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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

중국 지명 인명 표기에 대한 내 생각

2007/10/25 (목) 12:11

 

어제 중국에서 달탐사 로켓을 쏘아올렸다는데 신문과 방송에서 이 로켓을 '청어'라고들 표기하고 있다.

이런 뉴스를 듣고 있자면 참 답답하다. 우리나라 어문 정책이 본디 원칙도 없고 생각도 없는 건 알고 있지만, 아무 생각조차 없다는 사실이 더 놀랄만하다.
달에 산다는 상상의 선녀 상아(嫦娥)를 이렇게 표현하는데, 어려서부터 상아로 배우고 자란 우리 세대에게 청어란 표기는 참으로 난감하다.
물론 내가 불편하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평성으로 청어라고 부른들 중국인들이 알아들을 것도 아니고, 중국의 인명이나 지명 모두 우리식 평성 발음으로는 그들과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번호를 적어가며 문제를 따져보자.
 
1. 먼저 우리땅을 표기하는데도 중국어로 하는 건 역사인식이 모자라서 그렇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연길, 길림, 흑룡강, 요하, 요동, 심양 등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발음대로 해야 한다. 우리 고토 지명을 우리 마음대로 부르지 못하는 건 문제다. 그런데 언론에서 이미 길림을 지린으로, 연변을 옌볜으로, 연길을 옌지로 부르고 있다. 이건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불러주는 짓하고 다를 바가 없다.
 
2. 상아 같은 전설 속의 인물도 중국발음으로 해야 한다면 우리 문화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다른 개념들은 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용, 주작, 반고, 주나라, 한나라, 송나라, 당나라, 측천무후....이 모든 걸 어떻게 하겠다는 원칙이 없다. 이미 김용옥 같은 이들은 공자를 꽁츠라고 하고, 노자를 라오츠라고 한다지만, 이렇게 되면 혼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조조, 유비, 손권도 발음이 달라져야 하고, 태산이 높다 하되란 시도 바꿔야 한다. 황하니 장강이니 하는 말도 못쓴다.
 
또 우리말 중에서 중국어를 그대로 옮겨쓰는 건 오죽 많은가. 너무 많아 다 열거할 수도 없다. 주역이란 책 이름도 바꿔야 하고, 논어, 맹자도 바꿔야 하고, 제자백가란 용어도 다 바꿔야 하고, 할 일이 너무 많다. 누가 대못을 친다면 괜히 우리나라만 문화의 단절을 겪게 된다. 
중국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우리 문제다. 우리 편한 쪽으로 생각해야 한다.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러든저러든 아무 관련이 없고, 이익도 손해도 없다. 그렇다면 창허라고 아무 생각없이 떠드는 저들은 누굴 위해 저런 짓을 하는가.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어쩌면 사자성어도 중국식으로 발음해야 될지도 모른다.
 
3. 난 외국어로 대할 중국어와 우리 말로 대할 한자어가 다르다고 본다. 청어를 상아라고 표기해서 무슨 잘못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한자어는 이미 우리 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글에도 우리 한자어가 많이 들어가 있다. 이건 중국말이 아니라 우리말이다. 지금도 공무원들이나 학자들이 새로운 말을 만들 때는 순수한 우리말로 만들지 않고 한자어를 갖다가 억지로 붙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말을 지킬 것이며, 우리 정신을 말에 담아낸다고 할 수 있겠는가.
 
