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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애견일기3 - 리키 바니

리키, 웃고 떠들다 벚꽃 지는 밤에 훌쩍 떠나가다

2010년 5월 4일, 도조 주니어 리키가 내게로, 내 가족에게로 왔다.

웃고 떠들고 왁자지껄 신나게 놀던 리키가 2014년 4월 11일 오전 1시 30분, 내게서 떠나갔다.

1.8킬로그램 짜리 리키는 내 딸이 태어나던 당시의 몸무게이기도 하다. 얼마나 가련해보이던지 불면 날아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리키는 금세 우리집의 왕초가 되었다.

리키는 언제나 당당하게 요구했고, 자기가 갈 길을 스스로 정했다. 

산책 나가서도 가고 싶은 방향이 아니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목줄을 매고는 결코 걷지 않아 리키의 목줄은 아직 새 물건이다. 

배 고프면 새벽 서너 시에도 주인을 깨울만큼 용감했고, 주인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라도 빼먹을만큼 억셌다.

 

- "누난 날 너무 괴롭혀."라면서 애교떠는 리키.

 

그러던 리키가 4월 11일, 아침과 저녁 두 끼를 굶고 몇 번 토하더니 한밤중에 갑자기 기력을 잃어 병원으로 이송했는데, 심폐소생술에도 불구하고 살아나지 못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워 우리 가족들이 다 패닉에 빠졌다. 

열흘 전에 잇몸에 꽈리처럼 부풀어오른 종양을 몇 개 제거했는데, 간 수치가 너무 높아 약 처방을 받고나서야 수술했다. 

전에 잇몸수술을 할 때도 간 수치가 너무 높아 열흘 정도 치료를 받다가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마취에서 잘 깨어나지 못해 흔들어 깨우곤 했었다.

생각해 보니 간이 많이 약해져 있었던 듯하다. 어린 나이에 수술을 너무 여러 번 받았다. 

중성화수술, 슬개골 수술, 잇몸수술, 요로결석수술, 종양제거수술. 그때마다 마취를 했는데, 이게 안좋았던 듯하다.

 

- "야, 너 좀 이리 올라와 봐." 리키가 인형을 끌어올린다. 주로 침대에서 인형놀이를 하는데,

인형이 침대 아래로 떨어질 때마다 리키는 아빠를 쳐다본다. 조금만 머뭇거려도 혼나곤 했다.

 

심폐소생술이 실패한 뒤 리키를 데리고 돌아와 담요에 감싼 뒤 집 주변을 산책했다. 

딸이 늘 데리고 다니던 길이다. 

벚꽃이 지는 때라 살짝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하얀 꽃잎이 우수수 눈 내리듯 떨어진다. 

카펫처럼 밟힌다. 

하늘을 보니 별이 총총하다. 

저 먼 곳으로 이 어린 것을 보내야 한다. 

앞서 간 아이들 이름을 불러가며 리키 놀라지 않게 잘 데려가라고 부탁했다. 

우리 아이들 이름을 부르려면 꽤 시간이 걸린다. 

하나하나 불러가며 인사까지 하고 리키 부탁을 해야 하니 더 길어진다.

 

집으로 돌아와 옆자리에 뉘었다. 

단 한 번도 같이 잔 적이 없는 바니가 리키를 베고 눕는다.  

 

- 바니 할머니가 리키를 베고 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둘이 누워본 적도 없다.

 

어떻게 보내야 할까 고민하다 자주 산책나간 산에 묻기로 했다. 

절이 보이고, 성당이 보여서 독경소리며 찬송가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바니할머니가 14세이니 언제고 나란히 자리잡아주마고 약속했다.

 

리키를 보내고 나니, 집안에 옥시크린 냄새가 덜 나서 좋다. 화장실에서도 냄새가 덜 난다. 

바니 할머니는 변기에 소변을 직접 짜주기 때문에 절대로 냄새가 나지 않는데, 리키는 제멋대로였다. 

화장실에서 일을 봐도 발에 묻힌 채 침대에 오르기 일쑤라 온 집안에 놈의 냄새가 진동하는 걸 막느라 자주 빨래하고, 쫒아다니며 옥시크린으로 닦아야만 했다. 

또 쓰레기통이며 냉장고 주변을 하도 뒤지는 탓에 늘 싸우곤 했는데 이젠 쓰레기 마음대로 버릴 수 있어 좋고, 아무 데나 과일이나 음식을 놔둘 수 있어 좋다. 

또 새벽에 잠 설치지 않아서 좋다. 일하는 중에 달려들어 먹을거리 달라고 보채는 놈 없어 한적하다. 

무엇보다 일하는 중에 마음대로 간식을 먹을 수 있어 좋다. 

리키 눈치 보느라 간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바니 할머니는 쳐다보기는 할지언정 달라고 소리치지는 않는다. 리키는 길길이 날뛰며 내놓으라고 요구하지만 장애견 할머니 바니는 매사 눈만 꿈벅인다. 

바니는 한 순간 한 순간 달게 살아가는 것처럼 인생을 깊이 있게 누릴 줄 안다. 

돌이켜보니 리키는 하루살이처럼 날뛰었다. 

그렇게 훌쩍 떠나려고 더 열심히 살았는가 보다.

 

 

- 앞에 성당이 보이고, 산중턱에 고찰이 있다.

산짐승 훼손을 막기 위해 무거운 돌을 몇 개 눌러놓았다.

 

다시 2010년, 우리집은 리키가 없던 상황으로 돌아간다. 

바니는 아빠 움직이는대로 따라다니며 자리 잡고 눕는다. 

뒷다리가 약해 앉아 있지를 못한다. 

리키는 사진 속에서 말없이 바라볼 뿐 감히 달려들지 못한다.

 

- 급히 마련한 리키 영정

 

- 두번째 하얀뭉치가 리키가 가장 아끼던 곰돌이. 2010년부터 틈만 나면 뱅뱅 돌리고 물어뜯었지만 아직 건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