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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이기는 백과사전

장기전에 이기는 법

장기전에 이기는 법

 

싸우다 보면 30년이 걸리는 전쟁도 있고, 100년이 걸리는 전쟁도 있다. 십자군 전쟁은 200년 이상 지속되기도 했다.

개인의 싸움은 길어봐야 30년이다. 30년이면 대개 성공하든 실패하든 마무리가 지어진다.

그렇다면 수십 년, 수백 년 걸리는 장기전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도장에 나가 격투기를 배우고, 근육을 길러야 할까?

 

진(秦)나라를 멸망시키고, 이어 항우의 초나라까지 정벌한 유방은 기세등등하게 한(漢)나라를 건국했다. 그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흉노(지금의 몽골)의 묵특선우가 10만 기병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진나라를 패퇴시키고, 초나라 항우의 군대를 물리쳐 거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고 믿던 유방은 역전의 용사 40만 명을 동원해 흉노 토벌에 나섰다. 하지만 흉노의 기마군은 가볍게 한군 40만 명을 제압해버렸다. 빠른 기마군 앞에 한나라 보군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목숨이 위태롭자 굴욕적인 강화를 청한 유방은 흉노제국에 해마다 엄청난 공물을 바치겠다고 서약한 후 가까스로 풀려났다. 그러고는 실제로 해마다 공물을 바치면서 평화를 구걸했다. 흉노는 해마다 공물의 양과 수를 늘리라고 요구했다. 그래도 어쩌는 수가 없었다.

 

이로부터 약 80년 뒤 한무제 유철은 흉노를 물리치기 위한 장기전에 돌입한다.

이때 그는 ‘싸워서 이기는 법칙’대로 준비해나갔다. 원수를 갚으려면 먼저 건강해야 한다. 그는 실제로 장수했다. 병이나 사고로 덜컥 죽어 원수를 갚기는커녕 원수를 기쁘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 다음, 원한을 잊어서는 안된다. 틈만 나면 이 원한을 뼛속깊이 아로새겨 자나깨나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 다음에는 돈을 많이 모아야 한다. 경제력이 없으면 원수도 갚지 못한다. 칼 한 자루 사는 데도 돈이 든다. 전쟁이 고비용 사업이다.

다음에는 원수에 대해 꾸준히 공부를 해야 한다. 적에 대한 정보야말로 전쟁을 앞둔 지도자에게 생명이나 다름없다.

 

한무제 유철은 장건을 대표로 하는 사신단 100여 명을 흉노의 원수 월지국에 보내 동맹을 맺고, 흉노에 대한 정보를 구해오라고 시켰다. 그로부터 무려 13년 뒤 장건과 감보 두 사람만 살아돌아왔다. 그만큼 흉노의 세력이 강성했다. 월지국은 그새 원한을 잃어버려 흉노하고 싸울 마음이 없다고 거절했다.

 

이때 장건은 중앙아시아 페르가나 지방의 한혈마(피를 땀처럼 흘린다는 유명한 말)가 흉노군이 타는 조랑말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무제는 거금을 들여 이 한혈마들을 데려와 기마군을 양성했다.

 

이어 곽거병이 이끈 대군이 이 한혈마를 타고 흉노 지역에 쳐들어가 맞붙었다. 행운이 따랐다. 흉노는 본디 쉽게 이합집산하는 유목민들인데 마침 내부 권력 투쟁이 벌어진 것이다. 투항자가 생기고 배신자가 생기면서 흉노는 안으로 밖으로 마구 무너졌다.

 

한무제는 마침내 한나라 창업 시기부터 내려온 오랜 속국 관계를 청산할 수 있었다. 이러고도 그는 한혈마가 생산되는 페르가나를 정벌해 안정된 군마 공급처를 확보했다.

긴 싸움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한무제를 공부하면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뜻이 있어야 이기는 길도 보이고, 행운도 따른다. 뜻이 없으면 길이 있어도 보이지 않고, 오던 행운도 비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