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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정도전, 그가 꿈꾸던 나라

독후감 18 / 시대정신을 이끌어갈 정치인이 필요하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한사람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역사를 보다보면 드는 의문 중 하나이다. 아주 뛰어난 한 인물에 의해 역사가 바뀐 사례들을 찾아보면 많다. 시작은 미비했으나 그 끝은 거대한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사람들을 우리는 혁명가라 부른다. 한 혁명가의 꿈으로부터 출발한 사건이 힘을 모아 대세가 되고 이후 새로운 시대를 가져온 것을 두고 우리는 그렇게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시작은 한 사람의 소박한 꿈에서 출발하였을지언정 그 모든 것을 이룬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소박한 한 사람의 꿈조차 시대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한사람의 소박한 출발로 시작된 일이 역사를 바꾼 것 또한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 혁명가 중 한사람으로 요사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가 대중의 관심사를 반영하거나 이끌어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양대 방송국의 드라마 주인공으로 발탁된 고려 말과 조선 초를 살았던 정도전이 그 사람이다. 어수선한 고려 말 신진사대부로 등장하여 국가를 지키고자 노력하다 결국 새로운 국가를 만든 장본인으로 정도전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하여, 그를 주목한 다양한 연구결과가 역사서, 연구서, 영화, 문학, 드라마 등으로 대중들과 공유되기에 이른 것이다.

선거를 앞둔 2014년 한국의 봄은 정치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로 시끄러울 것이다. 모두 한껏 높아진 목소리로 진정한 지도자는 자신뿐이라며 표를 부탁하는 사람들 속에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가려 뽑을 수 있을까? 어쩌면 국민이 원하는 지도자의 부재가 역사 속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책이있는마을에서 펴낸 이재운의 소설 ‘정도전’도 그런 흐름과 무관하다고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철학자들이 꿈꾸던 군자의 나라, 백성을 하늘로 섬기는 민본(民本)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목숨을 내건 그의 삶을 정도전의 큰아들 정진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한 혁명가의 야망과 좌절과 승리를 피로 묻혀가며 써내려간 생생한 이야기’로 읽힐 수 있다. 저자 또한 그런 시각으로 정도전을 바라보고 이 소설을 썼을 것이다. 그것이 정도전이 살아 있던 당시에나 600년이 지난 현대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소설이 가지는 긍정적 측면을 최대로 활용한 저자의 이야기 구성은 흥미롭게 전개되며 역사 속에 숨겨진 행간을 저자 나름의 해석으로 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듯 묘사하고 있다.

다시 처음 질문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한사람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로 돌아가 보자. 위대한 한 사람의 목숨을 건 노력의 결과에 주목한다면 당연한 결론으로 귀결될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집중했을 때 간과하기 쉬운 것이 있다. 그 사람을 만들어 온 시대상황이 그것이다. 정도전도 혼란스러웠던 고려 말의 사회상황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사람이라는 점이다. 또한 정도전이 정적에 의해 살해된 조선 초의 상황 역시 더 이상 정도전과 같은 꿈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아서 정적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으로 볼 때,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원하는 진정한 정치 지도자의 부재는 혹 시대상황의 미성숙으로 인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그렇지만 시대상황도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이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열망이 정도전과 같은 정치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개인의 노력과 국민의 응원이 모여 만들어가는 정치인이 이 시대가 요청하는 정치 지도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