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드라마 정도전을 처음에는 호기심 있게 보았지만 중반부터는 보지 않았다.
정도전은 캐스팅이 한참 잘못됐다. 생긴 것부터, 웃음소리, 표정이 모두 간신 같을 뿐 호방한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 권근이 묘사한대로 그려낸 정도전 공식 영정. 오른쪽은 정도전을 연기한 배우.
정도전이라면 이런 표정은 절대로 짓지 않았을 것이다.
또 드라마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인임과 이성계에게 좋은 대사를 주는 바람에 주인공이 누군지 헷갈리게 한 점도 있다.
세계 최초로 민본 사상을 현실에서 뿌리 내린 정도전을 이처럼 폄하하다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만약 정도전이 그때 이방원의 쿠데타에 당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는 좀 더 좋은 나라가 됐을지도 모른다.
이후 조선은 세종 대까지 그럭저럭 버티다가 사실상 백성들 잡아먹는 도깨비 나라가 됐다.
책을 안읽고 드라마만 본 사람들은 권력 암투만 보았을 것이다.
우리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 드라마틱하며 가장 순수했던 시기의 역사를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2008년, 정도전이 한낱 역적에 불과하던 때 나는 처음으로 그를 민본주의자, 이 나라에 민주주의를 시도한 철학자로 그린 바 있다.
이제 그가 조명되기까지 작은 역할을 한 것에 만족한다.
비록 드라마가 이름만 바꾼 <용의 눈물>이나 <조선왕조실록>으로 쪼그라들었지만 언론과 방송에서 그의 민본 사상을 눈여겨보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또 한번 소설가의 한계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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