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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바니 도란 도조 도쉰 다래

바니, 성을 잃다

지난 주 일요일, 어머니 팔순이라고 동네 어른들 모시고 점심내느라 바니를 집 잔디마당에 하루 종일 두고, 그러고도 잔치에 먹다 남은 고기를 저녁과 이튿날 아침, 저녁까지 세 끼를 내리 주었더니 그만 탈이 나고 말았다.

 

일요일 저녁, 집으로 돌아와 자는데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럴 때마다 가서 안아주고 달래주는데 아침까지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바니를 안고 공원에 두 번이나 다녀왔다.

 

아침에는 잔뜩 토해 놓았다. 그러고는 밥을 먹지 않았다. 고기를 너무 많이 줘서 체했나 보다 했더니 이 날 내내 한 시간 간격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다 날이 지나 이튿날 아침 병원에 가 여러 가지 진단을 의뢰했다.

 

초음파 - 자궁축농증이 보인다고 한다. 자궁축농증이 걸리면 원래 질을 통해 고름 같은 게 나오는데 바니는 이런 증세를 보인 바가 없다. 의사에게 물으니, 그럴 수도 있단다. 어차피 중성화 수술을 12월 중으로 하기로 했는데, 며칠 당기는 것뿐이니 일단 받아들였다.

 

엑스레이 - 척추 꼬리뼈 부근 세 마디서 석회화된 디스크가 보이고, 절편 하나가 눈에 띄었다. 심각하다면서 의사가 고민했다. 난 바니가 걷는 데 문제가 없고, 아직까지 이상이 없다고 하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디스크 수술을 한 해마루 병원(2차진료기관)에 파일을 보내 거기 자료하고 비교해 소견을 달라고 주문했다. 그러기로 했다. 하루 뒤, 연락이 왔는데 절편은 수술 흔적이고, 나머지도 수술 흔적일 뿐 특이 소견이 아니라고 답을 해왔다. 그래서 또 넘어갔다.

 

혈액검사 - 사흘 걸려 결과가 나왔는데,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이에 대해 자궁적출술을 해서 완전히 마무리가 된 뒤 다시 혈액검사를 해 조사하기로 했다. 특정 수치에서 믿을 수 없는 결과가 나와 무슨 질병인가가 의심된다고 의사가 말했다. 나는 모르는 질병이다.

 

통증 - 원인을 알 수 없다. 사람으로 치면 요로결석이나 혹 식중독 같은 것으로 아플 수는 있는데 차차 두고보자고 했다.

 

수술을 위한 준비로 약을 먹이다가 13일 오전 열시, 바니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수액을 맞다 오후 2시에 염증이 있는 자궁을 적출해냈다. 사진을 보니 큰 지렁이 같은 조직이 보인다. 염증이 어느 정도인지 실물을 갈라보겠느냐고 해서 그만두라고 했다. 덩어리째 뗀 거니 굳이 열어볼 필요가 없다. 바니는 이 날 퇴원했다.

 

어제, 오늘 통원 치료를 하고, 내일부터는 집에서 처치를 한다. 금요일에 실밥을 뽑을 예정이다. 진통제를 먹이지 않는데 아프다는 호소는 아직 없다. 식중독 아닌가 싶기도 한데, 더 지켜봐야겠다.

 

가장 우려했던 소변 문제가 가장 쉽게 해결되었다. 원래 자궁적출을 하게 되면 복부 상처 때문에 소변을  짜주지 못하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 큰 골칫거리였다. 사실 이 문제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 중성화 수술이 늦어진 것이다. 해마루병원에 물으니 소변관을 삽입하여 자연배출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사흘 이상은 배뇨관을 삽입하지 못한다고 걱정했다.

 

그런데 용인의 바니 주치의 이 원장은 자궁을 적출하게 되면 수술 자극으로 오줌을 그냥 흘리는 수가 있으니 배뇨관을 삽입하지 말고 일단 지켜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병원에 있는 동안 의사가 안을 때마다 오줌을 흘리는 것으로 보아 배뇨 기능이 아주 나쁜 건 아니라고 확신했다.

 

막상 집에 온 뒤 바니는 알아서 소변을 배설했다.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알아서 눈다. 짤 수 없으니 저 혼자 힘으로 봐야만 하는데, 아직 무리없이 보고 있다. 다행이다. 상처가 아문 뒤에도 스스로 배뇨를 해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배뇨 문제로 12월에 어디 멀리 여행을 가려고 예정하면서 그때 중성화 수술(내내 자궁적출술)을 맡겨 한 일주일 입원시켜놓자고 꾀를 냈는데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된다. 배뇨를 할 수 있다면 병원에 맡겨도 되고, 일반 가정에 단기 위탁(인터넷에 애완견 단기 위탁을 모집하는 분들이 있다)을 맡겨도 된다.

 

내 자유가 희미하게 보이는 듯하다. 그간 바니가 디스크 수술을 한 뒤로 약 2년간 나는 거의 바니와 일심동체로 살아왔다. 어딜 가나 차에 싣고 다녔다. 회의 중간에 나와 차에 앉아 있는 바니에게 물을 주거나 소변을 짜주고, 짧게라도 바람을 쐬주곤 했다. 이제 이런 구속에서 바니도 나도 해방될 수 있을 것같다. 정성을 버리지 않으니 하늘이 이런 자유를 허락해주는 듯하다.

 

기왕이면 중성화 수술 효과로 그 더러운 성질머리 좀 고쳤으면 좋겠다. 집사람은 그놈의 성질을 핑계로 바니 관리에서 완전히 손을 뗀 상태다. 그러니 나만 죽는다. 하긴 내가 기르던 내 개의 흔적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바니는 집사람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는 신분이다 보니 집사람에게 아무리 간절히 호소해도 별로 쓰다듬어 주지도 않는다. 게다가 집사람이 큰 마음을 내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다 몇 번이나 물릴 뻔한 적이 있다. 하필 반신불수에 무는 개라니 하면서 혀를 차는 집사람하고 바니는 도무지 가까워질 것같지 않다.

 

세상에 나 하나 밖에는 믿을 사람이 없다고 저러니 바니 견생도 이래저래 고달픔을 면할 길이 없다. 요 며칠은 나도 바니를 만질 때 반드시 입마개를 해야만 한다. 상처 부위를 조금만 건드려도 이를 드러내며 물려고 덤빈다. 이걸 애지중지 기르는 내가 장한 것이겠지...

 - 하반신 신경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해 뒷다리가 부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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