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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가던 길 멈추고 2013-4

통곡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고향 아산에서 달려온 하인으로부터 받은 서신에 '痛哭' 두 자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아들 이면이 왜군과 싸우다 죽었다는 부고였다.

 

최근 <소설 이순신>을 다듬어 재출간하면서 이 부분에서 매우 가슴이 아팠는데, 내게도 통곡 두 자 중 痛이 찾아왔다. 그러잖아도 연로하신 어머니 때문에 매일매일 걱정인데, 한 달 전에는 4촌동생이 암으로 가버리더니 지난 일요일 저녁에는 내 6촌형이 기도가 막혀 숨을 못쉬다가 순천향병원에 가서야 겨우 심장이 뛰었다고 한다.

떡을 드시다가 갑자기 기도폐색이 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현재 상황은 삼성 이건희 회장과 비슷하다. 저온치료를 했고, 오늘 수면제 투여를 중지했는데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내가 통을 느끼는 것은, 이 형 때문에 중학교를 다녔기 때문이다. 집안이 가난해서 중학교 다닐 처지가 되지 못하던 나를 이 형이 데려다가 밥 먹여주고 용돈 줘가며 가르쳤다. 형이 마침 중학교 물리, 화학 교사였기 때문에 아침이면 형 출근할 때 같이 등교하곤 했다. 다락에는 형이 공주사대 다닐 때 공부하던 물리, 화학, 수학 등의 책이 많았는데 중1이던 나는 그때 그 책을 두루 읽으면서 지냈다. 읽을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형 대학교재를 늘어놓고 읽는 재미가 있었다. 2층에서 나하고 사시던 당숙과 당숙모는 내게 세상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당숙이 그뒤 80여 세 넘은 시기에 예산에서 임종을 앞두고 있었는데 나더러 "재운아,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니? 넌 공부 많이 해서 알겠지?" 하고 물으셨다. 겨우 대학 다닐 때였는데, 그런 엄청난 질문 앞에서 나는 태연하게도 "하늘 가면 더 재미있고, 더 신기한 일이 많대요. 즐겁게 가세요."하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형이 올해 80이다. 그 사이 간이 안좋아 수술도 하고, 신장투석을 하면서 지내셨다. 그럭저럭 견딜만하시다더니 일요일 저녁 떡을 드시다가 변을 당하신 것이다.

 

현재 인공호흡기를 달아서 신체는 이상이 없는 상태다. 다만 뇌손상이 심한 것으로 나오고 있다. 경련도 있었다는 걸 보니 뇌세포가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형수는 인공호흡기를 어서 떼서 편하게 보내라고 아우성이시라는데, 큰조카의 물음에 나는 반대했다. 뇌는 특별한 장기라서 종종 기적이 일어나곤 하는데,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겨우 3일 지났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존엄사 관련 법률을 뒤져보니 아직도 존엄사 법은 없다. 인공호흡기를 처음부터 안달았으면 모르되 일단 단 뒤에는 누구도 떼지 못한다. 의사가 만일 호흡기를 떼주면 살인죄고, 가족들이 호흡기를 제거하는 걸 방치하면 살인방조죄가 된다. 병원에서는 절대로 안된다.

 

어째야 하는지, 형수는 통곡하고, 아이들은 몸부림이다. 50넘은 조카들이지만 내겐 어린애들로 보인다.

한 개라도 지혜가 있는 어른이 믿음직한 지침을 줘야 하는데 나 역시 뭘 어째야 할지 모른다.

일단 일주일은 지켜보자고 했다. 이건희 회장 얘기도 하면서, 같은 경우이니 거기도 기적을 바라고 우리도 기적을 바랄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형이 어떤 상황인지 의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해가 되면 솔루션도 나오리라고 믿는다. 한편 형과 조카들이 믿는 하나님이 기적을 행사하실 것을 기대한다. 

- 형은 9월 3일 오후 6시 45분에 장기부전으로 사망했다. 위암, 당뇨, 신장투석 등 여러 가지 합병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했다. 뇌 촬영 결과 산소 부족으로 죽은 부분이 많아 회복 가능성이 1% 이내라는 진단을 받았다. 사흘 동안 매일 내려갔다 오기를 반복하였는데, 오늘 하얀 유골로 모시며 영결했다.  내가 저녁을 못먹고 점심을 고구마로 먹는 집에 태어나 중학교도 못다닐 걸 이 형이 데려다 가르쳤듯이 하늘나라에 먼저 가서 이 아우의 길을 미리 닦아주시리라 믿는다. 은혜를 생각하니 더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