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님이 내게 묻는다.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그래서 내가 대답한다.
"예, 갖지 못했습니다."
* 아래 주황색 글은 함석헌 님의 시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이고, 초록색 글은 내 답이다.
만릿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예, 갖지 못했습니다.
마음대로 길을 떠날 수 없습니다.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예, 갖지 못했습니다.
천지간에 나 홀로 가고자 합니다.
탔던 배 꺼지는 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예, 갖지 못했습니다. 누가 살든, 제가 그 배에서 내리겠습니다.
저 때문에 살게 될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지 않습니다.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의 세상 빛을 다하여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 줄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예, 갖지 못했습니다.
제가 죽어 누가 산다면 그가 누구이든 내가 그 불의의 형장에 서겠습니다.
제가 죽어 누가 사는지 알고 싶지 않습니다.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눈감을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예, 갖지 못했습니다. 이승에 미련이 없습니다.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예, 갖지 못했습니다. 대신 제가 앞으로 나아가 아니라고 외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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