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토정비결> 제3권 '4. 동천(東天) 암운(暗雲)' 부분이다.
* <소설 토정비결>은 원래 3권으로 발표했는데 1, 2권 2책으로 묶고,
<당취>는 5권으로 발표했는데 역시 3,4권 2책으로 묶어
두 소설을 <소설 토정비결> 속에 1부, 2부로 갈라 넣었다.
풍신수길(豊臣秀吉:도요토미 히데요시).
원래 이름도 성도 없다. 그저 말썽꾸러기 목하(木下;기노시타) 또는 골목대장 우시(羽柴;하시바)라고 불렸다. 자칭 타칭 별명은 잔나비, 1536년 중종 31년 병신생(丙申生)이다.
명고옥(名古屋:나고야)에서 족경(足輕:아시가루. 낮은 직급의 전투원) 출신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뒤 어머니가 야무사(野武士:노부시) 출신의 상이군인과 재혼하자 의부(義父)에게 대들다가 늘 얻어맞았다.
그러자 여덟 살 때 어머니는 수길을 광명사라는 절에 보내 중으로 만들었다. 행동이 거칠어 절에서도 곧 쫓겨났다. 그길로 아예 가출해 버린 수길은 절도, 폭력을 일삼았다. 열다섯 살 무렵에는 고향 장바닥에 나타나 바늘장수를 하며 연명했다. 그러다가 열여덟 살이 되어 직전신장(織田信長:오다 노부나가)의 신발 당번으로 들어가 짚신 삼는 일로 호구를 삼았다.
직전신장은 기마부대 무기를 칼과 창에서 포르투갈제 조총(鳥銃)으로 바꾸어 실전에 나섰다. 그러면서 신장은 연전연승했다. 총포소리에 놀란 적들이 혼비백산하는 사이 성을 함락시키고 적장을 사로잡기를 계속했다. 그렇게 하여 대부분의 성주들이 직전신장에게 항복하여 일본이 거의 통일될 무렵이었다. 풍신수길이란 이름도 이때 선발대로 세운 공 때문에 신장이 지어준 것이다. 훌륭한 부하란 뜻으로 성은 풍신(豊臣), 공적은 수우미양가 중 수(秀)라는 뜻으로 이름을 수길(秀吉)이라고 지었다.
그러던 중 적전신장은 어이없게 적이 아닌 측근에게 살해당했다. 그러자 풍신수길은 권력이 빈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신장의 세 살난 아들 삼법사(三法師:삼보오시)를 관백으로 추대했다. 삼법사를 등에 업은 풍신수길은 정적을 차례로 소탕하여 결국 직전신장의 뒤를 이었다.
종의지의 설명을 들은 선조는 한 차례 호탕하게 웃었다.
“일본에서는 바늘 하나만 팔아서도 먹고살 수 있느냐?”
“바늘 귀 뚫는 기술이 얼마나 어려운데요. 대부분 조선이나 명나라 밀수품입니다.”
“그렇다면 조선에 있는 바늘을 다 갖다 팔아서 너나 부자돼라. 바늘 하나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놈들이 무슨 전쟁을 일으킨단 말이냐.”
“일본 백성은 조선 백성의 두 배나 됩니다.”
“가축은 수천만이어도 소용없는 법이잖느냐.”
종의지는 고민이었다. 풍신수길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도무지 먹혀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진짜 국서를 내놓을 수도 없었다. 그걸 내놓으면 조정 분위기는 금세 돌변해 자신의 목을 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조선도 지키고, 대마도도 사는 길을 찾자니 참말로 힘만 들었다.
얼마 전에는 조선에서 첨지 벼슬을 얻은 귤강련이라는 일본 사람이 동생 귤강광을 보내 윽박지르는 것으로 전쟁 위험을 알려 보았으나 그것도 허사였다. 오히려 조선 조정이 귤강광을 내쫓다시피했다. 그래서 강광은 배를 갈라 자결하고 말았다.
“풍신수길이는 정말 난을 일으킬 것입니다. 스스로 일사(日嗣;히쓰기, 곧 태양의 아들)라고 자호(自號)하고는 방약무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긴, 국서를 보니 본문은 글씨 잘 쓰는 딴놈이 쓴 것같고, 여기 일사 풍신수길이라고 쓴 게 유일한 필적이렷다. 영상, 이것좀 보시오. 이건 글씨가 아니라 젖먹이 그림같소.”
선조는 이산해에게 일본 국서를 보여주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이산해도 좌우상과 판서들에게 국서에 적힌 수결(手決)을 보여주면서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었다.
종의지는 선조가 수길의 침략을 전혀 믿으려 하지 않자 예물로 준비해온 조총(鳥銃)을 내놓았다.
“이거 천둥소리 보다 더 큰 소리가 나는데, 한 번 맞으면 황소도 죽는 철포(鐵砲)랍니다. 수길이 이 총으로 일본을 통일했지요.”
“몇 보나 나가느냐? 화약 넣는 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고?”
“제가 쏴 보았는데 한 50미터나 나가고, 화약을 갈아끼우는데 2분밖에 안걸립니다.”
유성룡이 철포를 받아 요모조모 살펴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 대감, 이리 좀 와보시오.”
유성룡이 철포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자, 선조가 가까이 오라고 불렀다.
- 쉿. 승자총통에 비하면 조총은 무기도 아니야.
유성룡도 선조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들고 있던 조총을 시립중이던 내관들에게 건넸다.
“이 새총(鳥銃) 갖다가 너희들 참새나 잡아라.”
그러고는 이날 종의지의 알현을 종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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