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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가던 길 멈추고 2012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예, 갖지 못했습니다

함석헌 님이 내게 묻는다.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그래서 내가 대답한다.

"예, 갖지 못했습니다."

 

* 아래 주황색 글은 함석헌 님의 시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이고, 초록색 글은 내 답이다.

 

만릿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예, 갖지 못했습니다. 

마음대로 길을 떠날 수 없습니다.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예, 갖지 못했습니다. 

천지간에 나 홀로 가고자 합니다.


탔던 배 꺼지는 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예, 갖지 못했습니다. 누가 살든, 제가 그 배에서 내리겠습니다.

저 때문에 살게 될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지 않습니다.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의 세상 빛을 다하여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 줄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예, 갖지 못했습니다. 

제가 죽어 누가 산다면 그가 누구이든 내가 그 불의의 형장에 서겠습니다.

제가 죽어 누가 사는지 알고 싶지 않습니다.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눈감을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예, 갖지 못했습니다. 이승에 미련이 없습니다.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예, 갖지 못했습니다. 대신 제가 앞으로 나아가 아니라고 외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