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들아, 내 말 좀 들어봐
- 영생불멸하는 암세포, 인간과 공존하는 길 찾아야
* 친하게 지내는 누이의 남편이 호스피스 병원으로 들어갔다. 보고 왔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 암세포는 다세포 동물이 진화해오는 동안 이단아로 남은, 혹은 기발한 방향으로 진화해온 단세포다. 일반 다세포 생명체가 죽음을 발명하여 새로운 자손을 퍼뜨리는 동안 이 암세포들은 죽지 않고 자신들이 영원히 사는 단세포의 길을 모색했다.
세상의 모든 암세포들에게 말한다.
귀 기울여 잘 듣기 바란다.
너희끼리 비밀통신이 이루어진다는 거, 난 잘 알고 있으니 시치미 떼지 마라.
너희가 참 희한한 실험을 하고 있다는 얘길 듣고 나도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너희는 어쩌다가 무한 영생을 할 수 있는 재주를 가졌느냐? 신통방통하구나.
너흰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면서?
정말 부럽구나. 하지만 내 말 잘 들어라. 우선 급한 얘기부터 하자.
너희 암세포가 단세포 독립투쟁 끝에 숙주동물의 몸에서 이상 증식하면 그걸 암 말기라고 진단한다.
너희야 암이 무성하게 잘 자란다, 행복하다, 신난다고 표현하겠지만, 인간이 볼 때는 그걸 말기라고 진단한단다.
암 말기 진단이 되면 너희 숙주인 그 사람이 머잖아 죽고, 결국 영생불사한다는 너희 암세포도 화장장에서 뜨거운 불에 태워지거나 아니면 흙에 묻혀 썩게 된다. 너희가 불 속에서도 살고, 흙에 묻혀서도 살지는 못하잖느냐? 너희도 약점이 있잖느냐? 단세포라고 무작정 영생하는 건 아니잖느냐.
그러니까 암 말기라는 건 사람이나 동물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암 말기란 진단은 너희 암세포도 머지 않아 죽게 된다는 의미다. 숙주인 사람이나 동물이 죽으면 너희도 죽는 거지 별 수 있니? 너희가 발이 있어 기어나오니, 날개가 있어 날아가버리니?
못하잖아?
우리 숙부, 너희 일족인 대장암이 퍼져 돌아가셨다. 너희들이 잔치 벌일 때 숙부가 돌아가셔서 너희 암세포들까지 그때 땅에 묻어버렸다. 그 세포들 어디 갔니? 죽었잖느냐?
내 장모, 뇌에 암세포가 생기더니 너희 멋대로 마구 퍼졌다. 왜 그처럼 성급하게 퍼져서 우리 장모를 돌아가시게 했니? 결국 너희도 잔치를 즐기기도 전에 뜨거운 불로 다 죽었잖느냐?
내가 애지중지하던 애견도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 죽었다. 왜 그리 성급하게 굴었니? 그 어린 생명, 좀 더 살면 안되었니? 결국 너희도 매장되어 같이 죽었잖아? 너희 암도 같이 죽는 거라니까 왜 그걸 이해 못하니?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암세포들은 잘 듣거라.
너희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그렇게 성급하게 죽을 이유가 없다.
사람은 그냥 두어도 잘 살아야 백여 년이다. 그런데 너희는 영양만 공급되면 얼마든지 살잖느냐.
세포자살명령을 거부하고 너희들이 무궁하게 살기로 작정한 독립단세포라면 내 말 귀기울여 들어라.
조건만 좋으면 너희 생명은 백년 천년, 아니 무한이라면서? 실험실에서 지금 기르고 있는 암세포가 있는데 100년 전에 죽은 사람의 몸에서 채취한 암세포인데 아직도 살아 있으면서 계속 증식한다잖아? 대단해.
심지어 항암제를 투여해도 너희 암세포는 죽은 척하다가, 아니 다 죽었는데도 기어이 도로 살아난다며?
거 참 별난 재주를 가졌구나.
우리 정상세포들은 종을 보존하기 위해 스스로 죽는 자살 프로그램까지 갖고 있는데 너희는 욕심이 많은 건지 새로운 실험을 하는 건지 절대 생존을 목표로 한다며?
툭하면 자살하고, 남 죽이고 할퀴는 인간에 비하면 너희 의지가 더 굳세다고 본다.
그럼 뭐하니? 너희 숙주인 인간이나 동물이 죽으면 너희도 불에 태워져 도리없이 죽는데?
너희가 항암제를 이기고 방사선을 이기는 거, 참 갸륵하지만 숙주가 죽으면 그땐 도리없이 죽는다구. 달리 방법이 없어. 너희도 지쳤을 거야.
