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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

맛있다

우리말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감각 묘사에서 상당히 부족한 면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중에서 시각, 청각, 촉각은 매우 발달했지만 미각, 후각은 원시적이라고 할 만큼 단순하다.
물론 이런 현상은 우리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시각, 청각, 촉각은 생존에 필수적인 반면 나머지는 생명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적기 때문이다.
(시각의 경우 앞서 거론했던 초록과 파랑을 구분하지 않는 건 오방색이라는 유교 기초 이론에 따라 억지로 형성된 듯하기 때문에 시각 묘사의 활성과는 관련이 없다.)
 
여기서 거론할 '맛있다'야말로 미각 중에서 가장 애매하게 쓰이는 어휘다. 요리를 소개할 때도 '맛있다' '맛없다'로 정리될 뿐 진짜 그 맛이 어떤지 표현을 하지 못한다. 고기도 맛있고, 사과도 맛있고, 콜라도 맛있다고 한다. 분명히 서로 다른 맛인데 다 같이 '맛있다'고 한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이 미각조차 뭐든지 다섯 가지로 규정하려는 유교의 오방색 영향을 받아 쓴맛, 단맛, 신맛, 매운맛, 짠맛 다섯 가지만 있다. 그나마도 식초를 넣고도 맛있다, 고추를 씹어먹으면서도 맛있다고 하니 더 어려워진다. 맛을 표현할 때면 갑자기 이상해져서 '시원하다'는 이상한 표현까지 생겼다. 또 과일마다 '꿀맛같은' 포도, 사과, 배다.
 
그러니 머릿속으로 맛에 대한 표현을 미리 연습해두었다가 다양하게 쓰도록 하는 게 좋겠다.
떫다. 구수하다. 씁쓸하다. 시큼하다. 맹맹하다. 심심하다. 이런 말 말고도 구체적인 음식맛을 써도 좋다. 커피맛, 살구맛, 술맛, 사이다맛 등 실제 사물을 빗대도 좋다.
 
색채를 수천 가지로 나뉘어 각각 이름붙이는 일을 하듯이 미각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런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일단 사용하는 입장에서 미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맛 관련 종사자들이 더 사명감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