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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애견일기3 - 리키 바니

리키 1주기 맞아 산소에 다녀오다

우리 리키는 지난 해 봄 벚꽃이 지던 4월 11일 새벽에 내 곁을 떠나갔다. 세월호 참사가 있기 닷새 전이다.

리키 엄마와 나, 딸, 그리고 리키가 간 덕분에 건강을 회복한 바니 할머니까지 넷이서 갔다.

떨어져 사는 데다, 직장까지 다니는 리키 엄마와 딸을 위해 미리 당겨간 것이다.

리키가 간 이후 내가 흘린 눈물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하필이면 그때부터 어머니 병환이 깊어져 노심초사하는데 세월호 사건까지 겹쳐 이래저래 지난 1년은 아픔이 너무 깊은 나날이었다. 게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딸의 심리 변화를 예의주시해야 하는 초병 역할도 놓지 못한다.

 

오늘 새벽에는 리키보다 먼저 간 아이들이 나를 위로했다.

도리 할머니(바니의 진짜 할머니)가 마당을 뛰어놀다 집에 들어가겠다고 하여 허리를 감싸 안으니 생전처럼 오줌을 질펀하게 싼다. 안아서 베란다에 마련된 개집에 넣어주었는데, 내가 잘 모르는 곳이다.

창밖을 보니 도신이가 들어오겠다고 꼬리친다. 도신이는 16세 때 심장판막증이 너무 심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안락사시킨 소형견이다.

도신이를 안아들면서 나는 천연덕스럽게 이런 생각을 했다.

"너는 어째 죽었는데도 살아 돌아다니니? 이렇게 만질 수도 있는데 이게 웬일이니? 죽어도 아무 상관없구나."

그러면서 도신이를 안아 베란다에 넣어주니, 이미 도리는 어디론가 구멍을 찾아 마당에 나가 있고, 도신이도 금세 밖으로 나간다.

안방으로 가니 누군지 기억 못할 개들이 모여 있고, 그 앞에 스물두 살쯤 된 애엄마가 엎드려 애들을 보듬고 있다. 우리딸보다 두 살 더 어린, 내가 처음 만나던 그 아득한 시절의 얼굴이다. 그 얼굴이 운다. 눈물이 흐른다. 손을 들어 그 얼굴 오른쪽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왜 스물두 살 얼굴로 꿈에 나오는지 모르겠다. 날 잘못 만난 걸 호소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 앞의 개는 도담인가 보다. 그 아이가 갔을 때 우리는 무려 10년간 애도했다.

언젠가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를 가고 있을 때 문득 도담이를 볼 수만 있다면 지금 죽어도 좋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 마음 변함이 없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 물질의 세계와 다른 반물질의 세계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이따금 꿈에 엉뚱한 이미지가 보이는 건 아닐까. 리키를 비롯하여 먼저 간 아이들이 모여 있을 그 세상, 그 반물질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우주의 4%밖에 알지 못한다. 96%는 다크 매터리얼이라는 암흑물질이다. 다차원 우주가 가능하단 얘기고, 우리 아이들은 그 어딘가에 가 있으리라고 믿는다.

꿈을 꾸면서도 나는 꿈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꿈이 깨기 전에 아이들을 더 만져본다. 촉감이 있다. 그럴 때면 "그래, 너희들이 죽었는데도 이처럼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세상은 참 희한한 거야." 그러면서 아이들과 논다.

그런데 아직 리키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직 그 하늘에 적응이 안되어 아빠 생각을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아마도 내 기억 속의 리키가 2단계로 정리되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전역한 군대를 다시 가고, 아직도 전역 못한 채 군대에 잡혀 있는 꿈을 무려 20년간 꾼 적이 있다. 40대 중반이 돼서야 군대 꿈이 사라졌다. 이런 거로 보아 꿈은 기억이 처리되는 과정의 소산일뿐 특별한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이 줄지어 한창 가던 2010년경은 아이들을 산에다 모아 놓고 깜빡 잊어 물과 사료를 들고 뛰는 꿈을 많이 꾸었다. 몇 년이고 가보지 않아 굶어죽지 않았을까 울부짖으며 달려가면 거기에 아이들이 모여 있고, 다행이 죽지 않은 채 달려들어 저희들과 내가 뒤엉켜 회포를 풀곤 했다.

4월 11일까지는 힘들 것같다. 아니, 16일까지.

 

 

- 바니 할머니는 리키 산소에 갈 때마다 동행한다.

바니 심심하지 말라고 입양한 리키가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자 시름시름 앓아

곧 죽을 것더니 리키 가자마자 기력을 되찾아 지금은 매우 건강하다.

하반신불수이긴 하나, 대소변을 받아줘야만 하지만 늘 씩씩하다.

 

- 버들 강아지가 활짝 피었다. 피기 시작할 때 강아지 꼬리같다.

리키기 자주 다니던 길에 피어 있길래 찍어보았다.

아래 사진은 리키가 생전에 자주 산책하던 같은 길이다. 그뒤를 한참 떨어져 바니 할머니가 힘겹게 걷고 있다.

다 걷지는 못하고 몇 걸음 뗀 다음에 고개를 돌려 호소하면 내가 안아줘야만 한다.

- 이 돌무덤에 리키가 잠들어 있다. 한때 복제를 할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어차피 리키는 둘일 수 없어 포기했다. 사실 리키도 도조를 잃은 뒤 상심을 견디다 못해

입양한 유기견인데, 이렇게 아픔이 꼬리를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