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산대사의 청허집을 살펴보다가 부모를 그리워하는 제문이 있어 옮겨본다.
휴정은 그의 나이 57세되던 1576년 음력 1월 13일, 양력 2월 22일에 중병을 앓던 중에 제사하는 글을 지어 아는 형에게 맡기고 제사를 대신 지내달라고 부탁했다.
서선대사는 아홉살에 어머니를 잃고, 열살에 아버지를 잃고, 이어서 열한살 무렵에는 두 형과 누이마저 잃고 천애고아가 되었다. 마침 고을 군수가 그를 어여삐 여겨 양자로 거두어 서울로 데려가 성균관에 입학시켰다.
- 병자년 정월 13일, 집을 나온 소자, 묘향산 심원동 상남대에 병들어 누워 향과 폐백을 갖추고 사람을 보내 부모님의 쌍무덤 밑에 삼가 고하나이다.
엎드려 생각하니 구천(九天)은 높고 구원(九原)은 아득한데, 우리 아버지는 어디 계십니까, 우리 어머니는 어디 계십니까.
누구에게 부모가 없을까마는 우리 부모의 은혜는 다른 사람과 아주 다르며, 누구에게 생사가 없을까마는 우리 부모의 죽음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지난 일을 생각하오면 사람들은 그 인자함을 칭송하면서도 그 유한(幽閑)한 인자함은 알지 못하고, 엄격함은 알면서도 도덕의 엄격함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 인자함은 후손들을 어루만지기에 넉넉하고, 그 엄격함은 선열(先烈)을 잇기에 넉넉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세 자식이 머리를 땋고, 소자가 이를 갈던 해에, 인자한 어머니는 난새를 타고, 엄격한 아버지는 기마를 타고 떠나셨나이까. 바람은 옛나무에 슬프고 달은 빈 문을 조상하였나이다. 소자가 뜰에서 절한들 누가 시를 가르치고, 문앞에서 절한들 누가 짜던 베를 끊겠습니까.
아버지를 생각하면 창자가 끊어지고,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피로 변합니다. 천하와 인간 세상의 그 어떤 슬픔이 이보다 더 하겠나이까. 아아, 슬프고 애달파라.
소자는 외로운 그림자를 쓸쓸히 나부끼면서 이름을 관학에 두었다가, 학문을 그만두고 산에 들어가 머리를 깎은 뒤에 선교(禪敎)의 큰일을 맡고, 금궐(金闕)에 두 번 조회하였더니 세월은 흘러 어느새 백발이 성성합니다.
두 형이 이내 죽고, 누이마저 갔으니 하늘을 불렀으나 하늘은 높아 부르짖을 길이 없고, 땅을 두드렸으나 땅은 두터워 호소할 길이 없었나이다.
오늘에 이르러 은애(恩愛)를 끊는 것이 부처님의 법이라 하지만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향을 생각하면 구름이 슬프고, 바람소리가 슬픕니다. 아아, 슬프고 애달파라.
생각하오면 소자가 처음 났을 때, 무릎에 두고 손바닥에서 길렀으니 아버지의 은혜는 하늘과 같고,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뱉었으니 어머니의 덕은 땅과 같나이다. 또 생각하오면 어머님이 돌아가시던 날 아침에 이 소자를 “아가!”하고 세 번 부르고 큰 소리로 통곡하였으니, 아아 슬프고 애달픕니다.
또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밤에는 소자를 안은 채 베개를 높이하고 이불 속에서 고요히 가셨으니, 아아 슬프고 애달픕니다.
파란 등불은 벽에 걸렸으나 길쌈하는 어머니 모습 다시 볼 수 없고, 시 짓고 술 마시는 아버지를 다시 뵐 수 없사오니, 말소리와 모습이 아득하옵니다.
그러하오나 저승과 이승은 하나의 이치요, 아버지와 자식은 하나의 기운이니 천리 밖에서 한번 통곡하고, 만 번 절하옵니다.
백발의 한 형이 저를 대신하여 제사하나이다.
병자년 정월 열사흗날 불효 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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