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6년 전 <나는 고백한다 - 정도전 암살 미스터리>를 쓸 때만 해도 정도전은 조선의 역적이었다. 그 무렵 굳이 정도전을 소재로 삼아 소설을 쓴 것은 <정도전을 위한 변명>이라는 연구서를 읽은 탓이었다. 이 소설을 올해 다시 출간하면서 <정도전, 그가 꿈꾸던 나라>로 제목을 바꾸었다.
며칠 전 정도전 후손 종중회장이란 분이 전화를 걸어오셨다.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말씀 길게 안들어도 그의 후손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을지 짐작이 간다. 정도전 후손들에게 자그마한 위로라도 된다면 그로써 족하다. 어쨌든 요즘 정도전 재평가의 물줄기는 내 소설이 만들어낸 셈이니까.
나는 흔히 버려진 인물, 남이 돌아보지 않는 인물을 주로 내 소설의 주인공과 등장인물로 삼아 왔다. 역사소설로서 내가 처음 쓴 <소설 토정비결>도 점쟁이로 치부되던 토정 이지함의 개혁 정신과 꿈을 재조명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한낱 기인이요, 주역점이나 치던 하찮은 인물 토정 이지함을 조선 중기의 개혁가로, 사상가로 부각시키는데 성공했다. 토정 이지함 사후 그의 후손들이 얼굴 못들고 살다가 내 소설이 나온 뒤 처음으로 종중을 결성했다는 말을 들었다. 얼마나 속이 시원했으면 이 분들이 내 서재까지 찾아왔겠는가.
이후 <왕의 눈물>에서는 실학가 박지원과 홍대용, 박제가 등을, <하늘북소리>에서는 정역을 발명한 일부 김항과 천지공사를 펼친 증산 강사옥, 여진족 여인 나모하린 등을 조명했다. 또 <여불위>에서는 진시황을 만든 장사꾼 여불위를 심도있게 파헤쳐 차이나로 불리게 된 바로 그 나라 진(秦)나라 이야기를 우리 관점에서 살폈다. <음양화평지인>(나중에 사상의학으로 다시 펴냄)에서는 사상의학을 창안한 이제마를 다루었다. <천년영웅 칭기즈칸>에서는 그동안 오랑캐로 멸시받던 세계제국 원나라 시조 칭기즈칸과 쿠빌라이, 바투 등을 대하소설로 다루었다. 이 <천년영웅 칭기즈칸>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처럼 방대하게 다룬 소설이 없을만큼 수년간 자료 조사와 현지 답사를 해가며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이다. 1995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청사홍사>에서는 대마도주 종의지, 기황후, 도선, 황진이, 정여립, 연상왕 이융 같은 아웃사이더들을 집중 조명했다. 아마도 기황후에 관한 한 내가 최초로 썼을 것이다. 물론 MBC드라마 기황후는 내 소설과 1%도 닮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 기황후란 인물을 소개한 것은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경향신문에 연재한 <당취(현재는 소설 토정비결 2부로 묶여 있다)>에서는 임진왜란 때 활약한 승군과 일본인 여성 첩자를 등장시켜 역사의 물줄기를 틀어놓은 진짜 주인공을 조명했다.
6년 전 정도전을 쓰면서, 나는 부질없는 짓을 해왔다는 자괴감에 빠진 적이 있다. 소설가로만 살아온 내 인생이 자랑스럽다거나 보람스럽다는 생각은 없고, 한량처럼 살아온 게 쑥스럽고, 아울러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가는 남편과 아빠 때문에 고생한 내 사람들이 처연하다는 고민에 빠져버렸다. 1993년이던가 1994년이던가 나와 김한길 씨, 김진명 씨, 김홍신 씨 넷이서 해냄출판사 송 사장의 잠원동 빌라에 모여 송년회를 가진 적이 있다. 이중 김홍신 씨는 출판사에서 새로 영입하려고 모신 작가이자 내게는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한 분이고, 여섯 살 많은 김한길 씨는 내가 <소설 토정비결>을 낸 직후 그 출판사에서 <여자의 남자>란 소설을 내 일약 밀리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분이었다. 또 김진명은 플루토늄의 비밀인가 하던 무명 소설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개작, 이 출판사에서 내어 매우 잘 팔리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나를 제외한 세 사람은 소설가란 직업을 버리고 차례차례 정계로 진출했다. 김홍신 씨는 민주당으로, 김한길 씨는 무소속으로 나가 두 번인가 낙선하다가 김대중 씨의 국민회의로, 김진명 씨는 국민회의던가 하여튼 야당으로 나갔다. 그런 중에 김홍신, 김한길 두 분은 국회의원이 되고, 나보다 한 살 많은 김진명은 선거에 실패하면서 다시 작가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김홍신, 김한길 두 분의 정치적 부침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그런 중에도 나는 100권이 넘는 소설을 쓰고, 또 50여권이 되는 비소설을 써냈다. 특히 <바이오코드>라는 성격분석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이 분야에 돈과 공을 들였다.
