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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사도세자, 나는 그들의 비밀을

사도세자, 나는 그들의 비밀을 알고 있다

 

- <사도세자, 나는 그들의 비밀을 알고 있다> 표지 디자인. 아래 띠지 공간이 더 있다.

 

추석 연휴 중에 3번 교정을 보아 방금 전 마쳤다.

너무 빨리 쓴 작품이라 읽다 보니 아쉬운 부분이 많아 고치는시간이 더 걸렸다.

쇄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수정을 하는 편이라 앞으로 얼마나 더 고칠지 나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책이있는마을> 강영길 사장의 청탁으로 쓴 것이다. 내가 쓰고 싶어 쓰는 소설이 있고, 출판사가 원해서 쓰는 소설이 있다.

 

집필 기간은 약 한 달 반 정도였다. 자료 읽기, 연표 작업은 별도다. 

역사소설가로서 이 시대 역사는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사도세자를 다룬다는 건 굉장히 골치 아프다. 1993년에 <왕의 눈물(현문미디어)>을 썼는데 여기서 정조를 다루었다. 그때는 정조의 개혁 사상에 초점을 맞춰 연함 박지원 등 연암결사들과 정조 이산이 펼쳐나가는 이야기를 썼다. 그러니까 <왕의 눈물>에 나오는 왕은 정조다.

 

이 작품을 보고 강 사장이 사도세자를 초점으로 맞춘 소설을 써달라고 한 것인데, 사실 사도세자를 쓰기란 굉장히 어렵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동인 서인이 생긴 선조 이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또 서인이 집권한 인조반정도 자세히 알아야 한다.또 조선 후기의 진짜 큰 인물 송시열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송시열은 정도전이 그리던 신권 국가를 완성한 분이라고 볼 수 있다. 주자학에 관한 한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으니 정도전이 지향하던 바다. 하지만 송시열 자신은 정도전을 호칭할 때 항상 <간신 정도전>이라고 하였다. 아마도 고려 왕조를 엎고 조선을 개창한 것 때문에 그랬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점에서 송시열도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는 왕을 찍어누르는 서인, 그것도 노론의 영수로서 조선이 패망하는 길을 닦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너무 오랜 시기를 다뤄야 하고, 등장하는 왕도 인조, 효종, 헌종, 숙종, 경종, 영조, 정조까지 무려 7명이나 되기 때문에 처음 플롯을 구상할 때 애를 먹었다. 왕후, 후궁도 너무 많다. 또 동인 서인으로 출발한 정당이 자꾸만 새끼를 쳐서 나도 헷갈릴 정도다. 정조 때 가면 시파 벽파까지 나오니 국사 공부하는 분들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몇 명의 인물이 죽음에 앞서 지나간 자기 얘기를 하는 것으로 꾀를 냈다. 즉 인조의 비인 자의대비는 궁녀 장옥정에게 유언하고, 장옥정은 아들 경종 이윤에게 유언하고, 경종의 비 선의왕후는 두 상궁에게 유언하고, 사도세자는 아들 이산에게 유언하고, 정조 이산은 김조순에게 유언하는 것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렇게 하니까 플롯이 비교적 단순해지고, 이야기도 복잡하지 않고 제대로 잡혔다.

 

또 후손들이 두 눈 크게 뜨고 있는 상황에서 예민한 역사 문제를 다뤄야 하기 때문에 매우 부담스럽기도 했다. 지금도 이 시대 역사를 두고 후손들끼리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고 한다. 학자들 간에 논쟁도 많다. 남인 출신과 노론 출신은 서로 말도 안할 정도다. 그러나 나는 당시 치열하게 싸운 세력이 아닌 소론 온건파 집안 출신이라서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다룰 수 있었다. 원래 우리 집안은 동인->북인->소북이었으나 인조반정에 참여한 뒤로 서인이 되었다. 당을 바꾼 것이다. 그런데 송시열 등 강경파가 주도하는 정국에서 합리적이고 온건한 방향을 제시하던 젊은 학자들이 소론을 구성하면서 송시열 등의 기득권 세력은 저절로 노론이 되었다. 그때 우리 선조들은 소론을 택했다. 그런데 소론도 경종 시절에 집권하자마자 노론을 너무 탄압하여 문제가 되었다. 이때 우리 선조들은 온건 노선을 주장하여 여기서도 온건파로 따로 갈려나왔다. 덕분에 우리 집안에서는 사사받거나 목이 잘린 분은 안나왔다. 노론 중에서도 벽파, 소론 중에서도 강경파가 굉장히 많이 죽었다.

 

이 소설을 쓰면서 다시 생각한 것은, 현실 정치도 이 시대 정치 수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누리당 일각이 저지르는 행태를 보면 노론 벽파들이 하던 짓과 다름없고, 야당 일각이 저지르는 걸 보면 소론이 집권한 뒤 저지른 짓과 거의 다름없다. 정치에는 선악이 없다. 어느 놈이고 집권하면 그놈이 기득권이 된다. 정치 신인도, 착한 정치인도, 야당 인사도 권력과 세월 앞에서는 저절로 수구세력이 돼가는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결국 인간은 믿을 수 없는 정치 동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다.

 

이 소설은 15일에 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