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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이기는 백과사전

[스크랩] `영감정치`를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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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영감'들이 정당정치 망쳤다

- 국회는 법정이 아니요, 유권자는 피고가 아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언어 시험을 자꾸 망치곤 하여 왜 그런지 알아본 적이 있다. 문제 푸는 걸 옆에서 지켜보니 지문을 제대로 읽지 않고 답부터 손이 가는 게 보였다. 문제를 건성으로 읽지 말고 두 번씩 정독해서 읽으라고 권했더니, 이후 문제 해결 능력이 향상되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10․26 서울시장 보선>이라는 문제지를 받아들고 각각 시험을 치렀다. 둘 다 패배했다.

선거를 치르자면 승부(勝負)를 봐야 한다. 이길 승(僧) 아니면 질 부(負)다. 지금 양당의 등짝에 유권자의 불평불만이 산처럼 무겁게 올라앉았다.

 

나는 이번 서울시장 재선거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영감’들이 망쳐놓았다고 판단한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정당정치를 이 영감들이 훼손했다고 믿는다

우리 국회에는 ‘영감’들이 너무 많다. 공중부양 쇼라도 할라치면 한나라당 영감들은 참새떼처럼 놀라 달아나고, 민주당 영감들은 그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누가 해머라도 들고 설치면 혼쭐이 달아나 꼬리를 감추고, 누가 나서서 대항해 볼라치면 옷자락을 잡아 끌어내거나 아니면 뒤통수를 치고, 혹은 욕을 해대는 사람들이다.

옳고 바른 일 해놓고도 말 한 마디 못하고, 잘못이 명백한데도 잘못이라고 지적하지 못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없이 국회에 출근하여 사건 기록 열람하듯이 문서나 뒤적거리다 집에 가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 ‘영감’들이다.

 

영감이 뭔가. 일제시대에 생긴 못된 호칭인데, 바로 판사 검사 등 법조인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대법원이 나서서 권위적인 명칭이니 사용하지 말라고 못을 박기 전까지 사람들은 새파란 판검사를 “영감님! 영감님!” 하고 불렀다. 그렇게 불린 사람들이 지금 국회에 드글드글하다.

특히 이번 18대 국회에서 이 영감들은 눈부신 활약을 했다. 즉 가만히 있는 것이다. 천둥이 쳐도 꿈쩍 않고 벼락 쳐도 상관없다. 천둥이나 벼락은 법정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들은 가장 안전하게 보호되는 높은 법정에 저승사자처럼 시커먼 옷 입고 앉아 있던 사람들이다. 설사 연쇄살인범이라도, 흉악한 강도라도 법정에서는 납작 엎드리지 않을 수 없다. 법정에 드나들 때는 그게 누구라도 머리를 조아리고, 영감들이 드나들 때는 기립해서 존경을 표했다.

 

이런 영감 출신 국회의원들은 국가적인 문제로 시끄러워도 턱 괴고 앉아 판결만 고민한다. 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무대를 노려보기만 한다. 이 영감들은 치열한 논쟁을 하는 법이 없다. 논쟁은 아랫것들이 하고 영감은 듣기만 하는 것이다. 그러다 논쟁이 가라앉으면 그제야 나타나 뒤적거리고 살피고 따진다. 막상 선거 때는 숨 숙이고 있던 이들이 선거 끝나면 말이 많아지는 것도 이때문이다.

 

원래 판검사는 지나간 사건, 과거만 들추는 사람들이다. 현재도 없고, 미래, 앞날에는 더욱 관심이 없다. 어떻게 하라는 말은 없고, 이건 잘못이고 저건 잘했고, 너는 죄 있고, 너는 죄없다, 이게 전부다. 미래를 향해서는 한 발도 나아가지 않는다. 이 법정을 먹여살리는 세금이 바로 그들에게서 나온다는 것도 모른다. 그들이 바로 생산자들이고 납세자다. 그게 유권자다. 영감들은 국민 세금을 받아 쓴 것 말고 스스로 국부 창출에 기여해본 바가 거의 없을 것이다. 통일, 선진, 교류, 복지, 소통, 일자리, 민주주의, 지역화합, 인권, 이런 것하고는 상관이 없다. 미래를 꿈꾸거나 기업을 일으켜 먹고살 일을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국민을 이끌고 앞장설 필요도, 서민들이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든지, 왜 싸우는지, 어떻게 갈등을 해결할지 알 필요가 없다. 돈 못갚으면 사기고, 물건 가져가고 돈 안주면 절도고, 다투다 신체접촉이 일어나면 폭력이다. 법의 잣대로 재봐서 적당히 맞으면 풀어주고 많이 어긋나면 교도소로 보내는 것뿐이다.

