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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당취 - 조선 중기 비밀결사

월주 스님 영결식 열린 처영문화기념관 얘기를 하자면...

월주 스님 얘기는 앞에 적었으니, 이번에는 처영문화기념관의 주인공 처영 스님 얘기를 해본다.

1998년인가, 경향신문에 소설 토정비결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당취>를 연재했는데, 처영은 임진왜란 때의 여러 영웅 가운데 내가 감동한 위대한 승장이시다.

서산대사로 불리는 휴정 스님께서 강원도의 사명당 유정 스님과 전라도 처영 스님 두 분더러 승군을 일으키라는 격문을 보내, 비로소 승군이 구름같이 일어났다.

이때 김제 금산사 스님 처영이 승군을 모아 바로 전선으로 달려갔다.

권율이 호남군을 이끌고 한양수복하러 진격할 때 처영 스님도 승병 약 2500여 명을 이끌고 참전,독산성 전투, 행주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정유재란 때는 남원성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당시 선조는 처영스님에게 정3품 절충장군에 임명했다.

 

- 소설 당취 머리말

 

조선시대 중기에는 3퍼센트 가량의 양반 사대부가 나머지 97퍼센트의 백성들을 다스렸다. 그 97퍼센트의 맨 밑바닥에 천민이라는 계급이 있었다. 노비, 갖바치, 기생, 중, 백정…. 그 가운데 중은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의 존경을 받던 계급이었다. 하지만 조선이 건국하면서 하루 아침에 천민으로 격하되었다.

중보다는 여진족이나 몽골족 출신이 대부분인 백정이 차라리 나았다. 중은 툭하면 잡혀가 길을 닦고, 성벽을 쌓고, 양반들의 허드렛일을 도와야 했다. 비구니들은 양반의 노리개로 쓰이거나 첩으로 잡혀갔다. 그런 그들이 비밀결사로 당취(黨聚)를 조직한 것은 오로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구도(求道)란 이름으로, 고행(苦行)이란 이름으로 돌리기에는 그들이 겪는 고난이 너무 컸다.

 

땡추라고 버림받던 그 당취가 임진왜란을 맞아 마침내 승군(僧軍)의 근간이 되고, 게릴라전에 앞장서면서 전세는 역전된다. 의병의 수효는 관군의 25퍼센트였다. 그러나 행주대첩을 이끈 권율의 5천 관군 속에 처영이 이끄는 승군 2천 5백 명이 있었고, 이들이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북서쪽을 맡았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이순신의 수군에 1천 5백 명의 승군이 참전했다는 사실 또한 잘 모른다. 평양성 탈환전에 앞장선 휴정 휘하의 승군 5천 명, 조헌이 금산에서 칠백 의병으로 결사전을 벌일 때 그 시각 그 자리에서 함께 결사전을 편 영규 휘하의 8백 승군에 대해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칠백의총은 있어도 8백승군총은 있지 않다. 진주대첩에 신열의 승군이 참전했다는 기록도 깊숙이 숨겨져 있다.

어차피 부모형제와 처자식을 버리고 입산출가한 그들인 만큼 공명(功名)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목숨을 바쳐 그들이 소중히 여기던 승단과 나라를 지켜냈으니 그것으로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임진왜란에서 양반이 아닌 평민, 천민 계층이 똘똘 뭉쳐 국난을 극복했다는 사실만은 중시해야 한다. 이들은 전쟁을 치르면서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원래부터 씨가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민중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들이 일어서면서 조선은 마침내 민족 의식에 눈을 떴다. 그때까지 조선은 이성계 일가의 나라였지 백성들의 나라, 한민족의 나라가 아니었다. 한민족은 임진왜란을 통해 마침내 비전을 갖게 된 것이다.

 

생각할 줄도 모르고, 야망도 없는 것같던 백성들이 어떻게 하여 그런 엄청난 폭발력을 보였을까. 몽골 기마군에 일곱 차례나 맞선, 세계에 그 유례가 없는 저항 정신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한번 싸웠다 하면 최후의 한 명까지 분투하는 임진왜란 중의 수많은 전투, 그 결사전에 임한 노비․기생․중․무당․농민들은 무슨 생각으로 맞섰을까. 자신들을 탄압하고, 착취하고, 부려온 국왕과 사대부들의 나라를 위해 왜 목숨을 버렸을까.

 

거기 주먹을 움켜쥐고 눈을 부릅떠야 할 피같은 이유가 있다. 그들의 머릿속에 혹시 천손(天孫) 민족의 자부심이 가득 차 있던 것은 아닐까. 이곳이 곧 천하의 중심이요, 우리가 우주의 주인이라는 민족사상으로 뭉쳐 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 우리 민족은 원래 강인한 생명력과 뚜렷한 철학으로 간난신고를 물리쳐온 천손(天孫)이다. 저 시베리아에서부터 연해주, 북만주를 말달리면서 웅대한 기상을 뿜어대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수천리 옥토를 가진 저 북방 평원에서 오곡을 심고 가축을 기르면서 신문명을 일궜다. 우리 핏줄을 타고 호호탕탕 흐르는 천년 만년의 기운찬 혈류를 느끼면서 이 소설 <당취>를 읽어주기 바란다.

 

* 경향신문 연재소설 <당취>(왼쪽). 나중에 내용을 5500매로 줄여 소설 토정비결 2부 2권으로 붙여 출간했다(오른쪽). 그래서 지금 나오는 소설 토정비결은 권당 분량이 많아 매우 두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