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자 콤플렉스
- 공신은 왜 제거되는가?
쿠데타, 혁명, 반정, 전쟁, 선거 뒤에는 반드시 공을 매기는 뒷풀이가 벌어진다. 뒤풀이 뒤에는 반드시 화풀이도 일어난다.
포성이 지축을 흔들고, 화살이 빗발치는 전장을 달릴 때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며 굳게 손잡고, 비 새는 헛간에서 서로 끌어안고 한뎃잠을 자며, 찬물도 나눠 마시던 동지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동지가 막상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비단옷을 걸치고 수라상을 받고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막상 지존이 된 동지는 그날부터 연락이 끊기고, 한번 만나려면 미루고 미루다 줄서서 기다리다 잠시잠깐 보고 돌아서야 한다. 한번 더 만나려면 사냥개들이 으르렁거린다.
거지떼처럼 거친 들녘을 떠돌아다니며 함께 밥 빌어먹던 주원장이 어느 날 명나라 황제 홍무제가 되었다. 그는 구중궁궐로 들어가고 밖으로는 친위대의 창칼로 가시담장을 쌓는다. “원장아!” 하고 부르던 동지나 친구들이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주원장은 이 엄청난 권력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고, 아들이 덜컥 죽고나니 손자에게 물려주고 싶다. 결코 2인자 따위에게 주고 싶지 않다. 권력을 맛본 뒤에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봉건시대에는 생사여탈권을 쥔 지존 아닌가.
저자거리에서, 항간에서 옛 친구 주원장이 배신했다는 소리가 비탄조 가락에 뒤섞여 마구 흘러나오고, 칼춤깨나 추던 2인자, 3인자들이 뱉어놓은 사나운 말에 민심은 흉흉해진다.
주원장은 결심한다. 제위를 이어야할 손자는 너무 어리고 공신은 힘이 세고 너무 많다. 다른 수가 없다. 먼저 개를 몇 마리 길러 사납게 훈련시킨다. 그런 다음 좌승상 호유용을 불러 단칼에 베고, 살금살금 개떼를 풀어 창업 동지들을 잡아들인 다음 차례로 죽인다. 僧은 말할 것도 없고, 光이란 글자가 하나라도 들어간 글을 발견하면 “내가 머리 빡빡 밀고 중노릇하던 걸 비하하려고 일부러 그런 거지?” 이러면서 죄를 덮어씌우니 일단 글을 썼다하면 피할 길이 없다. “설마 나까지?” 하는 그 방심을 틈타 수만 명이 차례차례 죽어나갔다.
옛날 동지들과 오순도순 즐길 때는 주원장도 일개 도적이었지만 이제 그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옥음(玉音; 임금의 말이라는 궁중어)이 되고, 이 옥음에 산천 초목이 벌벌 떠는 황제폐하다. 나머지는 2인자든 3인자든 고개를 들지 못하는 신하들이다. “원장이 네가?” 하고 고개를 쳐드는 순간 사나운 개떼가 달려들어 심장을 물어뜯는다.
- 양아치가 성공할 수 있던 시대의 명나라 창업자 주원장.
걸승에서 도적, 강도, 수적으로 자라다가 마지막에는 나라를 세웠다.
하지만 양아치 황제의 끝은 뻔한 것, 공신 3만 명을 모조리 죽였다.
손자의 황위 계승에 장애가 된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그는 동지들을 죽일 수 있었다.
승진만 해도 사람이 달라지는데 ‘높은 자리’에 오르고 보면 세상이 달라져보인다. 색깔이 다르고 소리가 다르다.
수많은 속편 영화, 소설 따위가 2편, 3편, 4편 뒤로 갈수록 점점 복잡해지고 무거워지고 난해해지고 재미없어지는 것은, 1편의 무명 감독 혹은 무명 작가가 2편, 3편에서는 유명 감독 혹은 유명작가가 됐기 때문이다. 신분이 달라지면 눈과 귀가 달라지는 법이다.
