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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

한자 모르고 쓰는 우리말은 암호문?

내가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 한자어 1000가지>를 쓴 것은 한자가 우리말의 기본 바탕에 깔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자 교육을 시키지 않다보니 실제 우리말에 담긴 의미를 50% 이하로만 서로 주고받기 때문이었다. 남은 50%는 그냥 군더더기로 쓰레기나 먼지처럼 따라다닐 뿐이다. 아래에 쓴 <적신월사> 문제만 해도 그렇다. 내 나이에 이른 사람이라면 적신월사라고 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젊은 사람들일수록 이 의미를 잘 모른다. 社만 해도 회사인 줄로만 알지 집단이나 조직 등을 의미하는 줄 잘 모른다. 더구나 신월이 초승달이면 만월, 삭월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난 기왕에 한자가 우리말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으니 한자 교육을 제대로 해서 떳떳이 쓰자는 국한혼용론자가 아니다. 난 한글전용론자다. 하지만 한글전용론자들의 생각에는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왜냐하면 이들은 한자어라도 무조건 한글로만 적으면 한글전용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자어를 소리나는대로 한글로만 적으면 그때부터는 간첩들이 가지고 다니는 난수표나 암호문과 다를 바가 없다. 대충 추정해서 대충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 스승 서정주 시인(그분의 공과를 논하지 말고 액면 그대로 들어주시라)께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한문 공부를 하라고 강조하셨다. 나는 대학원에 다닐 때 연구조교를 했기 때문에 서정주, 구상, 김동리 같은 노스승들을 직접 모시고 다닐 일이 많았다. 식사를 하면서, 차에서 졸음을 쫓으면서 한두 마디 던지신 말씀들이 모두 금과옥조였다. 특히 서정주 시인의 거듭된 지시로 나는 한문 공부를 열심히 하여 고전을 읽을 수 있을 만한 실력을 갖추었다. 그런데 한문을 공부하면 할수록 한문은 한문일뿐 우리 글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한문을 조금 안다고 쓰지도 않는 한자어를 글에다 잔뜩 박아놓는 취미가 아니라서 난 그런 짓은 안한다. 한문은 엄연히 외국글이고, 우리의 과거 역사가 그 외국글로 적혀 있어 어쩔 수없이 익혀야 할 뿐이다. 요즘 영어 모르면 내가 좋아하는 천문이나 뇌과학 관련 기사를 읽을 수없어 꾹 참고 해야 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외국어와 한국어를 구분하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냥 우리글을 쓰면서 거기다 영어 박아넣고, 한자어 박아넣고, 경쟁적으로 그러다 보면 잘난 척은 할 수 있어도 수십 년만 지나도 무슨 글인지 읽어낼 독자가 별로 없다. 특히 신문기사가 심한데, 그래봤자 지금 우리가 수십 년 전의 신문기사를 읽는 것처럼 우습게 될 것이다.
 
몽골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힘든 게 뭐냐 하면, 한국인들 이름을 외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단지 몽골인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그러하다. 왜냐하면 아무 뜻도 없이 무현, 명박, 재오, 해찬, 대중, 영삼 이런 식이니 말이다. 이건  암호지 사물을 쉽게 지칭하기 위해 부르는 이름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개나리, 소나무, 무지개, 구름, 바람...이 얼마나 단순하고 실제와 이름이 잘 부합하는가. 중국인들은 한자로 뜻까지 새기기 때문에 막연히 음만 차용하는 우리하고는 많이 다른다. 일본도 그렇다. 단지 우리나라만 한자 음을 써 사람 이름을 삼는다. 몽골 같은 경우는 아침햇살, 난로받침돌, 촛불 등 저희들 일상생활에서 이름을 따 쓰다보니 한번만 들어도 잘 기억이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은 명함을 받아 단단히 지니고 있지 않으면 이름을 기억하기도 힘들다. 나 역시 가장 힘든 게 사람들 이름 외우는 건데, 명함이 없으면 정말 힘들다. 내 이름만 해도 한자가 서로 다르건만 인명록이나 전화번호부 같은데에 한글로 나열되는 걸 보면 한이 없다. 한글 이름이 같으면 그냥 같은 거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하는 수없이 <푸른태양>이라는 접두사 비슷한 호를 달고 있는 이유가 이때문이다.
 
나는 웬만하면 한자어를 풀어쓰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죽자고 한자어를 쓰면서 괄호 안에 한자를 적지도 않는 이들이 더러 있다. 현학을 자랑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참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다가는 백년 뒤 그런 글은 독자들이 하나도 읽지 못한다. 스포츠 기사에 3연패니 5연패니 하고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내리 졌다는 건지 내리 이겼다는 건지 아무 구분없이 쓰는 게 우리네 실정이다. 눈치껏 이겼구나, 졌구나 그렇게 알 뿐이다. 그걸 구분하느라고 쓸데없이 우리 뇌가 고생한다.
 
그러니 후손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라도 너무 어려운 한자어는 쓰지 말고 꼭 써야 한다면 풀어써야 한다. 그리고 자주 쓰는 말이라도 현대 문화와 동떨어진 말은 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문공부하고 영어공부하는 건 그 언어로 적힌 담긴 지식과 정보를 알고자 함이지 그 언어 자체가 아니다. 그러니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우리말로 하자, 암호문을 주고받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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