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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

양심적 병역 거부?

말은 의식을 담는 도구다. 그래서 어떤 어휘를 쓰느냐에 따라 듣는 이의 반응이 달라진다. 이런 의미에서 브랜드 가치도 생긴다.
여러 해 전부터 양심적 병역 거부란 용어가 뉴스에 등장했다. 양심있는 사람은 병역을 거부하고, 양심없는 사람은 군대를 가는 것같은 묘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양심적 병역 거부란 뉴스를 들어도 사람들이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누가 이 말을 만들어냈는지 따지지 말고 이 말을 쓸 때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이해해야 한다. 즉 양심적으로 생각해서 군대를 못가겠다고 하면 그건 옳다는 말이 된다. 비양심적으로 생각해서 군대를 못가겠다면 그건 범죄가 된다는 의미로 바뀐다. 갑자기 국민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군대 간 사람들이 못난 사람이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 말은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 쪽에서 만들어낸 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언론, 방송은 생각없이 이 말을 받아쓰고 있다. 분명히 틀린 말이다. 그냥 종교 교리에 따른 병역 거부라고 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여호와의 증인 교리에 따른 병역 거부'라고 하면 된다. 그러고나서 복무 대체를 허용하든지 감옥에 보내든지 해야 한다. 사실은 사실대로 밝히고나서 시비를 가려야 한다.
 
요즘 재미난 현상 중의 하나로 '명품'이란 말을 들 수 있다. 이 말은 요몇년 사이에 생겨나서 별 부담감없이 쓰이고 있다. 전에는 '사치품'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호화 사치품'이라고 하면 그대로 단죄가 되는 말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내놓고 명품 자랑을 해도 욕을 덜 먹는다. 그만큼 어떤 어휘를 쓰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다. 언론에서 호화 사치품이란 말이 없어진 것은, 기자들 자신이 이미 호화 사치품을 즐기는 소비세력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손은 안으로 굽는다고 기자들 자신이 자신을 욕하는 기사는 절대로 쓰지 못한다. 70년대 기사를 보면 시내버스 기사가 자주 나오고, 80년대에는 전철 기사가 자주 나오고, 90년대 이후에는 승용차 기사가 자주 나오고,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외제차 기사가 자주 나온다. 기자들 생활이 그렇게 달라졌다는 의미다.
 
이번에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에서도 '선교단'을 '봉사단'이라고 불렀다. 탈레반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정부에서 요청했다고는 하나, 장본인인 교회측에서 보자면 참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봉사단, 봉사단 하는 동안에 국민들의 화가 누그러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말을 들여다보면 보이는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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