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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2015년이 청양 푸른양의 해라고?

이 세상은 지혜보다는 무지가 지배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무지가 매우 많다는 사실을 늘 주시해야 한다.

 

해마다 양력 1월 1일이 되면 그해가 흑룡이나 백마니 하는 헛소리들을 많이 하는데, 이건 다 거짓말이다. 그런 건 없다.

 

십간십이지는 태생부터 서로 다르다. 십이지는 아랍에서 만들어져 인도,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그래서 어떤 넋나간 방송은 올해가 청양의 해라면서 '푸른 양'을 찾느라고 헤매기까지 했다. 그래서 티벳 고원에 사는 약간 푸르스름한 털을 지닌 양을 청양이라고 우기는 짓까지 했다. 다 거짓말이다.

 

십간은 아랍이 아닌 중국 황하 유역에서 생겼다. 따라서 십간과 십이지는 형제가 아니라 따로따로 출생한 전혀 다른 문화다.

 

10간은 손가락을 보고 만들어진 숫자 표기용이다. 그래서 한 달은 손가락 열 개를 세번 오므렸다 펴면 되므로 열손가락을 뜻하는 한자 旬을 넣어 3순이라고 하고, 그걸 상순, 중순, 하순이라고 표기한다.

 

십간과 십이지가 만난 것은, 아랍-인도를 거쳐 12지가 들어온 춘추전국시대쯤이 아닌가 여겨진다.

한달은 10간으로 세고(달), 일년은 12지(태양)로 세었는데, 춘추전국시대 주나라에서 이 두 가지를 조합하여 10간X12지=60이라는 조합을 만들어냈다.

이에 앞서 주역의 64괘가 널리 쓰였는데, 달이나 태양과 부합되는 바가 없어 날짜를 기록하는 용도로 쓰이지 못하면서 아마도 10간과 12지를 합쳐 쓰는 60간지 기록법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조선시대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

여기 보면 未의 영역이 자세히 나온다.

즉 황도 105도부터 134도 범위이다.

 

그러므로 춘추전국시대의 60갑자란 순전히 그 해와 달을 다른 해와 다른 달과 구분하기 위해 적은 기호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전국시대 말기에 추연이란 사람이 5행이라는 걸 만들어냈다. 그는 10간과 12지를 억지로 5행 속에 꿰어맞추었는데 이게 음양학의 시초다. 올해를 가리켜 청양(靑羊)이라고 하는 것은, 10간 5행과 12지 오행을 억지로 갖다붙인 말에 불과하다.

 

10간

갑을 병정 무기 경신 임계

木    火    土    金     水

 

12지

인묘 사오 신유 해자 진술축미

木    火    金     水    土

 

이래놓고 5행의 색깔을 정했는데, 합의에 의한 것이 아니고 순전히 추연 마음대로 정한 것이다.

 

木    火    金     水    土

靑    赤    白     黑     黃

 

그러니 을미년인 2015년은 10간의 靑을 따고, 미에서 양을 따 청양이라고 억지로 갖다붙인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乙이 靑이 아니며, 未가 羊이 아니다.

일단 을은 음력으로 2일, 12일, 22일일 뿐이다.

추연이라는 정체 불명의 사람이 한번 실수한 것으로 동양 전체가 다 이 미신의 주술에 빠져 있다. 특히 이로부터 5방색이라는 헛소리까지 하면서 동양에서는 靑을 가리키는 파랑만 있고, 綠을 가리키는 초록은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초록까지 靑이라고 우기는 짓을 서슴치 않는다.

 

- 아래 원 중 왼쪽이 푸른색 綠, 오른쪽이 파란색 靑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두 색깔을 똑같이 푸른색이라고 표기하는 실수를 자주 저지른다.

교통신호등은 푸른색이지만 파란색이라고 말하며, 파란 하늘이지만 푸른 하늘 은하수라고 우긴다.

파란 바다지만 푸른 바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듣는 사람이 가려 들어야지 별 수가 없다.

푸른색과 파란색은 이웃 색깔이라 중간 부분은 표현하기 어렵기는 하다. 푸르스름, 파르스름이 그래서 생겼다.

추연이 좀 덜렁거려 그랬을 뿐 木이 봄이라면 마땅히 靑이 아닌 綠으로 했어야 한다.

 

또 未는 목성이 태양 궤도 중 북극성을 12시로 볼 때 올해에 7시 대에 와 있다는 의미다. 양이니 소니 돼지니 하는 건 외울 때 어렵지 말라고 붙여준 별명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의미 요소는 전혀 없다.

 

또 한 가지.

을미년을 정확히 계산하자면 양력 2월 4일부터 시작된다. 그게 천문학적인 값이다.

사람들이 멋대로 정해놓은 게 1월 1일이다. 1년을 365일로 정한 건 천문학적인 계산이지만 그 시작을 1월 1일로 잡은 건 로마 교황들이 멋대로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원래 태양력으로 정확히 계산하자면 동지를 설날로 하든지 입춘을 설날로 정하는 게 맞지만, 인간의 무지는 그런 정밀성을 원하지도 따르지도 않는다.

어쩌겠는가, 지구촌 시대라는데.

 

때로 무지를 즐기는 것도 달콤하고 재미있을 때가 있다.

그런 재미까지 포기하지는 말자. 다만 알고 즐기자.

1월 1일에 한복 입고 새해 복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하고 다닌 사람들은 대체 진짜 설날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또 같은 말을 할 것이다. 이런 모순이 뒤섞인 현실이 재미있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 사는 세상이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겨도 그런가 보다 하면서 넘어가는 게 인간의 한줌 짜리 이성이다.

 

새해의 들뜬 기분이 상했다면 용서하기 바란다.

나같이 사사건건 따지는 사람 한 명쯤 있어서 그리 나쁠 건 없지 않겠는가.

 

- 검푸른 털을 지닌 티벳 산양.

을미년과 아무 상관이 없지만 '무식'한 기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