 

영감들은 새로운 일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아니다. 일 자체가 남 흠이나 캐고 뒤지고 터는 것이다 보니, 그렇게 몇십 년 살아온 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런 영감들이 국회의원 돼봐야 법안 심사하는 데는 능력을 발휘할지 몰라도 지역 경제 발전시키고, 나라를 이끌어가는 데는 서툴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영감들이 다 그런 건 아니다. 영감 생활 잠깐 하고 나와 변호사로 살면서 세상 풍파 다 겪어본 사람들은 다른 경우가 있다. 물론 약아빠진 영감들 중 곧장 로펌으로 달려가 전관예우 특권까지 누리며 돈까지 챙긴 뒤 국회의원으로 직행한 이들이 있다. 특권에서 특권으로, 또 다른 특권으로 부지런히 옮겨다닐 뿐 정치를 왜 해야 하는지, 정치가 뭔지 모르고, 국회의사당이 법정이고, 의원석이 무슨 판사석이나 검사석이라도 되는양 앉아 있다가 판결 내리듯이 버튼 누르는 게 전부다.

 

이 영감 출신 국회의원들은 나라 안팎이 광우병, FT, 4대강, 아프가니스탄 파병, 천안함 등으로 요동쳐도 눈만 꿈벅거린다. 유권자더러 변론이유서라도 가져오란 뜻인지 제 머리로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한다.

대통령을 가리켜 쥐새끼니 쥐박이니, 심지어 죽여야 한다고 막말해도 누가 고발해주기 전에는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서울시장 후보를 총으로 쏴죽이는 그림이 나돌아도 묵묵부답 먼산만 바라본다. 기소돼야 사건이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영감들은 참여자가 아니라 이 사회의 관찰자요 국외자일 뿐이다. 역사의 그림자다.

 

이 영감들은 피고의 마음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들이 국회에 앉아 있으면 유권자 마음은 알려고 하지 않는 습성으로 나타난다. 평생 영감 노릇한 이는 대통령 후보로 나서봐야 아들 병역의혹 문제가 나와도 불법은 없다고 딱 잘라 버틴다. 200평 빌라에 살다 들켜도 합법적이다, 이렇게 우긴다. 영감들은 서민들의 마음을 읽을 줄 모른다. 서민들은, 유권자들은 애당초 육법전서를 모르지만 이 영감 출신 정치인들은 온세상이 법정이요, 사람들이 읽는 책이 다 법전인 줄 착각한다. 피고 대하듯이, 법정에서 벌벌 기던 피고들이 곧 유권자인 줄 알고 거드름부리다 혼쭐이 나는 것이다.

 

한나라당, 민주당은 당을 살리려거든 영감들을 내보내라. 그 영감들, 국회의원 안해도 변호사가 되어 얼마든지 떵떵거리며 살 사람들이다. 이 영감들이 물러나야 현직 판검사들도 “세상이 바뀌었구나.” 하고 정치판 기웃거리지 않고 소신껏 일할 수 있다. ‘영감 국회의원’들이 떠난 자리에 진정 국민을 위해 앞장서고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짜 애국자, 서민 경제를 풀어나갈 전문가를 모셔라.

영감, 상속 재벌, 입만 가진 교수, 강단에서나 큰소리치는 박사 등 존재 가치가 없는 사람들은 이번에 대대적으로 물갈이해야 한다. 지금도 그들은 자해나 하고 동료 비판에 더 열을 쏟고 있다. 적이 누군지 아군이 누군지도 모른다. 아니면, 임기 4년이 다 지나가는데도 “저이가 국회의원이었어?” 할 정도로 존재감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출처 : 용인타임스
글쓴이 : 개마고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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