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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

할머니란 무슨 뜻인가?

<동국대 청소 할머니의 삭발식 / 한겨레신문>

 

이 기사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물론 40대 이하 독자라면 별로 놀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안다.

내가 놀란 것은 62세인 분을 할머니라고 제목을 단 한겨레신문 기자 때문이다.

이 뉴스는 한겨레뿐만 아니라 다른 신문에도 올랐던데 거의 다 '할머니'라고 표현했다.

 

병원이나 공공기관 민원실에 가면 호칭 문제로 혼란을 일으키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얼마 전 나더러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간호사가 있어 어르신의 기준이 뭐냐고 따진 적이 있다.

"그냥 누구 씨라고 하기 곤란하면 다 어르신이라고 불러요. 마땅한 호칭이 없잖아요?"

이런다.

고등학교 졸업해 간호조무학원나와 막 취업한 간호사들은 20대 초반이다. 아버지 나이가 40대 중후반에서 많아야 50대 초반이다. 이러다 보니 아버지 또래들은 죄다 "어르신이나 아버님"이 돼버리는 듯하다.

 

위 기사에 나오는 분도 62세인데, 비록 회갑은 넘었지만 이 나이 여성을 가리켜 할머니라고 부르는 건 조선시대 방식이고, 지금은 다르다. 20년 전만 해도 회갑이 큰 전환점이라고 했는데 요즘에는 회갑잔치하는 사람이 없다. 회갑을 흔해 빠진 생일에 불과하다고 보는 시각이 생긴 것이다.

 

법률적으로 만65세부터 노인이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작 본인들은 70세는 돼야 노인이라고 생각한단다.

이렇게 65세가 넘은 분들도 노인이니, 어르신이니 하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법원주변에서는 검사나 판사를 영감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아이들 놀림감이 돼버린 뒤로는 사라졌다. 젊은이들한테서 영감탱이로 불리기 때문에 호칭의 희소가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전두환 전대통령 같은 경우 50대에 어르신으로 불렸고, 본인도 이 호칭을 즐겼던 듯하다. 성취한 어른 정도라는 의미로 쓴 듯하다. 30년 전 시대 풍경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르신은 경칭이 아니라 노인이라는 말과 같아졌다.

거기에 할아버지, 할머니는 집에서 부를 때는 부모의 아버지, 부모의 어머니지만 밖으로 나서면 세대를 호칭하는 어휘로 돌변한다. 유치원 아이들은 30대 초반인 제 부모보다 더 나이가 들어보이면 종종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호칭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면 40대 초반부터 그런 말을 듣기 십상이다. 대개 같은 느낌이라는데 듣는 입장에서는 경기가 인다. 나는 48세 때 동네 유치원생한테서 할아버지란 말을 듣고 하루 종일 우울한 적이 있다.

 

아픈 사람에게 건강하시라고 덕담하듯이 나이가 들어보여도 늙었다는 걸 강조하면 좋아할 리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세대를 가르는 호칭은 좀 깎아서 불러줘야 한다. 그래서 난 81세이신 어머니를 기준으로 하여 70대 노인들은 아주머니, 아저씨로 부른다. 80대는 돼야 어르신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40대, 50대, 60대는 맨이름에 씨 자를 붙이면 된다.

 

30대 후반 여성이 아가씨라는 호칭을 듣고 몹시 기뻐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늙으면 그런 호칭에 더 목말라한다.

<노인 기준, 65세가 아니라 70세, 75세로 바꿔야 / 조선일보>

- (기사에 나오는 글 중) 노인의 기준이 65세 이상으로 정해신 것은 평균 수명이 50세 미만이던 19세기 중반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에 의한 인위적인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