기하였고, X와 Y는 상고하였으며, Z에 대해서는 검사가 항고하였으나, 대법원은 이들 상고를 모두 기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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