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록의 힘/애견일기3 - 리키 바니

바니의 시간이 끝나다

지금은 2015년 8월 4일 오전 0시 42분, 바니를 안고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들어왔다. 

"바니야, 하늘 가거든 리키 야단치지 말고 잘 데리고 있거라. 네 엄마 다래, 네 아빠 도반, 할머니 도리, 할아버지 희동, 증조할아버지 도담, 그리고 네가 아는 도조 아저씨, 도신이 아줌마하고도 잘 지내라. 하늘 가면 네가 얼굴을 모르는 우리 식구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같이 잘 어울려야 한다. 제발이지 리키 만나 네가 이끌어다오. 리키는 하늘 갈 때 혼자만 가서 여태 외로울 것이다."

바니는 고개를 떨군 채 익숙한 골목길을 돌아다본다.


최근 저녁마다 바니를 안고 다닌 길이다. 

그 바니가 지금 숨을 놓으려고 한다.

병명은 신부전, 결국 신장이 견디지 못하고 탈이 났다. 당장 투석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치료 예후가 전혀 없어 3일간 수액을 맞다가 어제 오후 퇴원했다. 여러 가지 검사 결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퇴원하면서 주치의하고는 바니가 고통을 심하게 느끼면 안락사를 하기로 뜻을 모았는데, 몇 시간 관찰하니 자연사가 더 좋을 듯하다. 암 같은 통증 질병이라기보다는 장기부전이 원인이라 비명을 지르거나 신음을 내지는 않는다.


바니는 2001년생 말티즈다. 분양갔다가 5살 때 파양되어 돌아왔다. 2006년 여름 오토바이를 추적하다가 그만 급성 디스크에 걸렸다. 전문치료에도 불구하고 끝내 하반신불수가 되어 소변을 보지 못하는 장애견이 되었다. 이후 나는 집을 비워도 최대 5시간 이내에는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소변을 짜주지 않으면 요로감염이 생기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바니와 함께 주로 집에서 일하는 생활패턴에 묶이고 말았다. 무수한 사람들이 안락사를 시키라고 요구했지만 나는 이 장애견을 안고 오늘 2015년 8월 4일에 이르렀다. 지금부터는 시시각각이 금싸라기다.


내가 우리집 마지막 애완견 바니에 애착을 갖는 것은, 이 아이가 우리집 애견 족보에 기록되는 마지막 핏줄이기 때문이다. 바니의 증조할아버지 도담이가 우리집 애완견의 1대조인데, 1988년 여름에 태어났다. 그리고 가을에 우리 식구가 되었다. 이렇게 1988년 가을에 시작된 도담이의 핏줄이 2015년 8월 오늘에 이른 것이다. 만 27년이다. 그 사이 무수한 아이들이 태어나 우리집 마당에서, 안방에서 마구 뛰어놀다가 저마다 하늘로 갔다. 그 마지막이 바니다.


바니는 사연이 많은 개다. 유기견 아닌 유기견이요, 그러면서도 자기가 태어난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 엄마와 함께 3대가 살아본 행운의 개이기도 하다. 


나는 1988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아이들을 손수 기르고, 사료를 주고, 치료를 하고, 사랑을 주고받다가 일일이 내 손으로 하늘로 돌려보냈다. 내 가슴에 올라와 숨을 놓은 다래, 내 품에 안겨 숨을 놓은 리키, 도조, 도신, 다래, 도롱, 홀로 죽음을 맞은 도반과 희동, 사고사 당한 도담, 내가 잠든 사이 몰래 떠난 도란까지 직접 하늘 가는 길을 배웅했다. 여섯이 이 아이들의 고향 산에 모여 있고, 넷이 다른 동네 산에 모여 있다. 

바니는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마지막인만큼 유골이라도 갖고 싶다. 혹은 유골을 제 엄마, 할머니가 묻혀 있는 곳에 뿌려주고 싶기도 하다.


바니가 태어나던 2001년 7월이 생각난다. 내게는 아주 힘든 시기였다. 

이후 리콜된 바니와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늘 바니 곁에 있었고, 바니는 내 곁에 있었다. 5시간 이상 바니를 떠난 적이 거의 없다. 피치 못해 병원에 입원한 시기 말고는 항상 내 곁에 두었다. 장거리 여행을 가더라도 바니는 꼭 데려갔다. 그래서 바니는 자동차 뒷좌석을 아주 편하게 생각한다. 지정석인 줄 저도 알기 때문이다.


