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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애견일기3 - 리키 바니

관성

아침에 눈을 뜨면 바니가 어디 있나 살피던 버릇이 있다. 가장 먼저 바니 할머니를 찾아 소변을 짜줘야 하기 때문이다. 날이 더우면 시원한 데를 찾아 잠자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야 했다. 추울 때는 이불 속에 기어들어와 자기 때문에 역시 이불을 들춰 찾아야만 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혼자 서재로 들어가 내 책상 아래에서 잘 때도 있었다. 내게 섭섭한 날은 딸 방으로 들어가 침대 아래에서 자기도 했다.


그런데 바니가 간 뒤로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둘러보다가 "아, 바니가 없지." 하고는 도로 잔다. 한번 눈뜨면 그래도 발딱 일어나곤 했는데, 이젠 게을러지나보다. 한밤중에 소변이 마려워 일어날 때도 바니를 찾아 꼭 소변을 짜주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이 내 볼일만 보면 되는데, 그럴 때마다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밖에 나가 누군가를 만날 때 두세 시간이 지나면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바니가 소변을 봐야 할 시간이 돼가기 때문에 대화나 일을 마무리하려고 서두는 버릇이 있었다. 두세 시간 이후부터 빨라지던 내 말투에 내가 놀라 다시 늦춘다. "그래, 이대로 하루 종일 머문들 누가 날 기다리랴." 이런 생각이 들면서 허무해진다. 갑자기 자유를 얻은 종신형 죄수같은 느낌이랄까. 딸의 귀가가 늦어지면 문자 하나 보내는 게 아직 남아 있는 낙이라고나 할까.


잠자리에 들 때에도 바니 소변부터 짜주고, 바니 잠자리를 봐주고, 바니 물그릇을 새로 채워준 다음에 잘 수 있었는데, 지금은 졸리면 털퍼덕 누워 버리면 그만이다. 이 상황이 낯설다. 그나마 딸이 텔레비전 앞에 버티고 앉아 잠을 자지 않으면 소리쳐 제 방으로 들여보내는 게 작은 즐거움이다.


일할 때 종종 내 발끝에 걸려야 할 바니가 없다. 역시 허전하다. 바니는 내게 붙은 신체의 일부같았는데 갑자기 잘려나간 듯한 상실감이 느껴진다.


바니는 지금 분골이 되어 벽걸이용 불상과 함께 내 책장에 매달려 있다.

바니 물건을 정리하니 두 박스 정도 나온다. 각종 사료, 과자, 고기 등은 다른 집에 챙겨다 주었다.

내 마음이 진정되어야만 제 엄마나 할머니, 혹은 리키가 있는 곳에 뿌려줄 수 있을 것같다.

아는 불모에게 바니 분골을 싸서 보낼 지장보살도를 한 장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아직 바니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