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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애견일기3 - 리키 바니

리키 간 뒤 우울증이 깊어졌다

지난 4월 11일에 리키가 파란 하늘로 올라갔다.

슬픔을 삭이면서 다짐했다. 무슨 일을 하든 더 정밀하게, 더 신속하게, 더 분명하게, 더 확실하게, 더 신중하게 하자고.

 

사건이나 사고에는 반드시 그 기미가 있다. 기미는 너무 작아서 자칫 무심하게 넘어가기 쉽다. 이번에 리키를 잃은 사고에도 그런 기미가 있었다. 아직 사인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차마 부검을 하지 않아서, 죽기 열흘 전에 잇몸 종양 제거를 할 때 나온 검사수치가 불안하다. 그때 간 수치가 정상보다 4배 가량 높게 나왔다. 그래서 약을 먹은 뒤 일주일 더 기다렸다 수술을 했는데, 간 수치가 높게 나온 건 이번만이 아니다. 전에 스케이링을 할 때도, 그 이전 슬개골 수술을 할 때도 나온 것이다. 그런데 간을 치료하는 걸 미루다가 이런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가기 전 날은 아버지 제사가 있어 늙은 개 '바니 할머니'만 데리고 시골에 다녀왔다. 제사이기 때문에 리키가 가서 집안을 헤집고 돌아다니면 말이 나올 것같아 일부러 안데려갔다. 딸이 퇴근하기까지 3시간 정도 혼자 집에 있었는데, 그때부터 리키가 시들시들했다고 하여 나는 리키가 저만 혼자두고 가서 삐쳤는가 보다 여겼다. 이튿날 아침에도 리키는 밥을 먹지 않았다. 기분이 많이 상했나 보다 여겼다. 그래서 별 생각없이 배 고프면 먹으려니 여겼다. 그렇게 저녁까지 먹지 않았다. 그제야 이렇게 저렇게 몸을 살폈는데 특별히 이상한 구석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 날 딸이 열시에 들어와 리키를 보더니 당장 병원 가자고 난리를 피웠다. 상태가 안좋긴 하지만 내일 아침에 가도 늦지 않으리라고 여겼다. 리키는 평소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기 때문에 급한 상황은 아니라고 착각한 것이다. 뭔가 잘못 먹었겠지, 그 정도였다.

 

그래놓고 억지로 물을 먹인 뒤 같이 자는데 리키 숨소리가 이상했다. 그제야 벌떡 일어나 딸과 함께 24시간 응급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리키는 가는 중에 숨을 놓아버렸다. 결과적으로 너무 갑작스런 일을 당해 리키가 간 뒤 나도 딸도 거의 한 달 내내 넋을 놓고 지냈다. 딸은 리키를 방치한 아빠를 저주하다시피했다. 그런 데다 세월호 사건까지 겹쳐 그야말로 우울한 날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리키가 간 이유를 정확히 모른다. 다만 그날 저녁에 병원에 일찍 갔더라면 혹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간에 이상이 왔다면, 또다른 종양이 있었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일말의 가능성을 놓친 것이 너무나 통탄스럽다.

 

세월호 사건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많은 예방 기회가 있었는지 알고는 역시 기미를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또 한번 절감했다. 사고 이후 정부의 대처 능력도 무능하기 짝이 없었지만, 사고 이전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기미를 방치했다. 평형수 문제를 방치하고, 설계변경을 방치하고, 화물차 고정하는 걸 방치하고, 선장 등 승무원들 정신 교육을 방치하고, 탈출 시설 점검조차 하지 않았다. 그 일주일 전에는 내 서재에서 멀지 않은 용인정보고 아이들이 그 배를 이용해 제주도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때는 다행이 배가 넘어가지 않았지만 언제 넘어갈지 알 수 없는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런 걸 방치한 사람들이 더 문제고, 확실히 단죄해야만 한다.

 

리키에게 늘, 자주 용서를 빈다. 병이 깊도록 방치한 내 잘못, 아픈 데도 급히 병원을 찾아가지 않은 잘못, 더 세밀하게 들여다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게 너무나 후회스럽다. 그래서 리키에게 약속했다. 바니 할머니는 비록 나이가 열네살이나 되지만 작은 기미라도 꼭 살펴 오래오래 살다가도록 하겠노라고. 바니 할머니는 반신불수로서 소변을 짜줘야 한다. 애견미용실에서는 미용이 불가능해서 집에서 털을 깎는다. 미용실에 가면 기절하고, 숨 넘어가서 무서워 못하겠다고 한다. 그동안 서너 차례 어려운 고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바니는 그야말로 내 지극정성으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어린 애기 리키는 단 한 순간의 실수로 그만 하늘로 가고 말았다. 다섯 살 어린 나이에 리키를 보내고 나니 바니 할머니를 더 잘 챙겨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속죄 욕구인 듯하다. 물론 이런 자세로 내 인생에 대해서도 예의있게, 진실하게, 성실하게, 치열하게 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