이제 생각해보니,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확실히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내가 써온 수많은 역사소설은 일종의 정치소설이다. 그러다가 불의에 울분을 품고, 개혁을 주장하고, 정의를 소리쳐 외치지만 다 허공에 스러지는 메아리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정도전이 제 아무리 세계 최초의 <철학자의 나라>를 만들었다지만 그는 이방원에게 죽고, 이후 한명회, 윤형원 등으로 이어지는 수구 보수 세력들에게 나라가 흔들거린다. 그가 극복한 인물 이인임 같은 인물이 이후에도 줄줄이 나온 것이다. 김구 선생은 안중근, 이봉창 같은 청년들을 앞세워 일제를 향해 총을 쏘고, 폭탄을 터뜨렸지만 그가 되찾아온 대한민국에서는 이기붕 같은 이들이 주인이 되어 독재를 하고, 원수이던 친일파들이 모든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아 버리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사는 용인에서 불법을 일삼던 한 국회의원과 싸우던 중에 법정에서 이런 현실을 체감했다. 권력을 기웃거리는 나쁜 검사, 나쁜 판사는 무시무시한 징역형을 선고했다. 가까스로 2심에서 작은 벌금으로 낮춰졌지만, 결국 그 국회의원은 내가 말한 그대로 공천 대가로 1억 8천만원을 받아먹고, 유권자들에게 금품을 돌리다가 구속되어 징역형을 살고 말았다. 그래도 그때 그 검사, 그 판사들은 활개를 치며 검사입네, 판사입네 하며 으스대며 살 것이다. 친일판사, 유신판사들이 자랑스럽게 사는 세상인데 뭐 그 정도야 별거랴 싶기도 하다. 징그러운, 더러운 세상이다.
또 내가 살고 있는 용인시가 무능과 무소신으로 재정파탄이 나고, 황당무계한 정책으로 도시공사가 부도에 직면했는데도 그런 시장을 호위하고 옹호하고, 뒤따라다니며 찬양하는 무리들이 많은 걸 보고 기겁을 하는 중이다. 따라서 나는 확신한다. 정의란 한 번 세운다고 세워지는 물건이 아니다. 잠시잠깐 정의를 세울 수는 있어도 결국은 이완용이 다시 태어나고, 이인임같은 간신이 기어이 정권을 차지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금은 내 말뜻을 이해할 것이다. 그가 민주당의 부총재이고 최고위원일 땐 이런 내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세상을 좀 먹는 친일파며 부정부패 세력을 싹 쓸어버릴 듯이 만용이 넘쳐흘렀다. 대못박는다고 자신만만했지만 그 대못은 금세 뽑혔잖은가.
지금 박근혜 대통령 눈치만 살피면서 굴종하는 저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을 보면 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훤히 알 수 있다. 이게 세상이다.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구 유권자들에게 굴종하는 건 도리어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지역주민이 아닌 권력자에게 아첨하고 굴종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 걸 간신이라고 한다. 자기를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국민을 대신해 외치고, 싸워야 하지만 그들은 유권자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오직 대통령 눈치만 보면서 박심이냐 아니냐 따지기나 한다. 주인인 유권자를 배신한 인간들이 떳떳이 낯을 들고 사는 세상이다.
따라서 정도전, 그는 틀렸다. 그는 제2의 노무현이요, 제2의 조광조일 뿐이다. 그때 이방원과 손을 잡고 타협했거나 아니면 그를 죽이거나 철저히 묶었어야 한다. 무능하고 부패하고 위험한 인물을 방치하면 기어이 나라를 망친다. 모름지기 정의를 부르짖는 자는 좀 더 냉철해야 한다. 머뭇거려서는 안된다. 죽여도 태어나고 또 태어나는 게 간신들이다. 살인자를 아무리 처형해도 제2, 제3의 악마는 끊임없이 태어나는 이치와 같다.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내 마음대로 잠을 자고, 내 마음대로 일어나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하기 싫으면 멋대로 돌아다니는 자유인생을 살아왔다. 야생으로 살아온 셈이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참고, 의견이 달라도 모른 척 따르는 법에 길들여지지 않았다. 처자식을 위해 이를 물며 굴종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바꿔보려고 노력도 했지만 잘 안된다. 그러느니 차라리 이따위 인생 그만두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만일 내가 이 사회의 어떤 일을 정하는 위치에 가더라도, 아마 매서운 칼을 휘두를지 모른다. 정도전, 조광조, 노무현을 생각한다면, 능력이 안되면 입 다물고 잠자코 때를 기다려야 하건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겠다. 나는 좀 더 지혜롭게 처신하고 싶지만 야생으로 살아온 이 관성이 그러도록 버려둘 것같질 않다. 그게 안되니까 나는 아직 소설가다. 달리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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