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기억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같다.
언어, 소리, 빛, 움직임 등이 서로 나뉘어 저장되고, 이 가운데서도 용도에 따라 완급을 가려 중요하게 저장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언어, 소리, 빛은 두뇌의 측두엽과 후두엽에 주로 저장되는데, 움직임 같은 경우는 해마라는 곳에서 처리하는 모양이다. 물론 소리와 빛 중에서 움직이는 행동에 관련된 것은 함께 해마에 저장되기도 한다.
두뇌는 기억하지 못해도 눈은 기억한다는 기사가 있다.<기사보기>
나 같은 경우, 소리 기억은 약하고 빛 기억은 좀 괜찮은 편인 것같다. 물론 빛 기억을 좀 한다는 건 내 두뇌 속에서 비교적 그렇다는 말이지 화가나 만화가들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는 능력이다. 해마는 기능이 좀 떨어져서 운동반사능력이 약간 떨어진다.
지난 주 벌초하러 산에 오르다가 나무껍질만 보고도 그 나무 이름을 아는 능력이 어디서 나오나 혼자 고민해봤다. 나는 산간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고등학교 때 1년간 농업고 임업과를 다닌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나무 이름을 제법 아는 편이다.
잎이 나고 꽃이 피어 있으면 그걸 미루어 짐작한다지만 나 같은 경우 한겨울에도 나무껍질만 보고도 그 나무가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다.(어떤 작가가 고추나무에는 푸른고추, 빨간고추 두 가지 있다고 주장하여 웃은 적이 있는데) 그런데 그걸 글로 적어보라고 하면 잘 안된다. 한참 생각하면 차이를 약간 느낄 수 있는데, 눈으로 인식할 때만큼 확연하지 않다. 눈으로 보면 금세 그 차이를 아는데 머리로 생각해 글로 적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못하지는 않지만 시냅스가 연결되는데 상당한 과정이 필요한 듯하다.
기억의 천재들이 불특정 어휘를 백 개씩 외우고, 무슨 문장을 짧은 시간 안에 외운다는 건 나로서는 그다지 부러운 일이 아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난 고교 1년을 두 번 보냈는데, 여긴 인문고인 공주고 1학년) 연상기억법이라는 걸 배웠는데 어휘가 백 개든 2백 개든 얼마든지 외울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할 필요가 없다. 그런 기억은 휘발성을 가져서 오래 가지 못한다. 학습에도 이용하기 어렵다. 시험 목전에서 하면 효과가 있지만 시험 지나면 머리에 남질 않는다.
그리고 숫자를 그림으로 연상하여 외우는 방식이 있는데, 이걸 해보지 않아 모르지만 훈련을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해봄직한 일인데, 연상기억법과 비슷하다고 본다.
나는 음치라서 소리 구분을 잘 못한다. 내 형제들이 오늘날까지 고향인 충청도 사투리를 거의 잊지 않고 있는 것에 비해 나는 사실상 충청도 사투리를 다 잊었다. 액센트만 약간 남아 있고 사투리는 거의 잊어버렸다. 그런데 음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알고 있다.
중학교에 입학해 30리길을 걸어다니던 1971년, 잘 먹지 못하다보니 체력이 일찍 바닥나면서 신경쇠약증에 걸렸다. 그때 귀신을 보고 환청, 환시에 시달렸는데 그때 나는 학교 다녀오는 늦은 저녁 시간에 짐승이 우는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와 함께 색깔을 느꼈다. 소리는 소리대로 들리면서 그 소리의 색깔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이다. 노란 소리, 빨간 소리, 하얀 소리가 구분되었다. 아마도 절대음감이나 하는 사람들이 이런 능력을 갖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그때 만일 내가 음악 공부를 했더라면 기본은 다졌을 텐데, 불행하게도 전교에 풍금 하나 있는 학교에 다니다보니 오늘날까지 솔과 시를 구분하지 못하는 음치로 남아 있다.
이러고 보면 기억을 잘하고 못하는 것은 뇌 기능의 문제라는 게 더 확실해진다.
난 사람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고질병을 갖고 있는데, 그 원인을 알고 있다. 상대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보니 외우질 못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이름이 암호처럼 돼 있어서 기억하기에 불편하다는 단점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상대를 오래도록 만나야 할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할 때는 명함을 받자마자 호주머니에 찔러넣고, 집에 가서는 명함박스에 집어던지기 때문이다. 내 성격상(1045) 단점이 아닌가 싶다.
요즘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명함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한번 자세히 읽어보고 연상기억법으로 엮어본다. 김일성이라고 하면 '한 개의 별'이라고 속으로 읽어보거나 김정일이라고 하면 '네가 정말 태양같은 놈이냐?'하고 기억하는 방식이다. 귀찮기는 하지만 주요 인물들은 이렇게 외워나간다.
기억에는 확실히 어떤 메커니즘이 있고, 우린 그걸 알아야만 좋은 기억력을 유지할 수 있다. 육법전서를 외워야 하는 사법고시도 이런 능력이 있어야 일단 가능하다. 물론 기억력과 판단력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지만 우리 사회는 기억력이 우수한 사람을 인재로 알아주기 때문에 기억력은 늘 잘 가다듬어야 한다.
(기억력을 증진시키는 영양요법, 운동요법이 있다. 블로그 어디에 있을 텐데 나중에 찾으면 연결시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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