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바니는 태어나 두 달간 극진한 사랑을 받다가 분양된 이후 잡견 취급을 받으며 5년간 참담하게 살았다. 걸레뭉치가 되어 비오면 비 맞고, 눈오면 눈 맞고, 짜든 맵든 주인이 주는 거면 죽지 못해 먹으며 살아남았다.
그러다 요행이 리콜되어 심장사상충 치료를 받고 더러운 성질도 고치면서 차츰 애견세계로 복귀했다. 우리집에 개가 많은 상태에서 돌아오다 보니 바니는 처음 실외견으로 제2의 견생을 시작했다. 제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3대가 모여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자유를 누리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실내견인 도조에 비하면 하인이나 머슴 취급이었다.
제 어머니, 할머니는 비록 바깥에 사는 실외견이지만 '우리집' '우리 식구'라는 소속감이 분명해 주인에게 요구도 하고, 신경질을 부릴 때도 있지만 이 바니는 그게 뭔지 몰랐다. 그저 밖에 있으니 일반 잡견들처럼 자기 자신을 낮춰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안아줘도 뭔지 모르고, 저를 불러줘도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5년간 짧은 쇠줄에 묶여 살다보니 주인이라는 년놈은 무서운 년놈이고, 가까이 오면 때리기나 하고 뭐 하나 도움이 안되는 것들이라는 인식이 박힌 것이다. 그러니 제 어머니, 할머니가 주인을 보기만 하면 히히힝 구르며 좋아 죽는 시늉을 해도 그게 뭔질 몰랐다.
그런 중 어머니, 할머니가 먼저 떠나고, 실내견으로 도도하게 버티던 도조마저 하늘로 간 뒤 마침 반신불수가 되어 어렵게 실내로 들어왔다. 하지만 실내에서도 일정 구역을 벗어나지 못한 채 마비된 몸을 웅크린 채 옛날처럼 고독하게 살았다. 안아줘도 머리를 쓰다듬어 줘도 긴장했다. 웃으며 바라보아도 감히 눈을 맞추지 못했다. 실내견과 실외견의 차이란 주인과 눈을 얼마나 오래 맞추고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마도 자연 상태에서는 눈 맞추는 게 어려운 모양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눈을 빤히 바라보는 것은 적의를 가졌을 경우라고 들었다. 그러니 훈련이 돼야 바뀔 수 있다.
그런 지 1년이 지났다. 밤이 깊도록 아무 기척이 없으면 소리를 마구 지른다. 오늘은 왜 산책을 안나가느냐고 보채는 것이다. 배 고프면 밥 더달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겨드랑이에 머리를 파묻으며 친근감을 과시하기도 한다. 주인이 말없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왜 절 안데려가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마침내 애완견이 된 것이다.
저 소변 짜주기 위해 어딜 가든 차에 싣고 다니며 스킨십을 하다보니 바니가 사랑을 알게 된 것이다. 반신불수 애견을 늘 차에 싣고 다니는 주인도 장하지만, 차에 실려다니는 바니도 장하다. 주인이 저를 남겨두고 떠나도 그 좁은 의자에 앉아 서너 시간쯤 너끈히 버틴다. 주인이 곧 돌아올 거라는 확신으로 버티는 것이다. 길지는 못하지만 주인 눈도 빤히 바라본다.
그래도 도조처럼 자기가 인간인 줄, 자식인 줄 착각하지는 못한다. 일정 경계를 넘지는 못한다. 감히 내 팔을 베고 잠든다거나 다리 가랑이 사이로 기어들어 잠들지는 못하는 것이다. 요즘들어 사랑이 뭔지 조금씩 알기 시작한 뒤로 부쩍 보챈다. 뽀뽀도 할 줄 안다. 우리 바니가 이렇거늘 세상 어떤 생명이 사랑을 마다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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