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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사도세자, 나는 그들의 비밀을

머리말 / 이소설을 읽기 전에

 

길들여진 역사를 찢어버리고 싶었다

 

 

 

 

- 사도세자가 지녔던 휘지. 일종의 세자 대리청정권을 행사하는 부절이다.

이 휘지를 보이면 군사나 관리들을 부릴 수 있었다.

음각된 글자는 두루 통하라는 의미의 通 초서체다. 재질은 상아다.


1735년 5월, 백일이 막 지난 아기세자가 저승전으로 들어온다.
아기세자를 모시는 저승전은 노론과 영조에 맞서 투쟁하다 자살한 경종 비 선의왕후의 한이 서린 곳. 경종과 선의왕후를 모시던 상궁들이 아기세자의 훈육을 맡고, 하필이면 세자는 장희빈이 자결한 취선당에서 지은 음식을 먹고 자란다.

 


이 저승전에서 철저히 소론의 시각으로 학습된 세자가 노론 비빈들을 흘겨보고 노론 대신들을 노려보자 국왕 영조는 급히 수습책을 내놓는다. 그제야 한 상궁, 이 상궁이 세자를 이상하게 길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두 상궁을 참살한다.

세자는 늙은 왕을 대신해 대리 청정에 나선다. 그러면서 노론이 아닌 백성을 위해 대리 청정의 권능을 행사한다. 노론 대신들을 무시하고 깔보고 버러지 보듯이 하대했다. 그러면서 백성을 따뜻이 위로하였다. 행차 때마다 구경 오는 백성들을 쫓지 말라 하고, 민폐를 끼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백성들이 세자에게 환호하자 노론들은 경악했다. 이 세자가 왕이 되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그들은 온몸으로 느꼈다. 이들은 창덕궁으로 달려가 그들의 꼭두각시 왕 영조를 협박했다. 왕과 세자와 손자들까지 죽을 수 있다는 시뻘건 앞날에 대해 설명했다.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대사간, 대사헌이 모두 나섰다. 왕후 일족과 세자빈 일족도 거들었다.

노론의 꼭두각시로 평생을 살아온 영조 이금은 불안했다. 그는 비겁한 선택을 한다. 세자를 죽여 손자 이산을 살리기로 한다. 그래야 왕실이 산다고 그는 계산했다. 영조는 세손이던 훗날 정조 이산에게 비밀히 전한 <금등비서>를 통해 노론 대신들의 협박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으며, 세손을 살리기 위해 세자를 자진케 했다고 고백하고, 당시 왕을 협박한 대신들의 명단을 일일이 적어놓는다.

 

부왕으로부터 자결 명령을 받은 세자는 노론 대신들에게 굴복한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들 산에게 왕실을 살리라고 유언한 뒤 기꺼이 뒤주에 갇혀 죽는다.

이제 열한 살 난 세손 이산은 노론 벽파에 혼자 맞서야 한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는 남편인 세자가 미쳤다고 말하며, 외할아버지 홍봉한은 사위인 세자가 포악하다고 말하고, 할바마마 영조는 아들인 세자가 불효하다고 말하고, 노론 대신들은 세손은 정치를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이 혼탁악세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사도세자를 죽인 자들이 쓴 기록은 <인현왕후전> <사씨남정기> <천의소감> <한중록> <숙종실록 수정본> <경종실록 수정본> <단암만록> 등 수두룩하다. 특히 교과서에도 버젓이 실린 <인현왕후전>과 <한중록>은 장희빈이 권력에 눈먼 요녀이며, 사도세자는 미쳐 날뛰다 죽은 정신병자라고 우긴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이산은 수많은 살해 위기를 홀로 헤쳐 나가야 했으며, 살아남기 위해 노론 영수 심환지에게 굴복하고 그들의 정신적 영수 송시열에게 <송자宋子>라는 과분한 칭호를 올려 아첨했다.

 

저자는 당시 명분을 중시한 소론 온건파인 함평이씨 함성군파 후손으로서, 사도세자에 얽힌 여러 사건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비교적 충실한 연표 작업이 이를 증명하리라. 내가 만일 인조 이래 100년 이상 집권한 노론 벽파나, 또는 그들에게 살육당한 소론 강경파 혹은 남인의 후손이었다면 내 시각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조선 후기 역사를 연구하는 사학계는, 내 눈에는 지금도 당쟁 중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 소설이 다룬 시대에 관한 논저, 드라마, 영화, 서적 등에서 노론 벽파의 시각이 90% 이상 지배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나는 길들여진 역사를 과감히 찢어버리고 그들이 감춘 진실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소론 온건파 후손인 나의 책무다.

저자 이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