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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조중동 읽지 말라는 사람들

나는 거의 모든 신문을 읽는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를 기본으로 읽고, 나머지는 기사별로 찾아 읽는 편이다. 외국신문도 가끔 찾아 읽는다. 우습고 같잖지만 조선의 노동신문만은 인터넷이 차단되어 보지 못한다.

 

조중동 읽으면 큰일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볼 때 나같은 독자는 회색분자처럼 여겨질지 모르겠다.

과연 그럴까?

 

난 안티조선 운동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보지 말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누가 누구에게 보라 말라 할 권리가 없다. 또 하나의 강요요, 결국 독재자들이 하던 짓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단언컨대 조중동 읽지 말라고 외치는 사람들은 늘 조중동을 읽고 있을 것이다. 논조에 동의해서 읽지는 않는다 해도 그들의 적인 조중동이 뭐라고 하나 궁금하니 반드시 읽게 될 것이다. 한겨레신문이나 오마이뉴스에는 조선일보 기사만 골라 비판하는 글이 자주 나온다. 신문이 신문을 뉴스거리로 삼는 것은 참 드문 일이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남의 언론을 공격하는 게 유행이 되어 제 편은 옹호하고 남의 편은 헐뜯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하다 못해 상도의라는 게 있는데 언론시장에선 이게 무너져버렸다.

 

조중동 읽지 말라고 목청 높이는 사람들 주장을 듣다보면 두 가지 나쁜 기억이 떠오른다. 하나는 나 어린 시절, 유신정권이 반공교육에 심취해 노동신문이나 북한 도서 열람을 원천 금지해버린 것이고, 또 하나는 서구 열강이 쉬임없이 나타나 통상을 요구할 때 '서양 오랑캐가 침범했는데도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의하는 것이요, 화의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척화비를 나라 곳곳에 세워놓고 문을 딱 걸어잠근 일이다. 둘 다 어리석은 짓이었다.

 

1991년에 아는 중국 동포가 김일성전집을 보내주겠다고 팩스로 알려온 적이 있는데, 이걸 당시 안기부가 딱 잡아서 나를 심문한 적이 있다. 간단한 조사였지만 사사로이 오가는 팩시밀리가 도청된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렇게 빨리 요원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에 또한번 놀랐다. 물론 김일성전집은 중국에 놀러갔을 때 기어이 보았는데, 너무 재미없어 대충 보다 던져버렸다. 그때 안봤으면 그뒤로도 늘 궁금했을 것이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걸, 나같이 대학 나와 글 쓰는 작가조차 읽지 못하게 한다면 그건 정상이 아니다. 80년대에는 자본론이니 뭐니 몇 가지 금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마치 조선후기 천주교도들이 성경을 숨겨 지니고 있는 것처럼 늘 불안했었다. 그런 좌파 이념서들조차 오랜 동안 서재에 쳐박혀 있다가 언제 어떻게 버렸는지 모르게 서재에서 사라져버렸다.

 

대원군 이하응 씨가 서구열강에 대처한다는 계책이 겨우 척화비나 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라가 망하지 괜히 망하는 게 아니다. 적이 왔으면 누군지, 왜 왔는지, 무기는 얼마나 센지 다 조사해야 하는데, 나만 눈감으면 되는 줄 알고 낙엽더미에 머리 쳐박는 꿩처럼 제 머리만 숨겼다. 그 무렵 미국 군함은 일본에도 찾아갔는데 일본인들은 '아직 개항준비가 안됐으니 몇 년 연기해달라. 우리 청년들 좀 데려가 너희 신문명을 가르쳐 다오.' 해서 당시 서구 문물을 순차적으로 받아들였다. 똑같이 서구열감의 야욕에 노출됐지만 우린 눈 감고 있었고, 일본은 눈 부릅뜨고 적의 기술을 배우고 익혀 기어이 우리나라와 우리나라처럼 어리버리 굴던 아시아 여러 나라를 단숨에 먹어치웠다.

 

조중동 보지 말라고 목청 높이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들이 적이라면 적에 대해 더 자세히 배우는 게 좋지 않을까.

적을 모르고 어떻게 싸우겠는가.

일반 독자들이야 제목만 훑고 지나가더라도 당신들은 밑줄 쳐가며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저 국정원에서 북한 신문 읽듯이 가로 읽고 세로 읽고 대각선으로 읽어야 한다.

 

나처럼 수십 년 글을 써온 사람이나 또 이만한 세월 학문을 한 사람이나 혹은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은 나름대로 세상을 보는 안목을 갖고 있다. 한겨레신문 보면서, 오마이뉴스 읽으면서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끔 생각해 보기 바란다. 나는 절대선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또한 절대악이 있다고도 믿지 않는다. 또한 독자들이 책 사준 덕분에 20년 넘게 저작권료로 먹고사는 작가의 눈으로 볼 때 <독자>는 결코 어리석지 않다. <독자>를 계몽대상으로 보지 말기 바란다. 우리 독자들은 최남선이나 이광수의 독자가 아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원수를 갚거나 분풀이를 하고 싶다면 그에 대해 철저히 연구하기 바란다. 오원이란 사람은 아버지와 형을 죽인 초나라 왕에게 복수하기 위해 30년간 초나라를 연구했다. 그럴 자신이 있어야 감히 '원수를 갚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