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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이 <혈의 누>라니?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이 <혈의 누>라니?
이런 말은 쓰레기통에 던져버려야 한다. 물론 본인이 정한 제목이니 <혈의 누>라고 우겨도 할 말은 없지만, 이 말은 우리말이 아니라 일본어다. 이 소설의 작가 이인직은 친일파, 매국노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거의 일본인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다. 그는 노일전쟁 당시 1군사령부에 소속된 통역이었고, 나중에는 매국노 이완용의 비서를 지냈다. 죽는 날까지 일제에 충성하다가 죽음마저도 총독부 병원에서 맞았다.
 
이러한 그의 이력에 관계없이 나는 <혈의 누>라는 제목만 가지고 따지는 것이다. 이 소설 표지에도 나와 있듯이 이인직은 본래 이 소설 제목을 <혈루(血淚)>라고 적고 있다. 이 시대는 한문을 널리 쓰던 때이므로 한자로 적어도 우리 제목으로 인식되던 시절이다. 그래놓고 그 옆에 굳이 <혈의 루>라고 친절을 베푼 것이다.
 


이인직은 일본군 1군사령부에서 일하고, 일본에서 오래도록 산 만큼 일본 문학이나 일본어법에 익숙한 사람이라서 저도 모르게 이런 짓을 한 것이다. 그는 매국노였던만큼 일본어 문법이 우리말 속으로 깊숙이 들어오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서정주도 그랬다니까. 그래서 그는 <血淚>하고 말든지 아니면 <피눈물>이라고 적으면 될 제목을 굳이 <血の淚>라고 먼저 일본식으로 생각한 다음 한글로 억지 번역을 한 것이다.

 
나는 굳이 이인직의 소설을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이라고 말하는 것도 마땅치 않은 사람이다. 하물며 그의 소설을 어쩔 수없이 거론해야겠다면 <피눈물>이라고 하든지 <血淚>라고 했으면 좋겠다. 최소한의 민족 자존심이란 이런 것이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이 작품을 볼 수 있다. 일본어 문법 투성이로 적은 이 친일 매국 소설을 읽다보면 화가 치민다. 그러니 이래저래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