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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사람들/절 많이 다니면 깨달으려나

갈 곳 없는 <부처님 오신날>-예산 향천사

친구가 주지로 있는 거창 금봉암에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도로가 너무 막힌다.

도리없이 어머니 집으로 갔다.

 

마침 새벽에 논에 나갔다가 살짝 온 뇌경색으로 깜짝 놀란 집안 형이 있어 찾아가 은행을 구워 먹는 법을 시연하고, 이것저것 주의사항을 알려드렸다. 촌수 따져 형이지 나이로는 75세다.

60대 이상은 5월까지는 새벽에 다니는 걸 주의해야 한다.

50대는 4월까지 조심해야 한다. 일교차가 커서 자칫하면 두뇌혈행에 장애가 오고, 몸에 마비가 올 수 있다.

 

어머니는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일찌감치 일어나 옷 단정히 입고 앉아 계시는데, 자식들은 중에게 룸살롱 술값 보태줄 일 있느냐며 시큰둥하다. 하여, 그러느니 동네 무당절에라도 가자 했더니 지난 겨울에 돌아가셨단다. 한겨울에 현관문 열고 나오다 계단에서 쓰러져 그 길로 가셨단다. 그러고 보면 지난 겨울에 82세 어머니를 대전 형네로 모신 건 참 잘한 일 같다.

 

무량사, 수덕사, 마곡사, 갑사, 동학사, 장곡사 운운하며 인근 사찰 놓고 무슨 제비뽑기 하듯이 빈둥거리기만 하니 조급해진 어머니가 정 가기 싫으면 가까운 예산 향천사라도 가자고 하여 마지 못해 일어섰다.

향천사는 내 소설 <당취(지금은 소설 토정비결 3권, 4권)>를 경향신문에 연재할 때 일부러 등장시킨 적이 있다. 가본 적은 없다. 아버지가 생전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홀로 그 절에 다녀왔다는 말을 들어 그 친근함이 있어 한번 상상해본 것뿐이다. 아버지 자취가 남아 있을 리 없지만 아버지가 보신 풍경을 우리도 보자고 명분을 붙여 우르르 몰려갔다. 어머니 집에서 불과 20분 거리다.

 

산사음학회 연다고 비급 가수들 데려다 비급 트로트를 불러제끼는 바람에 서둘러 내려왔지만, 향천사는 가볼만한 절집이다. 언제고 너무 더워 머리깎은 사람은 안보이고, 나무 그림자만 길게 드리워지는 여름날, 따로 한번 가보고 싶다.

 

- 아버지가 생전에 심어 놓으신 장미. 아버지 가신 뒤로도 피고지기를 11년째다.

 

- 어머니가 차려준 초파일 아침 식탁

 

- 향천사 샘물을 마셔보았는데 향기는 나지 않았다.

 

 

- 어머니가 절에 가시려면 먼저 돌계단과 싸워야 한다. 석굴암 가실 때에도 그 지긋지긋한 계단 때문에 고생했는데 어딜 가나 돌계단이다. 노인들은 오지 말라는 건지 배려가 없다. 휠체어 가는 길도 안보인다. 잘 찾아보면 주지 승용차 나다니는 길은 있을 텐데...

 

<- 석굴암에 기어서 올라갔다 내려오시는 어머니. 2010년

 

- 밀고 잡고, 내 딸이 할머니 모시느라 고생이다. 저 뒷쪽으로 길이 보이긴 보이는데 저희들만 몰래 다니지 노약자 모실 생각은 안한다.

 

 

 

 

- 일년에 한번 나오셔서 햇빛 보시는 괘불이다. 합장 삼배.

 

- 괘불에 놓인 부처님 생일상 보니 멀리 동남아에서 온 두리안이 보인다. 남미에서 온 포도도 보이고, 좋은 세상이요, 좋은 건 뭐든 올리려 하는 그 정성이 갸륵하다.

 

- 아기 부처님, 관욕(灌浴)시키라고 일년에 한 차례씩 마당에 나오신다.

 

- 딸이 아기 부처님 관욕을 하고 있다. 나도 하고, 가족들이 모두 했다.

 

- 딸을 제수씨가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 까만 스마트폰으로 찍는 뒤의 파란옷 입은 이가 나.

 

- 어머니가 아기 부처님 관욕을 해드리시는데, 손녀가 지켜보고, 며느리가 사진 찍고, 손자가 뭐라고 떠들어댄다.

며느리가 찍은 사진은 바로 아래.

 

- 며느리가 찍은 어머니 관욕 장면. 조카가 손을 쳐들고 엄마더러 지금 찍으라고 한다.

 

- 막내손녀 명원이도 아빠에 안겨 관욕을 하고...

 

- 반대 방향에서 찍은 조카 명원

 

 

 

 

- 조카 동규 

 

 

- 동규 애비이자 내 동생.

 

- 신도회에서 연잎차를 달여 주신다. 향이 그윽하다.

 

- 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대웅전에 들어가 넙죽 엎드렸다. 우리 가족들은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 커서 교회를 가든 성당을 가든 상관 않는다. 미신 안믿고 거짓말에 속지 않으면 된다.

 

- 향천사 부처님 인상을 보니 좀 성깔 있으실 것같다. 두리안이 또 보이고...

 

- 산신각에 가보았다. 내 소설 <당취>에서 주인공 불두와 여진이 이 산신각에서 사랑을 속삭였다.

 

- 예산 금오산 산신 탱화

 

- 향천사에는 선원이 딸려 있다. 천불선원

 

- 천불선원의 오죽

 

- 천불선원 경내. 천불전에서 입구 쪽으로 찍었다.

 

- 천불선원 내의 천불전

 

- 천불전

 

- 법당 옆에 둥글레차 밭이 보인다.

 

- 딸이 다른 절에서 부처님께 바쳐진 장미를 몇 송이 얻어 가져왔다.

부처님 오신 날에 절 세 군데를 가는 게 우리 전통인데 올해는 두 군데만 갔다.

거창 금봉암은 마음만 간 것으로 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