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공사 현장을 지나가다보면 해당 관청에서 설치한 안내판을 볼 수 있다. 무슨 확포장이란다.
또 뭘 수리하는 현장에는 개보수라고 적혀 있다.
이 얘기를 왜 하느냐 하면, 얼마 전 국립국어원에서 '놈현스럽다'란 말을 신조어라고 하여 이런 류의 어휘만 모아 새로 생긴 사전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렇다. 잘났든 못났든 일단 나라의 녹을 먹었다 하면 머리가 굳어져서 쓸데없는 짓을 하기 마련인가 보다. 우리말 다듬을 게 얼마나 많고, 또 새로 생기는 말 중에서 잘못된 것을 국립국어원에서 계도하고 바로잡아줘야 할 텐데 그저 어린애들처럼 유행어나 따라다니고 비속어에나 관심을 갖는 듯해서 하는 말이다.
아마 이어령 씨가 고쳐주지 않았으면 우리는 아직 갓길을 노견이라고 쓰고 있을지도 모르고, 일반 시민들이 지적하지 않았으면 I.C.가 나들목인 줄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길을 확장하면 당연히 포장하는 것이다. 높은 산에 임도를 내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므로 포장은 사족이다. 차선 도색도 해야 하지만 확포장도색공사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냥 도로확장공사라고 하면 알아듣기 쉬운 걸 왜 스스로 어려운 한자어를 억지로 끌어다 말을 실타래처럼 뭉쳐 놓기만 하는지 그들의 사유 구조를 이해하기 어렵다. 개보수도 마찬가지다. 개수든 보수든 한 가지만 쓰면 되지 굳이 이렇게 쓸 필요가 있는가. 그럼 거기도 페인트칠하고, 전선 새로 깔고, 설비 공사도 할 텐데 그 말도 더 넣어야 할 것 아닌가. 그냥 보수라고 내걸고 새 부품이 필요하면 새 것으로 갈고, 고치기만 하면 고치고, 닦기만 해도 되면 닦아 주면 된다.
'놈현스럽다'는 노무현대통령이 퇴임하는 순간 없어지는 야유성 표현일 뿐이다. 이건 언어가 아니고 어휘도 아니다. 생존기간이 불과 몇 년에 불과한 비속어 따위를 모아서 무슨 보람이 있고, 학술적 가치가 있다고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지 의심스럽다.
이런 이상한 논리 구조를 가진 공무원들이 무슨 말을 새로 만들어 낼 때는 꼭 어려운 한자어로 만든다. 그럼 한자를 쓸 일이지 왜 한글로만 적어 골치아프게 하는지 모르겠다.
지난 여름에 비가 많이 내리니 '우기철에 낙뢰를 조심하라'는 현수막이 많이 나붙었다. 장마에 벼락을 조심하라고 하면 되지 굳이 우기철이며 낙뢰란 한자어를 쓸 필요가 없다. 또 기나 철이나 같은 뜻이잖는가.
정녕 확포장하고 개보수할 곳은 바로 언어 감각이 떨어지는 국어원이나 일부 공무원들이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면, 남들이 다 그러니까 괜히 튀기 싫어서, 튀면 혼날까봐 소심해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용기를 가져보세요, 공무원님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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