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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

나쁜 글 습관

<주로 신문 글에 대해>

 
신문기자가 되면 자신의 기사를 좋은 지면에 싣고 싶어 어떻게든 튀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그러자니 거짓말도 하고, 과장도 하고, 낚시질도 한다. 한 달 전 신문기사를 읽어보면 그야말로 가관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다. 특히 스포츠 경기 이전에 나오는 기사 좀 보라구. 읽다보면 미칠 지경이지. 월드컵 때 기사 다시 읽어보면 내 말이 실감날 거다.
 
방송기자도 어떻게든 해서 시청자의 시선을 끌어보려 한다. 목소리를 괴기하게 내본다든가, 어떻게든 볼륨을 올려 시끄럽게 해본다든가, 억양을 특이하게 해서 대체 뭐야 하는 반응이라도 얻으려 한다.
방송기자의 어투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비걸기로 하고, 오늘은 글로 된 기사만 갖고 말한다.

아래에 나오는 어휘를 자주 쓰는 기자는 신입사원이거나 경력이 있어도 별로 실력이 없는 기자다.
 
- 극적
툭하면 극적으로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야 뉴스인 줄 안다. 노사 문제가 대부분 이런 식으로 보도된다.
 
- 반전
실제로 반전이 잘 안됐어도 그냥 반전이라고 한다. 스포츠 경기에 자주 나오는데, 반전 없는 게임이 있는가.
 
- 급물살
급물살이라고 한다. 주로 경찰이나 검찰 보도에 나오는 말인데, 그 사람들은 맨날 하는 일인데 기자 눈에만 급물살로 보인다.
 
- 수사에 총력을 모으다 /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어떻게 모으는 게 총력인지 궁금하다. 수사관이 수사하는 게 일상이련만 총력이 따로 있고, 놀면서 하는 게 따로 있는지.
 
- '~만'은 요 아래에서 썼으니 생략.
- 직격탄
직격탄 날아가는 거 구경하지도 못했을 거면서. 아, 그리고 직격탄 아닌 게 어디 있나? 쏘아 맞으면 다 직격탄이지. 수학적으로 말해서 포물선 안그리는 포탄이 어디 있어.
 
- 폭락, 폭등

 

'폭' 자는 기자들이 쓰고 싶어 안달하는 한자지.

주식 관련 뉴스의 절반은 폭락 아니면 폭등이지. 그냥 올랐다, 내렸다 하면 안되니?

 

 

 
- 전격
이 세상에 전격 아닌 일이 어디 있고, 전격인 일이 어디 있어. 경찰들은 출동할 때마다 전격 투입된다.
 
- 상투어
스포츠 선수들을 거론할 때마다 이상한 상투어가 붙는다. ‘축구천재’ 박주영, ‘수퍼땅콩’ 김미현, ‘코리안 특급’ 박찬호, 이런 식이다. 이런 짓 좀 안했으면 좋겠다.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기사라고 쓰면서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번 바꿔 주든가. 자존심도 없나, 왜 남이 붙인 수식어를 무단으로 갖다 쓰는지 모르겠다. 무슨 국민배우, 국민여동생, 멋대로들 붙이는데 한 기자가 귀엽게 쓰는 것으로 끝냈으면 좋겠다. 다들 따라 쓰지 말고. 보도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지 작문하는 게 아니다.
 
- 제 눈만 눈인 줄 안다
몇 년 전 일산에 러브호텔이 많다고 대서특필된 적이 있다. 하지만 일산보다 러브호텔이 많은 도시는 수없이 많다. 경기도에도 많다. 그런데 왜 일산만 문제가 돼서 학부모들이 호텔앞에 가 시위하고, 여기저기 보도됐을까. 이유는 기자들이 거기 많이 살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여의도나 광화문으로 나가기가 쉽거든.
전에 기자들이 시내버스 타고 다닐 때는 시내버스 기사가 많았는데, 자가용 타고 다니면서는 자동차 얘기가 더 많이 나온다. 독자의 눈높이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제 눈높이로 기사를 쓰기 때문이다. 기자가 왜 자꾸 자기 주장을 하나, 보도를 해야지. 우리 기자들은 지들 개인 목소리가 너무 커. 침소봉대, 아전인수, 우격다짐...

- 쓰다보니 한이 없어 여기서 그만해야겠다. 더구나 요즘은 인터넷신문이 많이 등장하면서 기본이 안된 글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