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 문제를 가끔 들여다본다. 특히 언어과정에 대해서는 해마다 보는 편이다. 그때마다 우리 언어교육이 이렇게나 수준이 높은데 왜 말과 글은 비논리적으로 형편없이 쓰는가 궁금해진다. 맞춤법 띄어쓰기가 고양이 발자국이나 개 발자국처럼 개발괴발이어도 쓴 사람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읽는 사람도 불편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소설가인 내가 굳이 우리말 사전을 5권이나 집필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수능 문제를 낼 정도의 국어 교수, 국어 교사가 우리나라에 수만 명이라는데 왜 간단한 기초 사전 하나 없어 내가 굳이 사전을 만들어야 했는지 늘 개운치 않았다. 하긴 퍼센트와 퍼센트포인트를 혼동하는 EBS교재를 쓰고, 가르치고, 배워도 여태 지적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니 대한민국의 집단지능의 수준이 너무나 놀랍다. 눈뜨고도 모르는 교수와 교사가 이렇게 많단 말인가.
이 생명과학 문제를 보면서, 출제교수가 우리 학생들을 <지식폭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좀 안다고, 바빠서 공부 못한 사람보다 조금 더 안다고 남을 지식폭행한 것이나 다름없잖은가. 그래봐야 대한민국 생명과학 교수가 이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어린 고등학생들에게 내미는 그 저의를 모르겠다. 지식폭행이라는 의심 말고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 소설가 중에도 일부러 어려운 한자어를 한글로만 표기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평소에 잘 쓰지도 않는 매우 희귀한 고문 속의 어려운 한자어, 고사성어를 한자 표기 없이 한글로만 쓰는 것이다. 이게 지식폭행이다. 영어 좀 한다고 마구 영어 어휘를 섞어 말하는 얼치기들과 다를 바 없다. 나는 한문원전을 읽는 공부를 따로 했지만 웬만하면 한자어를 우리말로 풀어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기미독립선언문이나 일제 때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불과 50년도 안되어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글을 써서는 안된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내 글에서조차 10년 전, 20년 전 작품을 들춰보면 저자인 내게도 낯선 어휘가 튀어나온다. 판을 바꿔 거듭 고치지만 우리말은 아직도 혼란스러워 결코 손을 뗄 수가 없다.
2014년 대입 수능 <생명과학> 8번 문제를 보자.
나는 바이오코드 개발에 필요한 생명과학, 천문학, 정신과학, 심리학 등을 따로 배웠는데, 솔직히 말해 이 정도까지 깊이 배우지는 못했다. 문제를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이걸 왜 우리 고등학생들이 알아야만 하는 일반상식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생명과학 전공 학생 시험 문제라면 혹 모르겠지만, 이건 그냥 수능시험이다. 국민일반상식이란 뜻이다.
구조유전자, 베타-갈락토시데이스, 억제단백질, 조절유전자, 야생형대장균, 프로모터, 젖당 오페론...이게 지금 수능 문제를 풀기 위해 알아야 할 개념들이다. 학생들은 지금 어줍잖은 출제자 교수의 지식폭행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설명에 동원된 어휘 중 '결실된'이란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고등학생에게 외우라고 시켰는지는 모르지만 이 결실이 結實인지 缺失인지 또 다른 한자어인지 정말 모르겠다. 눈치로야 짐작하겠는데 그래서는 안된다.
이 문제를 풀어보고 싶은 분은 <여기>를 누르기 바란다. 기자와 과학자들이 토론한 결과가 나온다.
난 이런 식의 지식폭력을 휘두르는 교수들을 수능출제위원으로 쓰지 말란 요구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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