지방 강연을 갈 때도 바니를 데리고 가서 강연이 시작되기 전에 소변을 짜주고,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또 짜주면서 함께 다녔다. 그럴 때면 휴게소에서 치즈나 소시지를 사주기 때문에 바니는 언제나 자동차 여행을 반긴다. 뭔가 특별한 간식이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바니와 함께 붙어 산 지난 10년은 내게도 특별한 시기였다. 바니 덕분에 뭔가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바니를 떠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컴퓨터 앞에서 일할 시간이 그만큼 많았다. 아마도 그래서 딸에 관해 더 연구할 시간이 많았던 것같다. 이렇게 딸을 집중 연구한 결과 바이오코드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에 바니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아마도 바니가 내 컴퓨터 책상 아래, 즉 내 발끝에 앉아 있는 동안 써낸 소설도 꽤나 될 것같다. 최근 10년 내에 발표한 작품을 쓸 때마다 바니는 내가 두드린 키보드 소리를 대부분 들었다.


바니는 지난 7월 24일, 아빠를 따라 포천 평화교육연수원에 다녀온 게 마지막 긴 여행이었다. 아, 그러고도 7월 25일에 할머니 문병 차 대전에 다녀오고, 28일에는 바이오코드 연수에도 다녀왔다. 28일에는 차에서 하룻밤을 잤다. 며칠 사이에도 일정이 많았으니 바니 10년 여행 기록을 적으면 엄청 날 것같다. 


지난 주 초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여 7월 30일에 병원에 가 혈액 검사와 수액 및 약 처방을 받고, 8월 1일에 입원하여 여러 가지 검사를 더 하면서 치료를 받다가 오늘 퇴원했다. 그리고 지금 내 곁에 누워 숨을 쉬고 있다. 


더이상 물을 마시지 못한다. 사료를 물에 으깨 주지만 역시 먹지 않는다. 주사기로 급여해보아도 토해낸다. 다시 수액을 달아야 하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다. 6일, 충남도청이 있는 홍성까지 같이 갈 예정이었는데, 이번 여행에 바니는 동행하지 못할 것같다.


오늘은 한번 더 산책을 나갔다 올 것이다.

그런 다음 나는 바니 옆에서 잠에 들 것이고, 그 사이에 어쩌면 바니가 하늘로 갈지 모르겠다.

아마 바니와 으르렁거리며 함께 살던 리키가 며칠 전부터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전에 내 숙부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아버지(내게는 할아버지)가 와 기다리고 계시다고 중얼거리곤 하셨다. 제발이지 바니의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와서 기다리다가 바니를 데려가주었으면 정말 좋겠다.


하늘 올려다 보니 별이 총총하다. 모처럼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음력 20일의 달이 막 중천으로 오른다. 혹 밤에 가더라도 별빛, 달빛이 밝아 하늘 가는 길이 어둡지는 않겠다.

바니가 가더라도 나는 반쪽의 자유밖에 얻지 못한다. 내게는 아직 딸이 있다.

--------------

8.5 오전 9시 37분

어제 오전까지 물 한 모금 안마신 채 숨을 거칠게 쉬던 바니에게 저녁 무렵 큰 주사기에 물을 담아 입 주위에 뿌려주었다. 애가 아직도 사나워 주인인 나도 입을 마음대로 벌리지 못하니 어쩔 수 없다. 

입 주변이 촉촉해지니 어쩔 수없이 마른 목을 축인 모양이다. 방바닥에 내려놓으니 놀랍게도 물그릇 쪽으로 가더니 자발적으로 물을 마신다. 그런 뒤에 혹시나 하여 치킨 조각을 잘게 잘라 몇 개 주니 역시 받아먹는다. 퇴원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신부전이라 하여 고기는 먹이지 말랬는데 굶어죽는 것보다는 나을 것같아 줬더니 받아먹어준 것이다. 용기를 얻은 내가 고기 캔을 하나 따서 바치니 역시 먹어준다. 하루의 기적이 일어났다.


지금 이 시각, 역시 입을 주사기물로 축여주니 자발적으로 물을 마셨다. 고기캔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바쳤으나 아직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거친 숨은 가셨다.

리키가 가기 전, 바니는 늘 그 날 그 날이 마지막 같더니, 리키가 죽고나서 기적적으로 생생하게 살아났다. 아마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더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다. 퇴원하고 와서는 하룻밤을 넘기기 어려울 듯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의식조차 없더니 이제야 기운을 차린다. 적어도 일주일을 살아낼 힘은 생긴 것같다. 

어제는 원래 리키 엄마(스스로 그렇게 불리기를 좋아해서)가 내려와 함께 바니 장례를 치르기로 약속했었는데, 상태로 보아 영 갈 것같지 않아 장례날짜를 무기연기했다. 통증을 호소하지 않는만큼 안락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기쁘다. 저와 내가 함께 하는 금싸라기 같은 시간이 늘어났다. 막상 바니가 갈 것같은 상황이 되자 눈길 한번 주는 것에도 감동이 느껴진다. 저와 내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우리는 조금 더 살아보자, 조금 더 살아보자 그렇게 맹세한다.

