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게으른 사람
손자병법, 손빈병법, 오자병법, 제갈량병법 등 알려진 병법만 해도 부지기수다. 게다가 서양의 전술서라든가 경제 이론서, 현대전 전략서까지 치면 세상에는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서술한 책이 넘쳐난다.
다만 한 가지, 백방이 무효인 경우도 있다. 머리가 게으른 사람은 백번 싸워 백번 지기 때문이다. 설사 몸이 게으른 사람이라도 머리가 부지런하면 웬만큼 견딜 수 있다. 머리만으로도 천 리 만 리 밖 전쟁을 지휘할 수 있다. 하지만 머리가 게으른 사람은 떨어지는 홍시도 받아먹지 못하고, 우물가에서도 목이 막라 죽는다. 소리만 크게 질러도 경기를 일으켜 심장마비로 죽을 수 있고, “이노옴!” 호통 한 마디에 뒷걸음질하다 넘어져 죽을 수도 있다.
고전을 보면 성인 현자들은 게으름을 가장 경계한다. 그런데 이 성인 현자들은 손발의 게으름을 경계할 뿐 머리의 게으름은 잘 경계하지 않는다.
나는 분명히 말하지만 머리의 게으름을 경계하라고 권한다.
나이가 들면 전자 기기를 잘 이용하지 못해 버벅거리고 비싼 스마트폰 들고도 전화만 주고받는다. 심지어 문자메시지조차 보내지 못하는 사람이 흔하다. 노년에 들어간 분들을 보면 작은 의견 차이를 갖고도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며 고집부리는 걸 볼 수 있다. 녹슨 두뇌가 정보를 처리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두뇌 에너지를 쏟아도 막상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는 데 실패하거나 검색에 쓸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 스트레스 반응으로 화를 내는 것이다.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의 특징은 머리가 게으르다는 것이다. 머리가 게으르면 깊이 생각하는 대신 감각적으로 단정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딱 하나 원칙을 정해놓고 그것만 죽어라 따라간다. 깃발 하나 앞세우고 졸졸 따라다니는 일본여행객들처럼, 혹은 겁많은 토끼처럼 다니는 길만 땅바닥이 맨들맨들해지도록 다닌다. 자주 해본 익숙한 상황만 받아들일뿐 새롭고 다른 것은 손사래를 치며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는다.
머리가 게으르면 어떤 싸움에서도 이길 수 없다. 바둑기사들이 한 수를 놓기 위해 두 시간도 더 생각할 수 있는 건 그 두 시간 동안 머리를 쓰기 때문이다. 머리가 게으른 사람이라면 3초도 더 생각하지 못하고 돌을 놓아버린다. 하지만 머리가 부지런한 사람은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갖은 수를 다 헤아리고 맞춰가며 최선의 수를 찾아낸다.
에이, 난 원래 그래, 난 그런 거 싫어해, 관심없어, 저놈들은 다 사기꾼이야, 냅둬, 귀찮아... 이렇게 게으른 머리가 푸념한다.
머리가 게으른 사람에게는 자리가 재앙이 될 수 있다. 자리 지키는 것도 머리가 부지런해야 가능한데 게으른 머리로 보신을 노린들 뜻대로 될 리가 없다.
그러니 이기려는 사람은, 싸움을 앞둔 사람은 더 부지런히 머리를 가다듬어야 한다. 머리가 게으려면 어떤 싸움에서도 이길 수 없고, 머리가 부지런하면 불가능한 싸움에서도 역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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