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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애견일기3 - 리키 바니

"아이고" 우는 바니

 

오늘 책 정리를 하려고 거실에 있던 바니를 침실로 들여보냈다. 서재에서 책 끌어내다 거실에 쌓아야 하니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24시간 얼굴 마주보며 살아온 바니가 구슬피 우는데, 그 울음소리가 꼭 노인네들 울 때 내는 "아이고" 같다.

- 아이고, 아이고.

전에 우리 할머니는 숙부들이 다투거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마루에 나와 두어 시간 그렇게 우시곤 했다. 그걸 누가 '사설 늘어놓는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는데 그때는 우리 할머니만 그런 게 아니고 동네 할머니들이 다 그랬다. 아마 우는 방식이 그 시대에는 그랬던 것같다. 할머니가 사설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어 끝까지 들어주었다. 혼자 하는 연극처럼. 나도 남의 집 할머니가 사설할 때 어른들 틈에 끼어 들은 적이 몇 번 있다.

 

할머니 얘기는 흘러간 옛날 얘기일 뿐 요즘에는 그러는 할머니들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기억하는 그 시기의 우리 할머니는 겨우 50세 중반 무렵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열아홉엔가 시집올 때, "시어머니는 곧 늙어죽을 테니 걱정 마라"고 매파가 말해 그런 줄 알고 왔더니 웬걸 마흔 밖에 안되고, 그 마당에 애까지 낳아 '막내도련님'까지 기르면서 큰아들 낳아 기르느라고 애먹었다고 한다.

 

우리 바니는 나없이는 살 수가 없는 애물단지다. 소변을 못보니 정해진 시각에 맞춰 짜줘야만 한다. 그걸 나밖에는 할 수가 없다. 사나와서 절 도와주려는 사람마저 물어버리기 때문이다.

누군가 작정하고 도와주면 안될 것도 없겠지만 여태 내가 했으니 바니는 그런 줄로만 알고, 내가 안보이면 저렇게 울기만 한다.

바니가 '아이고, 아이고' 구슬피 우니 그 바쁜 와중에도 저것이 대체 어쩌려고 내게 붙어 저리 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가서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 바니가 붙은 게 아니고, 제 처지가 불쌍해 내가 데려온 거지만 저와 나의 인연이 이토록 모질다.

 

저도 장애가 있으니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피치 못해 저를 차에 태워 데리고 나가면 일이 끝날 때까지 서너 시간도 기다려준다. 별 불만이 없다. 집에서도 손님이 오거나 일할 때는 케이지에 가두는데, 서로 바라볼 수 있는 처지만 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꼬마 리키처럼 간식내놔라, 장난감 내놔라, 놀아달라 보채질 않는다. 그저 생각날 때 주인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앉거나 누워 있는다. 간식 달라고도 안하고 놀아달라고도 안한다. 다만 꼬마 리키가 엄마 따라 산책나갈 때면 두어 번 끙끙거리다 내가 안나가는 걸 보고는 투정을 딱 그친다.

 

한밤중 잠을 자기 전, 동네 사람들 이목이 별로 없을 때 꼬옥 안아서 골목길을 한 바퀴 돌아주면 바니는 하늘을 날듯이 좋아 뽀뽀를 해대고, 즐거운 신음을 낸다. 놀이터에 잠시 내려주면 절룩절룩 기어다니면서 즐거워한다. 

그런 데도 크게 보채지 않는 걸 보면 기특하다. 운동을 많이 시키면 도리어 부작용이 있는 듯해 그러지도 못하는데, 제 처지를 알고 그만큼의 작은 행복만 누리려고 그러는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바니는 열 살, 앞으로 10년을 더 헤아려본다. 이러다 내가 제대로 못해주면 어쩌나 걱정이 들기도 한다. 그런 일이 없어야 하는데, 우리 바니가 작은 복이라도 타고났기를 바란다.

 

오늘, 책 정리하다가 약장에 있던 바니 엄마 '다래' 약을 서너 가지 찾았다. 카르니틴을 비롯한 심장계열 약이다. 구하기 어렵고 비싼 약은 동물병원에 갖다 아픈 개가 있으면 주라고 해놓았고, 나머지는 먹다만 것들이라 줄 수가 없다.

심장병을 앓던 다래에게 그런 것들을 먹이면서 하루라도 더 살아달라고 빌던 그 때가 생각이 나 잠시 눈이 시큰했다. 동물병원에서 팔지 않는 사람 약이라 눈치보며 약사에게 부탁하던 일, 국내에 없는 약 사려고 인터넷 뒤지다 영국 사는 처제에게 부탁해 뒤늦게 사먹이던 일 등 다래 간병하던 일이 어제 일처럼 주르르 떠올랐다. 다래는 그 많던 약을 다 먹지 못하고 가고, 약이 남았는데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오늘 다 정리해 버렸다. 그나마 다래가 남기고 간 딸 바니가 있으니 다래에게 못해준 정성을 그 딸에게 해줘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 바니 엄마 다래. 아버지는 말티즈 믹스견 희동, 엄마는 잉글리쉬 코커 스파니엘 도리라서 털이 흰 바탕에 노릇노릇하다.

2007년 한창 아플 때 사진이다. 2008년 4월 초 내 품에 뛰어들어 숨을 놓았다.

 

- 다래 딸 바니. 바니 아빠는 말티즈 '도반'이라 엄마 다래보다 털이 하얗다.

2012년 4월초, 유세 차 진주에 갔을 때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기다리는 중이다.

서너 시간마다 한번씩 들러 요쿠르트 먹이고, 소변 짜주고, 잠시 안아 주변 구경시켜주면 바니는 아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