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전백승(百戰百勝)은 없다
백전(百戰)에서 백승(百勝)하는 사람이 있을까?
분명히 말해서, 확실히 말해서 없다!
수백 명에 이르는 역사인물을 소설로 쓰고, 등장인물로 다루다보니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특별한 게 없다는 걸 알겠다. 누구든 패할 수 있고, 누구든 이길 수 있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손무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손자병법>에는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구절이 나온다. 백전불태를 더 강조하기 위해 사람들은 흔히 백전백승이라고 고쳐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백전(百戰)을 해석할 때 흔히 오류를 범하는데 ‘백 번 싸워’가 아니라 ‘백 가지 싸움을 해도’이다. 한문이라는 게 자의적인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므로 둘 다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병법에서 말하는 백전은 다양한 전투를 가리키는 용어다. 수전(水戰), 공성전(攻城戰), 기마전(騎馬戰), 포격전(砲擊戰), 궁전(弓戰), 전차전(戰車戰), 코끼리전(戰) 등 전투 행위는 그야말로 다양하다.
당시 알려진 전세계를 거의 정복한 칭기즈칸의 몽골군도 백전에서 다 이기지 못했다. 위구르와 싸울 땐 상대의 코끼리전에 당하고, 금나라와 싸울 땐 비화조전에 당하고, 남송과 싸울 때는 수전에 당했다. 아시아를 다 삼킬 듯 기세등등하던 일본은 미국과 과학기술전에서 져 마침내 핵폭탄 세례를 받고 패망했다.
머리 좋은 사람의 대명사가 된 아인쉬타인도 실은 고등학교 때 성적이 좋지 못해 “사회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학생”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논문으로는 상대성이론을 발표해 일약 명성을 얻었지만 시험을 쳐서는 재미를 못본 것이다. 발명왕 에디슨은 1학년 때 퇴학당하고, 따귀를 맞아 청각장애를 얻었다. 그 무서운 스탈린도 어려서는 아버지한테 따귀나 얻어맞고 발길질당하던 소년이었다.
이렇게 자기 자리,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니면 제 아무리 뛰어난 영웅 호걸이라도 둔재 취급을 받는다. 또 아무리 시원찮은 인물이라도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서는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환풍기 수리공인 허각이 노래로는 1등할 수 있고, 방안에 숨어 있기 좋아하는 자폐증 환자 킴팩(영화 레인맨의 실제 주인공)은 다른 건 몰라도 암기력만큼은 컴퓨터 이상으로 좋다. 박지성은 쇼트트랙선수가 될 수 없으며, 김연아는 바둑기사가 될 수 없다.
뿐인가. 양궁금메달리스트도 6점 과녁을 쏠 때가 있고, 전성기의 박찬호도 잇따라 홈런을 맞을 때도 있다.
그러니 한 가지 재주만 가지고 남을 이길 수 있다고, 나 잘났노라고 거들먹거리면 안된다. 하물며 임기가 딱 정해진 정치권력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인간들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 고수들이 있는지 낙선된 다음에야 비로소 알아차린다. 이미 패한 다음에 땅을 친들 아무 소리가 나지 않으며, 하늘을 향해 울부짖은들 메아리 한 점 울리지 않는다.
손자가 알려준 ‘지지 않는 일곱 가지 계산법’을 적어본다.
첫째, 주숙유도(主孰有道), 상대방과 아군의 장수 중 누가 더 큰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가 비교하라. 리더십이 있는 장수 밑에는 반드시 지혜와 재능을 겸비한 참모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리더십 없는 사람 밑에는 좋은 참모가 없으니 마음 놓고 쳐도 된다.)
둘째, 장숙유능(將孰有能), 상대 장수가 위기를 맞아서도 흔들리지 않는 판단력을 갖고 있는지, 그런 중에도 부하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지,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있는지,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는지 살펴라.
(반대로 혼자 잘난 줄 착각하고, 만용을 부리며, 겁이 많은 상대는 쳐도 두려울 게 없다는 말이다.)
셋째, 천지숙득(天地孰得), 기상조건과 지형조건이 누구에게 유리한지 살펴라. 즉 현재 시국과 상황이 누구에게 더 유리한지 살피라는 뜻이다.
(반대로 비오는 날 화공을 준비하거나 자갈밭에 이른 기마군은 마음껏 쳐도 된다는 말이다.)
넷째, 법령숙행(法令孰行), 어떤 조직이 법과 제도를 잘 시행하는지 살펴라.
(반대로 원칙 없이 주먹구구로 움직이는 상대는 얼마든지 쳐도 된다는 말이다.)
다섯째, 병중숙강(兵衆孰强), 무기종류, 위력, 병력, 병참 능력 등을 비교하라. 기술력, 인력, 자금력 등을 비교하라는 뜻이다.
(반대로 아무 무기도 없이, 명분도 없이 맨몸으로 덤비는 상대는 쳐도 무방하다는 말이다.)
여섯째, 사졸숙련(士卒孰鍊) - 병사들의 숙련도를 비교하라.
(반대로 그 사람을 따르는 이들이 시원찮은 졸개들이면 쳐도 좋다는 말이다.)
일곱째, 상벌숙명(賞罰孰明) - 상벌(賞罰)이 분명한가 살펴라.
(반대로 상 줄 사람에게 상 안주고, 벌 줄 사람에게 벌 안 주는 상대는 쳐도 좋다는 말이다.)
'이재운 작품 > 이기는 백과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인자 콤플렉스 (0) | 2011.04.01 |
---|---|
모든 문제는 과거에 그 뿌리가 있다 (0) | 2011.03.22 |
“나, 대단한 사람이야!” - 깔보지 말고 얕보지 말라 (0) | 2011.03.22 |
이기는 비결, 중력의 법칙 (0) | 2011.03.22 |
쇠는 벼릴수록 강해지고 인간은 고난을 겪을수록 지혜로워진다 (0) | 2011.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