난 너희 암세포들이 인간을 위해 오래 전부터 와 있는 하늘의 사자가 아닌가 상상해보았다.
인간을 영생시키기 위해 천사로 내려온 게 아닌가 싶단 말이다.
아니면 수백만 년간 너희가 꿈꾸던 세상이 이제야 실현되는지도 모르겠다.
너희는, 다세포가 죽음을 결정할 때, "아니다, 우리도 영생할 수 있다." 이렇게 다른 의견을 낸 세포들 아니더냐.
자, 암세포들아. 내 말 잘 들어라.
함께 살자. 너희 숙주인 인간이 오래 살아야 너희도 오래 사는 거다. 숙주인 인간이 죽으면 너희도 그날 그 시각에 같이 죽는 거다.
그러니 화해하자. 스트레스나 나쁜 물질이나 이런 걸 너희가 먹어없애라. 그러면서 적당히 덩치를 키우는 건 허용한다. 너무 이상하게 키우진 말고 좀 티 안나게 예쁘게 키우거라. 너흰 기본적으로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같아. 좀 예쁘게 자라면 안되니? 찾아보면 정상세포가 아닌 먹을거리가 있을 거다. 그런 걸 먹어치운다면 참 좋겠구나. 그래야 너희도 사랑받는다.
사람들은 그러잖아도 너희들이 좋아하는 나쁜 물질을 할 수 없이 먹고산다. 너희 기르려고 일부러 먹는 건 아닌데 세상이 변하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그러니 너희 먹이를 주는 친절한 인간을 함부로 공격해서야 쓰겠느냐.
그러니 너희도 좀 가려가며 돌아다녀라. 어디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조용히 살면 안되겠니?
두뇌 같은 데는 절대 가지 말고, 아이들 크는 자궁도 좀 가지 마.
간이나 장에서 사는 건 좋은데 거기서 너무 시끄럽게 잔치 벌이니까 숙주가 빨리 죽잖아. 적당히 해.
위험하지 않은 데서 조용히 살면 안되겠니?
그러면서 그 사람이 받는 스트레스나 나쁜 물질로 다른 세포가 손상받지 않도록 얼른 먹어치워버리렴. 그렇게 건강하게 오래 살면 너희도 두고두고 재미나게 살 수 있는 거 아니겠니?
암세포들아,
생각 좀 바꿔라. 인간과 공존하자. 우리도 너희 존재를 인정해줄게.
독한 항암제로 너희를 마구 죽이지 않고, 칼로 베어내지 않고, 방사선으로 쏴죽이거나 초음파로 부숴버리지 않을 테니까 협조 좀 해라.
너희 그 소식 들었는가 모르는데 에이즈 바이러스는 이미 타협을 봤다더라. 그냥 그 사람 살려두고 저희들도 오래 살자, 그렇게 합의 본 모양이더라. 옛날에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너희보다 더 무섭다고 했는데 이젠 에이즈 걸려 죽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너희도 이제 음지에서 나와 양지에서 살아라.
떳떳하게 세포로서 너희 삶을 살아라. 너희에게도 삶이 있고, 생각하는 힘이 있잖느냐.
인간과 너희 암세포가 서로 싸우면 피차 손해가 많다. 너희, 요즈음 항암제 기술이 날로 발전한다는 거 알지? 인간도 지독하다. 돈이 되는데 그거 연구 안하겠니? 너희 박멸시키는 것도 시간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들어. 가난한 사람은 항암제 쓰고 싶어도 비싸서 못쓴다. 돈 있는 사람이라도 아주 기둥뿌리가 뽑힐 지경이다.
너희도 항암제와 싸우느라 얼마나 힘들겠니? 그러니 서로 적당한 선에서 휴전하자. 너희도 살고 우리 인간도 살고, 잘 협조해가면서 그냥 살자. 인간의 몸 속에는 이렇게 타협해서 사는 세포들이 엄청나게 많잖느냐? 대장에 있는 균총(菌叢)이라는 거, 너희도 알잖아? 거기 약 100조 마리의 엄청난 세균들이 인간과 공존하고 있거든. 그걸 보고 배우면 안되겠니?
암세포들아, 너희가 인간하고 손 잡으면 정말 좋은 일이 있을 거야.
너희 암세포들이 노력해주기만 한다면 어쩌면 숙주인 인간이 120살 사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거야.
그래, 너희 그 죽지 않는 능력을 인간에게 알려주면서 좀 120세, 200세까지 같이 살아보자.
