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14대 선조인 효원 할아버지(직계 할아버지인 복원의 큰형)의 7세손 유수(儒秀) 할아버지(수사를 지내셨는데 어느 지역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 집안 선조들은 주로 전라좌수사를 많이 지냈다.)가 따님을 김안근(金安根)에게 시집보냈다. 이 유수의 따님은 아들 둘(우리 족보에는 두 명만 나오는데, 김안근 기록에는 아들이 넷이다. 아직 연유를 모르겠다.)을 낳았는데 병하(炳河), 병연(炳淵)이다. 병연이 바로 '방랑 김삿갓'이다.
김삿갓의 할아버지는 당시 선천부사 김익순이었는데, 이때 유수 할아버지의 따님이 김익순의 아들 김안근에게 시집가 두 아드님을 두신 것이다. 그런데 일가족이 다 선천으로 이사간 지 겨우 서너 달만에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다. 병연의 나이 다섯 살 때다.
<홍경래의 난 / 우리 할아버지 이창운 장군이 주인공인 김동인 소설 <벌번반년> 전문>
이때 김익순은 부지불식간에 홍경래군에 체포되었다가 항복했는데, 나중에 관군이 올라와 홍경래군을 격파한 뒤 적괴에게 항복했다는 이유로 참수되었다. 이때 조정은 김익순이 항복하게 된 연유의 불가피성을 인정하여 가족은 모두 살려주기로 하였는데, 이에 앞서 난리 중에 김안근 일가족은 종을 따라 곡산으로 피신하였다. 그런 중에 남편 김안근은 죽고 함평이씨 아내가 홀로 네 아들을 이끌고 강원도 영월로 들어가 숨어 사셨다. 친정이 잘 살았으니 도움을 청했는지는 모르지만 홀로 아이들을 키워내신 것이다.
그런 중에 김병연이 자라 과거 시험을 보다가 <김익순의 역적 행위를 논하라>는 시제를 받아들고 일필휘지하여 꾸짖은 모양이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과거 시험에 대해 말씀드리니 "그 분이 네 할아버지다." 하며 통곡하셔서 김병연은 이때 큰 충격을 받고 하늘 보기 부끄럽다며 삿갓을 쓴 채 팔도 유랑에 나섰던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집안 이야기를 자세히 알기 어렵다. 특히 김병연은 할아버지가 참수된 분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내게도 같은 사연이 있다.
임진왜란 때 내 14대조 관 할아버지의 아드님 한 분이 각(珏 )이신데, 때마침 경상좌도병마사를 맡고 계셨다. 부산진 첨사 정발이 분투 중에 전사하고 동래성이 함락될 즈음에 경상좌도군 1만 명을 이끌고 동래까지 갔다가 거기서 울산군수 이언함만 남겨두고 소산역으로 물러나 야영을 차렸다. 경상좌수사 박홍은 초기에 달아난 상황이었다. 이때 동래부사 송상현이 최후까지 분투하다가 마침내 장계를 보내놓고 전사를 하는데, 이 장계에 이각 장군의 비겁한 처신을 비판하는 내용이 나온다.
동래성 함락 뒤 이각 병마사는 본영인 울산으로 퇴각했으나 첩에게 무명 1천 필을 딸려 먼저 내보내고, 나중에 새벽을 틈타 그 역시 탈출하여 본영이 무너졌다. 기록에는 그러하다.
그뒤 이각 장군은 임진강 방어 작전에 나타났으나 도원수 김명원이 참수형을 내려 싸워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자진하여 임진강 사수전에 나타났으니 탈영은 아니지만 직무유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그의 휘하 장수들이 결사항전하다 돌아가신 분들이 많은만큼 할아버지도 동래성이나, 아니면 울산 방어전을 펴다 돌아가셨으면 후손된 나의 마음이 한결 편하겠지만 사세가 그러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각 장군의 형인 내 직계 할아버지 관은 당시 예조참의로서 병조좌랑인 아드님 효원을 데리고 선조 임금을 호종 중이었다. 그런데 전쟁이 난 지 한 달도 안된 음력 5월 10일, 이각 장군이 경상도에서 달아난 여러 장수들에 대한 책임을 도맡아 참수되었다는 전갈을 받고 통곡하는 내용이 효원 할아버지의 <호종일기>에 나온다.
- 당초부터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없는 전황이 되어 성을 버리고 피하여 도망하는 장수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삼촌 각이 많은 장수들의 죄를 대신하여 홀로 죄를 받았으니 그 원통함이 한이 없다.
하지만 국가 변란 앞에서 몸을 피한 것 자체가 나는 죄라고 생각한다. 경상좌병사를 맡을 때는 임지에서 싸우다 죽겠다는 각오없이 함부로 인수를 받아서는 안된다. 물론 경상좌수사 박홍 등 무수한 장수와 관리들이 다 달아나 진을 갖출 새가 없다 하지만 부산진 첨사 정발과 동래 부사 송상현의 분투가 있었기 때문에 감히 내 할아버지라고 두둔할 수가 없다. 이런 내용이 내 소설 <당취(지금은 소설 토정비결에 합본)>에 신랄하게 나온다.
당시 경상좌병사 이각 장군이 내 할아버지라는 것도 모르고 그런 행위를 비판하는 글을 썼지만, 지금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내 소설을 고칠 생각은 없다. 이각 장군이 직무유기로 참수되었지만 이관, 이효원 부자가 선조를 호종함에 죽음을 무릅쓰고, 또 다른 조상인 이덕일 장군이 이순신 휘하에서 전공을 세우셨기 때문에 그 일로 우리 집안이 화를 더 입지는 않았다.
이처럼 집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광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오욕도 있기 마련이다. 내 조상이라고 하여 시시비비의 예외가 될 수 없다. 송상현 부사의 후손들에게 특히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 소설 토정비결은 1부와 2부로 되어 있는데, 1부는 1991년작 3권을 두 권으로 두텁게 묶은 것이고,
2부는 당취 5권을 역시 2권으로 두텁게 묶은 것이다. 이각 장군에 대한 비판은 이 소설 4권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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