4. 우리의 한자어 발음에 관해 연구한 적이 있다. 난 우리 한자어 발음이 왜 중국하고 다른지 고민하고 학자들에게 수없이 물어봤는데 아는 놈이 없었다. 세종대왕도 훈민정음을 만들면서 이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유는 몰랐던 것같다. 몇년 전 나는 중국 학술서 중에서 중국 고대어 발음에 관한 저술을 구했는데, 이 책을 보고나서 우리 한자어 발음과 중국 발음이 달라진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시간많고 여유많은 학자들이 밝힐 일이지만 우리의 한자어 발음은 삼국시대로 고정되어 있다. 이때는 우리나라 발음과 중국 현지 발음이 같았다. 다만 사성 문제가 어땠는지 나는 거기까진 연구하지 못했는데, 표기상 발음은 양국이 같았다. 그것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달라진 것뿐이다. 특히 발음이 달라진 것은 우리가 아니라 중국이다. 우리는 한자어가 생활어가 아니기 때문에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중국인들은 생활어로 쓰다보니 발음이 크게 변했고, 지역별 변화도 심했다. 이런 현상은 우리 고구려어나 신라어가 일본어 속에 원형 그대로 살아 있는 것과 같다. 된장을 가리키는 일본어 미소가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진 고구려어인 것처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 나라의 어문 정책은 말 몇 마디나 글 몇 줄로 주장할 만큼 단순하지 않다. 현대 인물의 경우 후진타오로 부를 것이냐, 호금도로 부를 것이냐 하는 문제에서는 나도 후진타오가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명은 또 달라진다. 그러므로 매우 복잡해진다. 그럴수록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야 한다. 세금으로 먹고사는 일부 공무원들 몇몇이 만지작거릴 일이 아니다. 다른 나라 사례도 연구하고, 우리 사정도 살펴야 한다. 그러니 인문학을 무시하네 어쩌네 하면서 분개만 하지말고 어문학자들이 더욱 분발하여 본업에 충실하기를 촉구한다. 인문학 소홀히 하는 문제로 말하자면, 우리 소설가들은 소설이 안팔려 먹고살기도 힘들다. 남 핑계대는 놈이 가장 어리석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서 스스로 돌파구를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소설가들은 외국 소설들어온다고 무슨 쿼터 달라고 한 적 없고, 책 안팔린다고 광화문 거리에 나가 시위한 적이 없다. 우린 어차피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각오가 돼 있다. 인문학자들 중에서는 그간 교수입네, 학자입네 거들먹거리면서 꼬박꼬박 월급받으며 세월아 네월아 하다가 자리가 줄어들고, 인기가 시들해지니 이제야 겁이 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모양인데 그래서는 안된다. 우리 소설가는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저 독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보내주는 밥(인세)을 먹고 살아왔을 뿐이다. 안주면 굶으면서 지내는 소설가도 있고, 정 안되면 직업을 찾아 이직하는 소설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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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1월 12일자 기사
"키안(Quian)이라 불리는 이 강은 세상에서 제일 크다. 1만5000척의 선박이 일시에 항해하는 것을 봤다. 16개 지방을 관통하며 주변엔 200개 이상의 도시가 있다."
13세기 후반에 중국을 17년 동안 여행한 마르코 폴로는 창장(長江)을 이렇게 묘사했다.
-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이 글에서 필자는 장강을 창장이라고 표현한다. 이게 문제다. 그럼 장강의 장을 창이라고 하는 거야 모르겠지만, 강마저 장이라고 읽는 건 정말 아니다. 중국 전문가가 이럴진대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다. 강을 강이라고 표현못한다면 그건 우리말이 아니다.
그 절정판을 다음 기사에서 보시라. 무슨 일이든 공무원에게 일을 맡기면 꼭 이런 식으로 된다. 그래서 양식있는 국민이 공무원에게 일을 제대로 하라고 시켜야 한다. 조선일보 기사를 그대로 복사해왔다. 읽어보면 화가 날 것이다. 미국인들은 모스코바를 모스코로, 예수를 지저스로, 예루살렘을 제루살렘으로, 파리를 패리스로 부른다. 이에 비하면 우린 우리말도 남의 발음으로 적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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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편지] ■ 조선족 이름 표기
‘朴光石’이 왜 ‘피아오광스’인가?
150년 지킨 이름 인정 못 한다니…
김정룡·한국신화보 기자
 
중국에는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가 있다. 현재 조선족 이름이 할아버지 고향에 와서 이상한 ‘탱자’가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중국 지명과 인명을 표기함에 있어서 중국어발음을 따른다. 이 때문에 조선족이고 밀양 박씨인 ‘박광석(朴光石)’이란 이름을 ‘피아오광스’ 라고 표기한다. 조선족의 중국 신분증은 위에 우리글로 ‘박광석’, 그 아래 한자로 ‘朴光石’이라 적혀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선 ‘박광석’이란 이름을 ‘피아오광스’로 표기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박광석’을 ‘피아오광스’로 표기하는 이유는 ‘박광석’을 조선족이 아닌 ‘중국인’으로 보고, 조선족이 갖고 있는 ‘박광석’이란 자체 고유이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조선족은 15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조선족은 먼 옛날 고국의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이름을 애써 지켜 왔지만, 정작 고국에 와선 그 ‘이름’을 인정받지 못한다니 참 기가 막힌다.
한국은 현재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 이름만 아니라, 한국에 시집 온 조선족들의 이름도 이상하게 표기하고 있다. 조선족이 한국에 시집오면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전까지 한국 호적에 오르게 된다. 이때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李花子는 중국에서 ‘리화자’로 불리고, 한국에선 ‘이화자’라 부른다. 그런데 호적에는 ‘리후아지’로 기재된다.
한국이 조선족 자체 고유이름을 탱자식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우리글, 우리말을 지켜온 조선족에 대한 무시, 나아가 모독이다. 한국인이 진정 조선족을 같은 민족으로 취급한다면 말로만 하지 말고 먼저 조선족이 지켜온 자체 고유이름을 존중하고, 이상하고 엉뚱하게 표기하는 일을 당장 중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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