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까지 개를 열대여섯 마리를 길렀다.
다 보내고 하반신불수견 하나만 남아 내 곁에서 힘든 노년을 살아내고 있다. 늘 기저귀를 찬 채 생활하고, 소변을 때맞춰 짜줘야 하고, 제 시각에 약을 먹어야만 한다.
내 가슴에 안긴 채 보낸 아이들만도 대여섯이나 된다. 애견인이 아니면 이런 정서를 잘 모를 텐데, 열 마리쯤 하늘로 보내고 나면 세상 일 어지간한 것에는 초연해지는 듯하다.
그러잖아도 싫고 좋음을 분명히 표시하는 내가 하나 둘 기르던 개들을 먼저 보내면서 그런 성격이 더 또렷해진 듯하다.
- 그건 아니다! 틀리다! 싫다! 나는 안하겠다! 그러면 안된다!
이런 식이다.
여기, 주인이 갑자기 쓰러져 응급차에 실려가자 병원까지 뛰어가는 반려견 동영상이 있다. 이 개는 병원까지 달려갔다. 중간에 응급차가 서면 얼른 다가와서 주인이 안전한지 들여다보기도 한다. 감동받은 사람들이 이 개를 병실에 들여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개와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한 바가 없다. '약간 무조건적인 사랑'을 한 셈인 딸에게조차 성질 부리고, 야단치고, 가끔 심한 욕설까지 한다.
내가 기른 개들이 다 그런 건 물론 아니지만 대부분은 주인인 나를 '무조건 사랑'했다. 먹을거리를 더 달라거나 더 사랑해달라고 보챈 적은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고 나를 가끔 배반한 놈은 지금 살아 있는 이 하반신불수견과 그 애비놈 뿐이다. 이 둘은 겁이 많아 주인까지 무는데, 나머지 애들은 결코 그런 적이 없었다.
이 개들의 충성심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잣대로 나를 따져보면, 나는 부모형제와 아내, 애인, 친구, 동료들에게 너무 모질게 굴었던 듯하다. 그래서 가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조건 사랑했더라면 어땠을까?' 자문하는 버릇이 생겼다. 또 지금 내 주변에 있는 그런 사람들을 '무조건 사랑'할 수는 없을까 물어본다.
아직 개를 따라가지 못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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