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세상이 진실로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며, 세상이 진실로는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므로 태초가 있다고 가르치지도 않으며, 태초가 있다고 가르치지 않으므로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였다고 가르치지 않고,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였다고 가르치지 않으므로 변하는 것에 의지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변하는 것에 의지하라고 가르치지 않으므로 일 만년 후에도 십 만년 후에도 백 만년 후에도 여여하느니라.
왜 그런가? 불교는 다만 본질로는 공함을 가르치고, 행법으로는 중도를 가르치고, 현상으로는 인연을 가르치며, 유위로는 악한 법은 그치고 착한 법은 키우도록 가르치며 무위로는 열반을 가르치는 까닭이니 이 모든 가르침의 목적은 오직 하나, 네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니라.
수자타야, 만들어진 것은 변하여 부서지나니 도자기가 언젠가는 부서지게 되는 성품을 갖추고 있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나 도자기 안의 허공은 도자기 속에 갇혔어도 오히려 부서지지 않나니 이러한 이치를 사무치게 깨달은 이는 聖人이라 하느니라. 성인의 가르침에는 희론에 섞이지 아니 하고 희론에 섞이지 아니 하므로 확실하여 그렇다고 하는 힘이 갖추어져 있느니라.
사무치게 깨달았다 함은 이치를 알았다 하는 것과 다르나니, 이치를 아는 것은 지식에 불과하나 깨달음은 몸체와 모습과 쓰임을 골고루 다 갖춘 존재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니라. 즉 원자탄 하면 원자탄을 만드는 이치와 터뜨리는 일과 부서진 결과를 함께 말하듯이 깨달음 하면 이치가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이치이며 마음씀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마음씀이고 나타난 세계가 마음이고 마음이 곧 세계이니라.
그야말로 깨달음이 곧 힘이요 힘은 에너지이니 우주의 끝과 끝을 이으라면 가만히 미소짓는 사소한 힘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잇느니라. 만일 이 일을 우리에게 하라고 한다면 태양을 수 백 개 또는 블랙홀을 수 천 개 사용하는 막대한 에너지로도 다 하지 못하는 일이니라.
모든 것은 닯은 꼴을 가지고 있다. 육체의 유기적인 운동은 마음의 생로병사를 닯아 있고, 마음의 생로병사는 우주의 섭리를 닯아 있고, 우주는 다시 그 무엇인가를 닮아 있다. 그 무엇이란 바로 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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