--------------

8.6

오늘은 홍성-예산 지경에 있는 충남도청 강연이 있어 8시에 집을 떠났다. 할 수없이 딸이 지인의 도움을 받아 바니를 병원에 병원에 데려다 주었다. 하루 종일 링거를 맞게 했다. 식욕이 없으니 링거로 아미노산 등 몇 가지 약을 공급해야 한다.

오후 6시에 찾아왔는데, 내일 또 링거를 맞으러 가야 한다. 신장투석이 불가능하니 링거라도 맞혀서 생명을 연장해야 한다. 링거만 6만 6천원이다. 매일 맞으면 이것도 큰돈이지만 어쩔 수 없다. 고통없는 동안은 내 능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없다. 최후의 일각까지 나는 나의 최선을 다하면 된다. 

틈만 나면 바니를 안고 밤거리를 쏘다닌다. 재작년 2013년, 리키가 팔팔하게 살아 온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할 때에도 바니는 실신하고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그때도 죽는 줄 알았지만, 리키가 급사한 이후 바니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사랑을 되찾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있다고, 아빠가 늘 네 옆에 있다고 인식시키기 위해 바니를 자주 안아준다. 그래야 저도 안심하고 기운을 내는 것같다. 일주일을 더 살지, 한 달을 더 살지 지금은 모른다. 토하는 증세는 아직 없으니 최후의 시각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8월 3일 오후 3시경 퇴원할 때는 바니가 많이 포기했던 듯하다. 아빠가 이틀이나 찾아오지 않으니 심리적으로 포기 상태에 있었던 듯하다. 두 밤을 병원에서 지내며 실망이 컸던 모양이다. 나는 저를 고치려고 맡긴 건데 저는 버려졌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이처럼 바니는 예민하다. 3일, 그 밤으로 죽을 것같더니 이튿날 또 정신을 차려 오늘에 이르렀다. 가자, 끝의 끝까지 가보자.

----------------

8월 7일. 오전 9시에 병원에 데려가 또 링거를 맞는다. 식욕이 전혀 없어 아미노산 등 링거만 주렁주렁 걸렸다.

오후 3시 18분, 병원에서 바니가 위독하다는 전화가 왔다. 난 이런 식으로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갈 줄 태평하게 생각했는데, 신부전의 최후 증세인 경련과 혼수가 온단다.

병원에 가서 보니, 과연 의식이 거의 없이 경련 중이다. 불러도 반응이 없다. 꼬리가 움직이기는 하는 듯한데 힘이 들어 더 크게 흔들지는 못하는 것같다.

가족들에게 알리고 곧 안락사를 실시하겠다고 전했다. 집으로 데려가 자연사시킬 수도 있지만, 몇 시간 고통을 겪게 할 수는 없다.

장례 문제까지 다 의논을 끝내고, 바니에게 귓속말로 마지막 격려를 해주었다.

"지금쯤 리키가 여기 와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네 엄마 다래, 네 할머니 도리도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간 외로웠을 리키 데리고 하늘서 잘 살기 바란다. 우리 모두 다 같이 만나 행복하게 지낼 날이 올 거야. 안심하고 가라."

바니는 내가 저를 쓰다듬으며 말을 해주는 데도 반응이 없다. 그 사이 자연 배변이 되어 원장이 치워주었다.

오후 3시 45분, 주치의가 수면제를 주사했다. 1분 후 이번에는 심정지 약물을 주사했다.

절명 때까지 바니를 안아주었다.

오후 3시 50분, 주치의가 심정지가 완료됐다고 통보했다.

준비해간 가방에 바니를 넣었다. 날이 덥다. 

하늘을 보니 아직은 맑은데 서울은 소나기가 온단다.

오늘 중 광주로 가서 화장해야 하는데, 만약 그 시각에 비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몽골인들은 비 오는 날에는 양을 잡지 않는데, 바니는 하늘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비구름 위를 비행기로 날아봤는데, 사실 비가 오고 안오고가 무슨 상관이랴만 내 마음이 무겁다.

간다. 1988년에 시작된 나의 애견 역사가 오늘 2015년 8월 7일에 마감한다. 시작이 있으니 끝도 있다.

바니는 2001년 7월 내 서재에서 태어나 2015년 8월 7일 오후 3시 50분에 갔다.



- 아빠 강연 중에 차에서 기다리고 있는 바니.

                                                                - 작년 4월 11일 새벽, 리키가 숨을 거두자 바니가 함께 잠을 자주었다.

- 리키 무덤 앞에서

- 바니 분골은 리키 무덤에 뿌릴 예정이다. 아직은 섭섭해 집에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