진문공(춘추지대 진(晋) 나라 제후 문공)은 제후가 된 이후 그 옛날 도망자 시절에 허벅지살을 베어 국을 끓여준 개자추를 잊었다. 박정희는 혁명을 설계한 김종필을 평생토록 일정 거리 밖에 서 있도록 금을 딱 그어주었다. 금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 사냥개와 이발사 밖에 없다.
육이오전쟁 때 사흘만에 서울이 함락될 무렵, 결사항전으로 춘천을 방어한 임부택 장군이 있다. 이때문에 인민군은 서울을 점령하고도 며칠이나 머뭇거렸다. 그 사이 국군은 반격의 기회를 잡고 유엔군은 참전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대통령 이승만은 임부택 장군에게 상을 주지 않았다. 그뒤 임부택 장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하여 압록강 물을 수통에 떠다 올리자 그제야 상을 주었다. 함부로 상을 주면 큰일나기 때문이다.
- 육이오전쟁 때 인민군의 한강 도하를 3일이나 지체시켜 미군이 참전할 시간을 번 임부택 중령.
하지만 이승만은 그가 받은 훈장은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아 이승만에게 보낸 공 때문이지, 그가 죽음을 무릅쓰고 인민군과 싸운 공 때문이 아니었다.
임부택은 나중에 일본군 출신 박정희에게 강제 전역당했다.
이순신 제독은 서해안으로 진격하는 일본 수군 및 보급수송단을 궤멸, 적의 보급로를 차단시키고, 결과적으로 적 선발군을 평양성에 묶어두었지만 막상 의주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임금 선조 이균은 그런 이순신을 죽도록 미워했다. 그가 죽어서야 공훈을 내렸다. 민심을 얻은 몇몇 의병장은 수상쩍다 하여 잡아다 처형시켰다.
세조 이유의 계유정란 때 눈알을 굴리며 숨어 있던 영의정은 1등 공신이 되고, 맨앞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내달린 이시애는 3등 공신이 된다.
한양성이 함락되기 훨씬 전 임금 선조 이균을 모신다는 미명으로 안전한 의주까지 먼저 달아난 사람들은 ‘호종’했다는 미명으로 1등 공신이 되고, 뒤에 남아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은 사람들은 2등, 3등, 혹은 등외, 무명이 되었다.
인조반정 때 함경도병마절도사로서 사병을 모아 제일선에 나가 싸운 이괄은 “과연 반정이 성공할까?” 눈치를 보며 숨어 있던 세력들에게 밀려, 그들에게 공훈을 다 빼앗긴 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사병을 갖고 있는 이괄의 속셈이 불순하다는 참소에 인조가 고개를 끄덕여준 탓이다.
능양군 시절에는 이괄도 그와 술잔을 마주치며 껄껄거릴만큼 이물없이 지냈지만 막상 그가 국왕의 자리에 앉은 뒤로는 어림없어진 것이다.
지존의 자리에 오르면 그 자리를 지키고 싶어진다. 그런 눈으로 바라보면 자신을 해치기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바로 2인자, 3인자 같은 공신들이다. 그들은 칼을 차고 어전에 들어오며, 예를 잘 갖추지도 않는다. 무엄하게도 “형님!” 이러면서 맞먹는다. 임금의 눈 용안(龍眼)으로 보면 왜 아니 불손하겠는가.
어제의 그는 오늘의 그가 아니며, 오늘의 그는 내일의 그가 아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동지가 아니며,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동지가 아니다.
1인자는 그가 누구든 2인차 콤플렉스에 시달려야만 하며, 그러다 악마가 된다.
이해가 안가면 예를 더 들어줄까?
- 네이팜탄으로 불타는 도쿄. 일본은 미국의 2인자로 머물고 싶지 않아 진주만을 기습했다.
미국은 당연히 반역자를 응징하였다. 도쿄에 네이팜탄 1600톤을 퍼붓고, 핵폭탄 두 발을 떨어뜨려 초토화시켰다.
초강대국 미국은 2인자를 인정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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