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11 (화) 20:06
사회가 다변화되다 보니 승려들의 사회 진출도 많아지고, 따라서 뉴스거리도 자주 만들어낸다. 시위 사진에도 끼어들고, 정당 행사에도 끼어들고, 언론에도 자주 나온다. 요즘 잘 나오는 '장윤'도 그렇다. 그런데 '장윤'을 어떻게 불러야 하나.
기독교의 목사, 천주교의 신부와 수녀, 원불교의 교무는 표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불교는 '님' 자가 붙는 바람에 언론에서 다루기가 아주 까다롭다. '스님'이란 용어가 승려에 대한 존칭(師님에서 온 말이라고 함)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보도문에 존칭을 쓰지 않는 언론으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신문사에서는 이름 뒤에 '승려'라고도 한다. 뭐, 괜찮기는 하지만 실제로 쓰지 않는 말이라서 어색하다.
어색해도 쓰긴 써야겠지만, 그보다는 비구와 비구니를 썼으면 좋겠다. '신정아 사건을 폭로한 장윤 비구는....', '천성산 터널 반대하는 지율 비구니는...' 식으로 쓰면 조금 낫다. 실제로 비구계니 비구니계 등 불가에서 많이 쓰기 때문이다. 승려는 사전적인 용어라서 비구와 비구니만큼 쓰이질 않는다. 불가에서는 '우리 승려들은...'보다는 '우리 비구들은...'이라고 한다. 그러니 존칭은 '스님'이라고 계속 쓰고 표기는 붓다 이래 수천년을 써온 '비구, 비구니'를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 덧붙임. 뭐, 조계종 총무원장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도 않고 석사, 박사를 땄다거나 능인선원 주지가 서울대 나왔다고 거짓말했다고 해서 '스님' 호칭을 쓰지 말자는 말은 아니니 오해 없기 바란다. 이런 승려들이 있는가 하면 정말 붓다의 참 가르침을 깨우치려고 노심초사하는 눈밝은 수좌들도 부지기수라는 걸 난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훌륭한 스님들은 안국동 거리에는 잘 안온다는 거다. 지방 큰 절 주지라면서 맨날 안국동 찻집이나 여관 등지를 전전하며 종교 정치하는 승려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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