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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애견일기3 - 리키 바니

리키 수술했다고 신난 바니 할머니

바니는 12세된 말티즈 암컷, 하반신 불수로 소변을 자력으로 보지 못하는 장애견이다. 게다가 사납다.

바니는 엄마 다래와 도조 할아버지가 하늘로 간 뒤 2년여간 그 더러운 성질에도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잘 살았다.

마지막으로 보낸 도조 할아버지는 늘 누워 있었기 때문에 그때도 바니는 기고만장했다. 그렇게 너무 뛰어다니다 디스크에 걸리고, 두 차례 수술을 했음에도 신경이 살아나지 못했다.

그뒤 아빠는 어딜 가든 바니를 안고 다녔다. 아무리 멀리 가도 데려갔다. 바니는 장애는 불편하지만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해 무척 행복하다고 믿었다.

 

- 바니는 2008년 8살 때 디스크에 걸려 케이지 생활을 시작했다.

2년 전 어느날 유기견 출신의 7개월 짜리 요키인 도조 주니어 리키가 왔다.

18세이던 도조 할아버지를 하늘로 보낸 뒤 상심하던 아빠가 기어이 요키 한 놈을 데려온 것이다.

바니는 기겁했다. 주먹만한 놈이 오자마자 엄마아빠의 사랑을 빼앗아갔다.

바니는 우리집에서 출생한 뼈대 있고 근본 있는 우아한 말티즈다. 엄마 다래, 아빠 도반, 할머니 도리, 할아버지 희동, 증조할아버지 도담, 이렇게 집안 족보가 버젓이 있다.

그런데 족보도 없는 유기견 놈이 불알 까고 들어와서는 쫄랑쫄랑 엄마아빠 따라다니면서 무슨 아양을 떨었는지 엄마아빠는 "우리 애기, 우리 애기" 이러면서 리키만 끌어안는다.

 

 

엄마는 산책갈 때마다 다리 멀쩡한 리키만 데리고 나간다. 바니는 텅 빈 집안에 남아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본다. 아빠가 외출했으니 기댈 데도 없다. 그럴 때마다 리키가 미워 몸을 떨었다. 리키랑 둘이 거실에 있을 때 아무도 몰래 위협을 가해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기도 했다. 뒷다리 불편하다고 앞다리 못쓰지 않는다. 잔뜩 노리고 있다가 느닷없이 달려들어 꽥 소리를 지르면 리키는 깜짝 놀라 도망다닌다.

아빠도 그렇다. 리키가 너무 작고 약하다고 외출했다 돌아오면 "우리 리키, 우리 리키." 이러면서 리키놈을 먼저 끌어안는다. 그러다 시간 남으면 바니 머리를 툭툭 건드려 준다.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 아빠 생각만 했는데 기껏 리키놈만 안아주고 바니는 안아주지도 않는다.

 

 

이런 세월이 2년 지났다. 바니는 늙어가는 열두 살, 리키는 한창 젊은 세 살.

그런데 요즘 바니가 신이 났다.

얄미운 리키놈이 양다리에 슬개골 수술을 받고 오더니 꼼짝 못하고 케이지 안에 갇혀 지낸다.

- 오, 네놈도 케이지 안에 들어갈 때가 있구나. 나 못걷는다고 케이지에 갇혀 있을 때 네놈이 나를 얼마나 약올렸는지 알지?

그러면서 하염없이 리키를 바라본다. 제법 여유도 있다.

 

바니는 서너 시간은 거실에 앉아 있고, 그 시간 지나면 케이지로 들어간다. 너무 오래 나와 있으면 배가 헌다. 하지만 요즘에는 케이지에 갇혀 있는 리키놈 구경하느라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아 키득거린다.

어떤 때는 너무 기분이 좋아 카펫 위를 뱅뱅 돌아다니기도 한다.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다.

- 리키 요놈의 새키, 너 맨날 거기 살아라! 난 이 집에서 태어났어 임마. 어디서 굴러왔는지 근본도 없는 놈이!

바니는 신이 났다. 요즘 바니는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느끼는 것만 같다. 흡족한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