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니 할머니는 올해 14세(2001년 이맘 때 태어났으니 만으로 13년 꽉 찼다.)인데, 작년 내내 죽을듯 말듯 고비가 여러 번 있었다.
작년 가을에는 근처 병원 미용실에 미용을 맡겼는데 수의사가 다시는 바니 할머니를 데려오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미용 중에 자꾸 기절해서 무서워 못하겠다는 것이다. 기력이 약해져서 그랬다. 전에도 미용 중에 숨을 거두어 내가 가슴을 마구 주물러 겨우 깨워 놓은 적이 있는데, 수의사나 미용사 입장에서는 겁이 날 것이다.
그 다음 미용할 때가 되어서는 꾀를 내어 다른 병원에 갔는데, 거기서도 앞으로는 미용 못해주니 알아서 하라고 최후통첩을 받았었다.
- 2010년 8월 3일 사진, 이때만 해도 해수욕장에 가면서 바니를 꼭 데리고 갔다.
그러고 보니 멀리 갈 때는 항상 바니를 차에 태워 다니곤 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리키 이후에는 리키를 안고 가기 때문에
바니는 늘 뒷자석에 물건처럼 놓요 있기만 했다.
- 2010년 7월 1일자 사진인데, 리키가 온 지 두 달이 돼가던 무렵이다.
이때만 해도 아빠는 바니 차지였고, 리키는 좀 물러나 있었다.
- 리키는 오래지 않아 바니 할머니가 잘 걷지 못하는 장애견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부터 리키는 바니한테서 가족을 하나씩 빼앗아갔다.
- 언니는 공부를 하면서도 리키를 안고 있고, 그러면 바니는 늘 풀이 죽어 있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바니는 서툰 내 손으로 미용을 해주고 있다. 할머니가 워낙 사나워 입마개를 채워 놓고 가위로 털을 자르는데, 솜씨가 없다보니 바니를 안고 어디 나가기도 민망하다.
사실 지난 4월 11일에 리키가 갑자기 하늘로 떠날 때, 차라리 바니가 가지 어린 것이 왜 벌써 가느냐고 탄식한 적이 있다. 어차피 몇 달 못살 것처럼 힘겨워 하던 바니인지라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스케일링을 해줘야 하는데 병원에서 못하겠다고 하여 그것도 포기하고, 백내장이 생겼는데도 몸이 약해 수술을 못하는 중이다. 리키 49재가 되기 전까지 바니는 이처럼 푸대접을 받았다.
- 바니는 리키가 침대에 오르내리는 계단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화를 삭여야 했다.
그 이전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아빠 무릎은 어린 리키 차지가 되어 바니는 단 한 번도 올라온 적이 없고, 아빠 팔베개를 하고 자는 것도 리키 몫이지 바니는 발끝 언저리나 침대 아래 웅크리고 잘 뿐이었다. 자동차를 타도 리키는 아빠에게 안겨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으쓱이며 가지만 바니는 뒷좌석 담요에 코를 박고 누워 차 천장이나 바라볼 뿐이었다. 산책을 다니는 것도 리키 뿐이었다. 바니는 걷지를 못하니 잠시잠깐 바람 쐬는 것 말고는 개천가에 나갈 일도 없다. 그저 리키만 쫄쫄거리며 꽃길을 걷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사랑까지 한 몸에 받았다. 가끔 데리고 나가보지만 리키가 마음대로 뛰어다니는 걸 보는 바니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아 보였다.
그러다보니 바니와 리키 둘만 집에 남아 있을 때는 바니 할머니가 성을 내어 리키가 침대 위에 붙잡혀 있는 경우도 있었다. 어쩌다 소변을 참지 못하고 침대를 내려오다가 코너에 몰려 물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4월 11일, 리키가 훌쩍 떠나간 뒤 뜻밖의 변화가 일어났다.
바니가 갑자기 아빠 책상다리한 무릎으로 기어올라왔다. 뒷다리를 쓰지 못하기 때문에 아빠 무릎까지 올라오기가 굉장히 힘들건만 앞발로 움켜잡고 엉덩이를 밀어올려 기어이 올라오는 것이다. 리키가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것이다.
뿐인가. 사료도 잘 안먹어 곧 죽을 모양이라고 걱정했는데 리키 간 뒤로는 사료도 잘 먹는다. 힘도 좋아져서 아빠 책상다리로 올라왔다 내려갔다 마음대로 한다.
어쨌거나 리키가 없어졌으니 어딜 가든 바니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산에 가도 바니를 안고 가고, 산책을 나가도 저를 데리고 나가니 흠흠, 그러면서 이쪽저쪽 구경도 잘한다.
- 리키 만나러 산에 오른 바니 할머니. 바니 무덤에서는 자못 숙연한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리키가 오기 전, 바니는 원래 이랬었다. 어린 리키가 집에 온 이후 바니 할머니는 그 모든 것을 빼앗긴 채 리키 그늘에서 지냈던 것이다. 맛있는 걸 줄 때도 꼭 리키를 먼저 주고 나중에 바니에게 주는 식이었다. 2010년 5월 4일부터 2014년 5월 11일까지 4년간 바니는 리키 때문에 많이 속상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건강도 안좋아 기절하기 일쑤였고, 사료도 잘 안먹고, 리키가 재주 부리느라고 팔짝팔짝 뛸 때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것이다.
안좋은 일이 하나 생기면 괜찮은 일도 하나 꼭 생긴다더니 리키간 뒤 바니가 도로 살아났다.
바니라도 건강해지니 천만다행스럽다. 바니가 이제 살만하다고 즐거워한다. 리키 없는 우리집이 행복하다고 꼬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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