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은 <맹자>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맹가가 주창한 민본주의를 세계 최초로 시행한 고려의 혁명가다.
따라서 조선이 건국되던 해인 1392년 7월 17일은 세계최초로 민본주의가 열린 날이다. 왕조 시대의 유사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맹자>는 정도전이 탐독한 혁명교본이었고, 고려왕실이 볼 때는 지극한 불온문서였다.
내 소설 <정도전, 그가 꿈꾸던 나라(책이있는마을)>(1판 제목은 '나는 고백한다-정도전살해사건(위즈덤하우스)')에 나오는 <맹자> 관련 부분을 옮긴다. 소설은 정도전 사후 이방원에 의해 18년간 수군생활을 하고 있는 큰아들 정진이, 정도전이 죽은 뒤 함께 체포되어 역시 수군으로 끌려온 아들, 즉 정도전의 손자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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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정도전이 남들과 다르게 3년이나 시묘살이한다는 소문을 들은 정몽주 선생이 그 용기를 칭찬하며 <맹자(孟子)> 한 질을 보내주셨다. 이 책 한 질이 네 할아버지 정도전의 인생을 바꿔버렸다. 시묘살이 하는 동안에는 시간이 많으니 아버지는 <맹자>를 펼쳐놓고 하루 한 장씩만 열독하셨다. 그런데 그만 양나라 혜왕(梁惠王)편을 읽으시다가 기름을 들이부은 듯 온몸에 불이 붙은 거야. 몽골의 내정간섭으로 망친 고려, 그런 세상을 한탄하던 한 젊은이가 눈을 번쩍 뜬 거지.
- 인(仁)을 해치는 자는 그저 도적에 불과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는 한낱 강도일 뿐입니다. 그런즉 도적과 강도는 쓸모없는 범부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일개 범부가 된 걸(桀)과 주(紂)를 쳐죽였다는 말은 들어보았으나 그것을 가리켜 임금을 시해한 것이라고 하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賊仁者謂之賊 賊義者謂之殘 殘賊之人謂之一夫 聞誅一夫紂矣 未聞弑君也)
하나라의 걸왕과 상나라의 주왕은 고금에 제일가는 폭군 아니더냐. 그런 폭군을 죽이는 것은 임금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인심을 잃은 도적이나 강도 따위를 죽이는 것에 불과하다는 맹자의 이 서늘한 말씀, 그것은 아버지에게 속삭이는 하늘님의 천둥소리였다. 걸왕 상왕을 죽인 것이 아니라 저 흔하디 흔한 죄인 한 놈을 응징한 것에 불과하다는 맹자의 이 말씀을 접한 아버지는 심장이 쿵쾅거려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단다. 묘막을 걷어붙이고 나가 하늘을 향해 마구 소리를 지르셨지.
- 내가 고려 도적, 고려 강도를 다 쳐죽이고 이 나라를 다시 세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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