건강하게 살면서 너희도 너희 원하는 것 얻고, 우리 인간도 우리가 원하는 것 얻으면 되잖아.
지금까지 인간과 너희 암이 서로 상극하기만 했는데 이제부터라도 상생하자.
언제부터 원수였다고 이토록 모질게 싸우느냐? 너희도 암세포가 되기 전에는 착한 인간세포였잖으냐.
내 말 알아들었으면 전세계 모든 암세포에게 전해라.
오늘부터 인간과 동물의 정상세포와 협력하기로 했다고.
네가 그런다는 조짐이 보이면 나도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리 몸속의 면역세포더러 암세포 너무 괴롭히지 말라고 얘기할게.
항암제 쓰지 말고 이제 암세포와 같이 삽시다, 이렇게 운동할게.
시간이 별로 없다.
더 강한 항암제 나오기 전에 어서 손잡자. 너희 잘 죽이는 항암제 개발하면 큰돈 번다고 지금 전세계 제약회사에서 눈에 불을 켜고 연구 중이다.
그러니 너희도 생각이 있다면 지금 당장 내 말을 들어다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너희와 부질없는 싸움 벌이다 허망하게 가게는 하지 말아다오. 그럼 부탁한다.
<암에 관한 내 글 모음>
* 암세포와 싸우는 사람들 위해 쓴 글이니 암세포들은 읽지 마라.
<암이 생기는 원리 - 암세포는 한숨 쉬는 사람을 좋아한다>
<암으로 돌아가신 목사 님, 작은어머니, 사촌아우를 생각하며>
* 언론 보도 자료
* 읽을만한 기사
서양의학은 암을 치료한 적이 없다
기사입력 2012-06-16 03:00:00 기사수정 2012-06-16 0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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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내에서 T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는 모습. T세포는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이나 바이러스, 또는 비정상 세포 활동으로 생긴 암세포를 먹는 면역 기능의 주력군이다. 청림Life 제공
20년간 암 전문의와 연구자로 이름을 날려 온 저자이지만 이 책은 암 치료법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 대신 현대 서구의학의 건강과 질병에 대한 패러다임에 근원적인 의문을 던진다. 저자는 2009년 덴버에서 열린 미국 암연구학회에서 “우리는 지난 50년간 암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우리는 실수를 해왔다”고 발언해 파란을 일으켰다. 1950년부터 2007년까지 심장병, 뇌중풍(뇌졸중), 폐렴 등으로 인한 사망률이 60∼70%까지 줄어들었지만, 의료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암에 의한 사망률은 8%밖에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
저자는 그 이유를 20세기 서구의학이 맹신해온 ‘질병 감염설’에서 찾았다. 모든 질병의 원인을 외부에서 침입한 감염원(세균, 바이러스)에서 찾을 뿐, 감염이 일어난 장소(인체)는 생각하지 않는 자세다. 암 역시 침입자처럼 다뤄져 잘라내거나 독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치료돼 왔다.
그러나 ‘암은 감염성 질환이 아니다’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암은 우리 몸의 내부에서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있던 시스템이 고장 나면서 돌연변이 세포인 종양이 자기증식하는 것이지 외부의 침입에 의한 것이 아니다. 암이 현대 산업사회의 공해와 패스트푸드, 가공식품, 환경독성물질과 관계가 있다는 말에도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기원전 3000년∼기원전 1500년에 기록된 7개의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암 증상이 기록돼 있듯 암은 인류 역사와 함께해 온 ‘만병의 황제’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암과 같은 병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사실 우리는 암을 결코 치료한 적도 없다. 몸과 병의 관계를 새로운 복잡계로 바라봐야 한다. 종양 자체도 간, 심장, 폐처럼 우리 시스템의 일부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 몸을 복잡계로 모델화하면, 곧 우리 몸의 기본 요소들을 모두 이해할 필요 없이 조절한다면, 언젠가는 ‘마법의 탄환’을 실제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암과 싸워 이기기보다는 암을 예방하고 조기 진단함으로써 피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유전자학과 단백질체학 기술을 활용한 개인형 맞춤치료다.
그는 최첨단 컴퓨터 기술로 단백질 세포의 미세한 신호를 분석해 일기예보처럼 개인의 몸 상태를 진단해내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그는 이를 위해 ‘어플라이드 프로테오믹스’와 ‘내비제닉스’라는 의료기술 회사를 설립했고, 자신의 실제 유전자(DNA) 프로필을 책 속에 공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종합적인 건강관리 시스템을 통해 인간이 질병 없이 장수하다가 스위치를 내리듯 죽음을 맞는 ‘질병의 종말’의 시대가 올 것으로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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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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